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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Apr 04. 2024

놀이터에는 365일 사람이 없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1980년대에 지어졌다.

재건축을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루고 미뤄져 곧 이루어질 예정이다.

내가 부모님 댁으로 돌아온 게 이제야 2주쯤 되었는데 또 이사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튼 앞으로 일어날 일은 둘째치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이곳에서 10대, 20대 초반을 온전히 바쳤다.

그러니 동네 곳곳을 얼마나 잘 알까?


우리집과 뒷 동 사이에 놀이터 하나가 있는데,

그 놀이터에는 365일 늘 사람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바글바글 거리며 신나게 놀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아이'를 볼 수 없었다.

내가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는 그 놀이터를 반드시 지나야하는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본 건 정말 몇 번 되지 않는 듯 하다.


내가 어릴 때는 핸드폰도 없어서 모든 엄마들이 창문을 열고 놀이터를 향해 소리쳤다.

"무지야! 빨리 집에 와! 밥 먹어야지!!!!"

"쪼끔만 이따가 가면 안돼?!!!"

"안돼!!! 들어와!!!"

바로 옆에서 이 대화를 들은 친구들은 하는 수없이 나와 인사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곤 했다.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에 입을 삐쭉 내밀고 터덜터덜 집에 갔지만,

친구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밥 생각에 집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 화면을 보고 다닌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봤다.

라떼는 자전거를 두 손 놓고 탄다느니, 휙- 착! 하고 멋진 기술을 보이는 애가 있다느니 등이 자랑거리였는데 

이제는 자전거를 타면서 핸드폰을 하는 게 자랑거리가 된 듯 했다.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 모습을 바라본 것은 정말 일부분에 불과했다.

최근 한 모임에서 요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남자 아이들이 축구를 안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무 당연하게 "핸드폰 보느냐고 그렇겠죠 뭐."라고 말했다.

"남자 애들이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서로 대결한다고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지 않겠어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물론 내 이야기가 일부 들어맞기도 하겠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고 가속화됨에 따라, 반에 아이들이 없어서 축구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축구 팀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3개의 반이 합반을 해야지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점심 시간, 쉬는 시간이면 어떻게든 밖으로 뛰쳐나가 축구를 하던 남자 애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애가 무얼하든 그보다 축구가 우선이었던 애들이었다.

반에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로 들어와, 여자 애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던 게 남자 아이들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축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축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은 축구 학원을 가야 하는 것이다.

축구를 잘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축구를 하기 위해서 돈을 지불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모든 후보가 저출산과 관련된 이야기와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일본의 출산율을 보고 '저 나라 어떡하냐'고 걱정을 했던 우리는,

이제 일본이 우리를 보고 '우리가 더 낫다'며 위안을 삼는다고 한다.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할 만큼 심각한 문제.


내 앞에 보이는 아이가 사라질수록 점점 아이가 귀해진다는 건 실감이 나고,

유튜브 채널 킥서비스의 내용이 어쩌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나.

내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야 그저 이렇게 글을 끄적이는 것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비어있는 놀이터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갈 누군가를 위해,

아이들로 채워있지 않은 운동장을 보고 핸드폰만 한다며 잔소리할 누군가를 위해,

축구 학원 다닌다는 아이의 부모에게 교육열이 높다며 손가락질 할 누군가를 위해 

그것은 아이들이 원한 환경이 아니었음을 알려주고 싶다.

나도 이렇게 깊이 생각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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