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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06. 2024

3시간 동안 28만 원을 썼습니다.

다음 달 카드값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2023년 겨울 어느 날,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헤어숍 하나가 나타났다.

비포에프터가 극명하게 차이나는 이곳.


릴스 하나가 내 마음에 꽂혔고 홀린 듯 프로필을 들어갔다.

다른 릴스들까지 후루룩 보게 되었는데 다른 이들의 비포에프터를 보면 마치 성형한 듯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동공확장과 동시 당장 예약해야겠다는 마음에 충동적으로 네이버 예약창까지 클릭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드라마틱한 변화는 나만 느낀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듯, 모든 예약은 꽉- 차 있었다.

만약 예약을 원할 경우, 매번 사이트에 들어와서 취소건이 있는지 확인하거나 예약창이 오픈될 때 들어가서 해야만 했다.


매번 취소건을 확인하는 것은 번거롭기도 하고 날짜가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 예약창이 오픈되길 기다렸다.

그날은 바로 2024.01.01

내가 새해 첫날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계란 한 판,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는 날이라 원치 않았지만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2024.01.01이 되고 처음으로 예약을 하려는데,

이건 거의 연예인 콘서트 자리 예매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연예인 콘서트를 가본 적이 없어서 그게 얼마나 힘든지는 모르겠지만 내 체감은 그랬다.

아무튼 1월~3월까지만 예약을 받는데 1,2월은 이미 자리가 차고 3월만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급한 대로 3월 6일인 오늘 예약을 했다.


사실 굉장한 기대를 하고 있었음에도 기대를 내려놓고 가려고 했다.

너무 큰 기대를 했다가는 괜히 실망할 수도 있을 거 같아서였다.

‘마음을 비운 만큼 만족도가 높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며 헤어숍에 도착했다.


이곳이 비포에프터가 명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얼굴의 뼈 골격, 목 길이와 두께, 승모근의 높이, 옷 스타일, 피부색, 두피 모양, 머리카락의 시작점, 머릿결 등 정말 사소한 모든 것을 다 컨설팅해주기 때문이다.


내게 어떤 게 고민이고 어떤 스타일을 하고 싶은지 먼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보는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나 자신인데도 모르는 것을, 전문가의 눈으로는 어떻게 그리 빠른 판단이 서는지 신기할 노릇이었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나는 두상이 예쁘다고 한다. 얼굴이 길지도 동그랗지도 않아서 어떤 머리도 잘 어울리는 얼굴이라고 했다.

나는 옆광대가 머리 스타일을 고민하게 한다고 했지만, 옆광대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옆광대를 사이에 두고 움푹 파인 곳들이 문제라고 했다.

하관도 얄상한 편은 아니지만 두드러진 것은 또 아니어서 크게 가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머리는 넘길수록 얼굴이 더 돋보이는 얼굴이라고 했고, 앞머리 유무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앞머리가 없으면 큰일 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옆머리를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 얼굴 특성상 빠글빠글한 펌을 하는 게 좋지 않고, 컬이 많아질수록 얼굴의 장점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길게 늘어뜨린 머리가 좋은데, 숱이 굉장히 많은 편이라 숱을 치지 않으면 답답해 보일 수 있다고 한다.

머리의 기장은 긴 게 좋은데 그 이유는 단발을 하면 비교적 짧은 목 때문에 좋지 않으며, 머리카락이 얇은데 숱을 친 부분들까지 많아지면 날아가는 머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한 손상모라는 내 말에는 곱슬끼가 심해서 서로 잘 엉키는 거지, 심한 손상모는 아니라고 했다.


이 많은 정보들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해답을 내려달라는 듯, 전문가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다양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나갔고,

결론은 5개월 동안 길러온 이 머리의 숱을 치고 손상모만 정리해도 확 달라진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라며 커트만 하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5개월을 기다렸다.

사람은 머리빨이라고, 나의 못생김을 견뎌내며 장작 5개월을 참아왔는데 커트만 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문가도 내게 “큰 변화를 기대하고 오셨을 텐데, 그렇다고 쓸데없는 걸 하라고 하고 괜히 더 마음에 안 들어서 가실 수는 없잖아요.”라고 하시며 공감하려고 했다.

나는 ‘돈 안 벌고 싶어?!! 돈 벌어야지!!! 커트만 하고 보낼 생각을 하면 어떡해?!!’라고 속으로 외쳤고, 실제로는 ”이 지저분한 머리를 깔끔하게 만들고 싶어요.“라는 말을 더했다.

따라서 나는 레이어드 컷에 C컬펌과 매직 그리고 영양을 하기로 했고, 이내 만족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무리를 지을 때쯤 머리를 말릴 때 머리 말리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셨다.

다른 헤어숍에서도 알려주지 않나요?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곳은 ‘뒤로 돌려서 말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전부인 반면 이곳은 A~Z까지 설명해 주었고 내가 직접 설명하게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C컬펌을 했지만 S컬로 만들고 싶을 때 그리고 다른 변화를 또 주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고객님은 펌보다 길게 늘어뜨리는 게 어울리는 머리인 만큼 머리에 윤기가 흐르고 깔끔해 보이는 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주 매직을 하는 건 좋지 않다고 했다.

숱이 너무 많아서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쳐줘야 하는데 꼭 그렇다고 3개월에 한 번 올 필요 없고 본인이 지저분하다고 느껴질 때 예약하면 될 거 같다고 했다.

오늘 한 머리로 여름까지 버틸 수 있을 거 같으니 집에서 린스랑 트리트먼트만 잘 발라달라고도 했다.


내가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점은 ’컨설팅이 명확한 점‘, ’돈 뜯어먹기 위해 쓸데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지 않는다는 점‘, ’ 머리를 말리는 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는 점‘, ’ 친절하다는 점‘, 집에 갈 때 편지까지 써서 준다는 점‘ 등이다.


결과적으로 내 머리는 너무 마음에 든다.

내가 감추고 싶은 단점도 보완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으니까.


내가 이곳을 홍보하는 것 같지만 명칭을 적지 않았으니 홍보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안 그래도 예약하기 힘든데 홍보하고 싶지 않다.


- 오늘의 헤어샵 방문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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