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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07. 2024

일기에도 땔감이 필요한가요?

큰일 났다, 땔감이 벌써 떨어지다니!

평범한 매일을 보내면서 어제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처럼 별다른 일이 없었다. 매일매일이 특별하다면 어찌 일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듯 나의 오늘을 의미 없이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도 없는 일.


그럼 오늘의 일기는 무얼 적으면 좋을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점을 적어보자.



어제는 미용실을 다녀오느라 아지 산책을 하지 못했다. 미용실이 멀기도 멀었고 여러 시술을 하다 보니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래서 녹초가 된 것 마냥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뻗어버렸고, 산책을 못한 아지는 잠에 들 때까지 성질을 냈다.

그런데 오늘 오후 2시까지 날씨가 오락가락한 것이다. 계속 비가 왔다 안 왔다. 나에게 아지를 산책시킬 타이밍을 알아서 찾아보라는 듯 날씨는 나를 골려주고 있었다. 그러다 비가 언제 왔었냐는 듯 구름이 싹 걷혔고 아지는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제는 메가커피에서 큐브라떼를 먹었다. 나는 음료를 천천히 마시는 편이라 음료의 맛이 변하지 않는 게 중요한데 에스프레소로 만들어진 큐브가 녹으며 커피의 맛을 계속 잡아줘서 최근 괜찮게 먹은 음료 중 하나다.

그런데 오늘은 빽다방 바닐라라떼를 먹었다. 일주일 전쯤 오랜만에 먹고 싶어서 먹었는데, 그 맛이 갑자기 생각나더니 먹고 싶어 져서 먹었다. 아침에 샀는데 아직까지도 다 못 먹은 걸 보면… 나 진짜 음료 잘 못 먹는 거 같다. 잘 못 먹는다는 표현이 맞나? 정-말 오래 먹는 거 같다!



나는 곧 부모님 댁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래서 짐정리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어제는 하나도 안 했고 오늘은 했다. 3분의 1 정도…? 썩 마음에 드는 정리는 아니지만 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안 입는 옷도 버리면서 추억을 곱씹었다.

옷을 정리하는 도중 전 직장의 유니폼을 봤는데 옷걸이에 걸어 보관할지 고이 접어 보관할지 한참동안 고민했다. 늘 깨끗하고 반듯하게 유지했던 옷을 함부로 구겨 보관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옷걸이에 걸자니 입지도 않는 옷인데 공간만 차지하는 것이다. 추억용 보관인 걸 알면서도, 혹시라도 입을 일이 있지 않을까 상상하면서도, 이제 두번 다시 입을 일이 있을까 싶어 고이 접어 상자 안에 넣었다. 그런데 왠지 내가 예쁘게 유지하려했던 이전 추억이 접힌 거 같아 마음이 아팠다.



어제도 책을 읽었는데 완독은 하지 못 했다. 그런데 오늘은 완독도 하고 서평도 썼으니 잘했다고 박수 쳐주고 싶다.



어제는 미용실 때문에 이래저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해서 밥도 냉동만두로 먹고 때웠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프랭크 버거를 먹어봤다. 음… 맛은… 평범했다. 맛있는 맛은 아닌 걸로! 역시 나는 버거킹이 최고인 거 같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햄버거 세트를 하나 시키면 콜라는 두 입정도만 먹고 감자튀김도 몇 입 못 먹는 위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오늘 햄버거를 먹는데, 한 개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내 위가 큰 것인지 햄버거가 작은 것인지 알 턱이 없어서 친구에게 물어봤다.

“야 내가 돼지인 거냐?”

다행히 친구는 내 마음에 공감을 해주며 2개는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난 2개를 먹었다. 아무래도 난 돼지가 맞는 거 같다.



음 뭘 더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일기를 안 써 본 지 너무 오래돼서

오늘의 나를 기록하는 게 너무 어색하다.

나는 매일 to do list를 적고 체크하는 완벽한 계획형 인간이다.

그런데 일기 또한 to do list를 그대로 옮겨 적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일기를 쓸 때 솔직해지는 순간이라기보다

‘기록’에 가깝게 느껴진다.


일기도 쓰다 보면 다른 글처럼 솔직해지는 날이 올까?

이상하네…

분명 일기가 가장 솔직해야 할 글인데, 나는 왜 일기가 가장 어려운 글이 되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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