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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 Jun 28. 2020

그녀와 함께한 산보(山步)

관악산 트래킹


그녀의 연락은 정말 의외였다.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입사한 첫날 나를 '저기요' 라고 호칭했던 그녀에게 나는 적잖이 당황함을 느꼈고 선천적으로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임에도 다가가기가 힘들 때가 많았다. 나보다 한두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상사이자 팀원인 그녀는 알고보니 나와 꽤 나이 차이가 나기도 했거니와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퇴사 전 단둘이 가졌던 티타임에서 꼭 등산을 하자는 그녀의 말이 그래서 나는 단순한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나가는 수많은 계약직을 보았을 그녀의 연락이 뜻밖이었고 정말 반갑기도 했다.


나는 늘 운동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학창시절 가장 두려운 날은 바로 체육대회날이었다.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왜 굳이 두명씩 달리기를 해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어째서 체육시간에 운동을 못했다는 이유로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을 가지고 방문한 관악산은 오후임에도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원색의 등산복을 차려입고 스틱과 배낭으로 단단히 무장한 중년의 무리가 그러했고, 막 시작한 것 같은 풋풋한 커플이 걸음을 맞추는 모습도 보였다.


회사를 다닐 적에도 점심시간에 운동을 다니던 그녀였기에 당연히 나를 금방 앞서 걷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정상에 올라갈 체력이 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고백했던 터라 우리는 경사가 높지 않은 트래킹 코스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라 만만하지는 않았다.


근데 무언가 이상했다. 경사가 높아질수록 숨은 차는데 기분은 좋아졌다. 푹푹 찔 것이라고 생각했던 숲속은 덥지도 않았고 오히려 무거운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언니가 가장 좋아한다는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들으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움직였던 그 날, 비록 2만 3천 걸음을 걸어 다음날 운동부족으로  근육통을 겪었지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등산을 시도해보지도 않은 채 무섭고 두렵다고만 생각했다. 언니 또한 그랬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간혹 무뚝뚝한 모습에 혼자 주눅들기도 했다. 하지만 산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눈 언니는 정말 사랑스럽기도 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경험해보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요즘도 그날의 관악산이 떠오른다. 산에

핀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어주던 언니와 비온 뒤 맑게 갠 청량한 하늘, 이렇게 사람은 행복한 순간들을 곱씹으며 살아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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