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보름산미술관에서 발간한 그림책 <감정동 사람들>의 에필로그 글입니다.
깜깜할 때 출근해 깜깜할 때 퇴근하는 지독한 직장인의 삶을 동경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단 한 번도 사업을 꿈꿔본 적이 없다.
일이 잘 안 풀려서
하고 싶어서,
잘 할 것 같아서,
흔하디흔하게 내뱉는 “나중에 사업이나 해야지.”
이 문장이 근 30년을 살아온 지금까지도 진심인 적이 없다.
‘평범한’ 직장인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지라
숨 막히게 조이는 넥타이와 칼같이 다려진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드라마 속 판타지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나인데도
책을 사 모으기 시작하며 처음으로
북 카페를 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스친 적이 있다.
출구가 안 보일 정도로 큰 대형 서점이 아닌 작디작은 평수의 책방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출판사가 출간한
희한한 제목의
장르를 알 수 없는 책을 발견한
대학교 2학년짜리 나는,
쓸데없고 교훈도 없는 책이 출간될 수 있다는 것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작은 책방을 시작으로
근교 파주, 더 멀리 대구, 더 더 멀리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재밌는 책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한 권 한 권 사 모아
작은 수납장에 표지가 보이도록 전시했던 스무 살의 나는,
서른을 앞두고 벽면 한쪽을 전부 차지하고도 모자라
바닥에 책을 잔뜩 쌓아놓는
지극히 사적인 북 카페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SNS의 자랑으로도 올리지 않는 나만의 공간은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
높이가 낮은 책부터 높은 책까지,
# 000000에서 # ffffff까지 그라데이션으로 가운데 정렬을 맞추고,
웜 톤과 쿨 톤을 양쪽 끝에 배치해
박서보 화백의 작품처럼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전시 중이다.
이른 오후,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 책장을 들여다볼 때면 뿌듯함을 넘어 행복을 느낀다.
만약 화재가 발생해 책이 다 타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나만의 공간에서,
쓸데없고 교훈도 없는 그림책 <감정동 사람들>의 삼류 서점을 통해서
로망을 실현 중이다.
지금도 사업은 어렵다는 생각에 북 카페는 엄두도 안 나지만
언젠가 살롱 느낌으로 친한 친구들, 친구의 친구들만 모여 나만의 컬렉션을 자랑하고 싶다.
TMI : 책을 사는 기준
첫째, 표지.
무조건 예뻐야 한다.
폰트, 그래픽, 그림, 레이아웃, 책등을 포함한 전체적인 디자인이 예쁘면
무조건 구매다.
더 나아가 내지 디자인까지 취향을 저격한다면
그 책은 2권 구매도 가능하다.
둘째, 종이.
반짝이고 매끈한 종이보다는 만졌을 때 서걱거리는 질감의 종이가 좋다.
이북이 아닌 만질 수 있는 책은 촉감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셋째, 제목.
간혹 제목이 다한 책들에 속아 구매를 하기도 하지만,
신선해서, 관심 있는 분야라서, 호기심을 자극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손이 갈 때가 많다.
*정말 정말 읽고 싶은 책인데 표지, 종이,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구매한다.
+ 분위기 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