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가 못된 사람이라 말하면 쉽겠다. 그러나 조금 복잡하게 변명하고 싶다.
나의 하루는 보통 오전 다섯 시에 눈을 떠 커튼을 치고 스트레칭을 하며 방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거실로 나와 오전 약을 챙겨 먹고 다시 소파에 길게 드러눕는다. 백색소음이 필요한 적막한 이른 오전. 테이블 위 항상 같은 자리 위에 놓인 리모컨을 들어 tv를 틀고 편성표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다 흘려듣기 좋은 리얼리티 먹방 채널이 보이면 채널을 멈추고 다시 눈을 감는다.
‘그래, 김치찌개는 위험한 음식이지.’
20분 정도 한 팔로 그늘을 만들어 멍을 때리다 좀이 쑤시는 감각에 불현듯 일어나 두유와 치즈, 바나나를 꺼내 들고 식탁 앞에 앉는다. 멍하니 앉아 바나나를 까고 두유팩 빨대의 비닐을 벗기면 부스럭부스럭 작은 소란에 강아지가 안방에서 슬그머니 나온다.
낮은 포복을 하는 모양새의 다리 짧은 강아지의 발걸음을 따라 가까이 다가간다. 강아지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아, ‘일어났어?’ 속삭이며 톡 튀어나온 미간에 짧게 입을 맞춘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아침 식사를 먹고 나면 식탁 위 정리 정돈부터 화장실까지 빈틈없는 동선으로 움직인다. 몽롱함은 가셨지만 무계획인 오전 6시 반.
샤워를 하면 보송보송한 타월 때문인지,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의욕이 생기고 마음이 다급해진다. 가령 '오늘은 흰 티에 청바지가 아닌 자주색 니트에 연분홍 데님을 입겠어.'와 같은.
어디 자랑할 데도 없는 꽃분홍 옷을 위아래로 잘 차려입는 것이 오늘의 1차 계획. 텀블러에 물 한잔 가득 따라 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켠다. 해가 잘 드는 오전에는 커피 한 잔 마시며 오래된 새 책을 읽는 것도 좋겠지만 정신이 맑을수록 미뤄둔 잡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오전 11시.
슬슬 배가 고픈데, 점심에 뭐 먹지. 집에 냉동 피자가 있는데, 냉동 피자에 냉동 햄버거를 먹을까. 그야말로 패스트푸드 구만.
그동안 미뤄왔던 별거 아닌 일들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에 뿌듯해하며 결국 점심은 냉동피자에 아이스크림까지 잔뜩 챙겨 먹었다. 나의 점심시간은 매우 길다. 디저트 타임에 아메리카노 타임이 추가로 1시간 정도가 더 있으니 일반 직장인들의 3배 정도는 될 것이다. 거의 점저를 즐기다 다시 돌아온 방 안. 다시 일을 해야지.
점심을 길게 먹는 탓에 저녁을 생략하고, 오후 8시부터 운동을 시작해 10시면 샤워를 포함해 하루가 마무리된다.
우리 안에 들어가 동물 같은 삶을 자처하는 나는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이야기할 때 굉장히 선택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요즘 책 계약했어, 여름이면 나올 것 같아.”
사실은 냉동피자에 냉동 햄버거를 먹는다는 것이 근 한 달간 최고의 낙인 사람인데 말이다.
어쩌면 내 인생은 누군가에게 ‘서프라이즈-‘ 하고 놀래 줄 만한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실로 이루어져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참, 그래서 인스타그램이 왜 두렵더라.
나 또한 안다. 그들 또한 단조로운 일상 속, 순간의 짜릿한 경험을 얼마나 자랑하고 싶은지.
(자주자주 짜릿함을 느끼는 사람도 더러 있더라.)
하지만 난 짜릿함이 365일 중 5일이 채 안 되어 마냥 배가 아프다.
나의 근황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다면 패트릭 스톡스, 디킨 대학교 철학과 조교수님이 쓴 글을 인용하고 싶다.
당신이 한 해 동안 겪은 일을 전부 기록한다고 생각해 보자. 크리스마스 카드를 쓸 때 지난 일 년을 돌아보듯, 막연하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열두 달 동안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글로 남기는 것이다. 그 기록을 다시 읽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 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 가끔씩 닥쳐오는 재난과 비극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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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출판사에서 출간한 뉴필로소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에 영향을 받아 내 생각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