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서윤 Jun 18. 2021

소소하게 바보 같은

“엄마, 이게 50만 원이야!”

“뭔데? 이까짓 거, 엄마가 떠줄게!”


우연히 아이쇼핑 중 발견한 비싼 브랜드 뜨개 가방으로 엄마의 뜨개질은 시작되었다.


파란색, 노란색, 흰색 하나씩 도착하는 굵고 가는 실이 어느새 30만 원을 넘어서고 강아지 간식 창고 바로 위 칸에 엄마가 만든 미니백, 텀블러 백, 숄더백, 토트백, 크로스백, 쇼퍼백 이 하나씩 차곡차곡 개껌 냄새와 함께 쌓여갔다.


‘오늘은 이 남색 토트백을 개시해야겠어.’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토트백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소지품을 하나씩 담아봤다.

장지갑, 파우치, 텀블러, 자동차 키, 안경, 책, 핸드폰.


‘와, 뜨개 가방은 도라에몽 주머니 같네.’


혼자 감탄을 하며 조금 무겁고, 아래로 축 처지는 모양새의 가방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미용실과 카페.

지저분하게 자란 머리를 다듬고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가 책을 읽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다. 늘 가는 미용실, 언제나 같은 선생님이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스타일을 생각하고 있어 살짝 긴장되었다. 조금 부끄럽지만, 미리 저장한 배우의 사진을 찾아놓고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진실의 거울 앞에 앉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오늘은 이렇게 하고 싶어요. 이 배우처럼요.”


싹둑싹둑

이제 슬슬 그 느낌이 나와야 하는데.

싹둑싹둑

왜 점점 윌리 웡카로 가고 있지?

위이잉

왜, 드라이기를 만지시지?

설마, 이제 마무리 단계인가?


담당 선생님께서 가위를 손에서 내려놓으셨을 때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그래, 예상했잖아.

난 배우가 아니잖아.

아니, 윌리 웡카도 배우긴 배우지.

그래도 너무 억울하고 슬퍼졌다.

그 손톱만큼의 느낌이라도 바랐는데, 그 시크함을 원했는데.


전지적 아무개 시점에서 그 순간의 나는 짧은 앞머리를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가며 계산을 하고 있는 슬픈 윌리 웡카의 뒷모습이었을 것이다.

머리가, 아니 나의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해서 이 작은 가방에 무겁게 챙겨 온 책과 텀블러를 안 쓰고 돌아갈 순 없지.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기 텀블러에 담아주세요.”

“아, 손님, 이 텀블러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안 담길 것 같은데요.”


아니, 이렇게 목이 타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텀블러 크기 때문에 못 마시다니. 그렇다고 열이 오른 상태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순 없었다. 무겁게 들고 다닌 건 아쉽지만, 텀블러를 포기해야 했다.


“아, 그럼 머그컵에 담아주세요.”

“저희가 머그컵은 따로 사용을 안 해서 테이크 아웃 잔에 드려도 괜찮을까요?”


하, 쓰레기를 안 만들려고 텀블러를 들고 다닌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머리 때문에 진짜 바보 같았다.)


“네, 테이크아웃 잔에 주세요.”


가까운 자리 아무 곳에나 털썩 앉아 진동벨이 울리길 멍하니 기다리다 예쁜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왔다. 거의 원샷을 하다시피 벌컥벌컥 마시고 10분 정도 다시 멍하니 앉아있다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그래도 가져왔는데 조금이라도 읽고 나가자. 이것마저 안 읽고 들어가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그때,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왜? 나 여기 미용실 옆에 있는 카페.”

“언니도 미용실 왔어?”

“어, 같이 가면 좋지.”


남은 커피를 마시고 10분간 다시 멍을 때리다 언니를 만나 집에 갔다.

이전 08화 인스타그램이 두려운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