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평화로운 장면은 이미 결정된 세계의 것이다.”
멍하게 걷다 노래하는 분수대가 있는 잔디밭에 털썩 앉았다.
잠깐 병원에 들렀다 들어간다고 했는데
점심시간은 지나버렸고 이제 회사로 들어가야 하는데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분수 물줄기가 하늘로 솟아 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분수 주변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웃고 있었다.
-축하드려요.
물기를 머금은 풀잎 냄새가 났다.
새로 태어나는 것들의 냄새.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들의 냄새.
-6주차시네요.
그에게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아니, 말을 해야 할까?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나를 아끼는 듯 했지만
어쩐지 결혼 이야기도 아끼는 사람이었다.
웃는 얼굴은 떠오르는데 이상하게도
그와의 미래는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 보이시죠?
내 이름으로 올린 프로젝트, 성과들.
이제야 겨우 내가 쌓아 올린 시간들이
나를 증명해주는 것 같은데,
회사 사람들도 내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했다.
가만… 자리를 잡으면, 움직일 수 없게 되는구나.
-안정 취해주시고요.
내가 지금 낳을까 말까라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그 다음엔 키울까 말까겠지.
아이와 엄마를 다시 바라보았다.
둘은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
위로 솟구친 물방울들이 햇살에 부서지며 반짝인다.
저 평화로운 장면은 이미 결정된 세계의 것이다.
-다음 예약은 언제로 잡아드릴까요?
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낳을 수 있을까, 키울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말이나 할 수 있을까.
사랑인가, 우연인가.
회사로 돌아가야하는데,
가서 보고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난 이제 더이상 예전의 성대리가 될 순 없을 것이다.
나는 손에 잡히는 잔디를 만지작거리며
물에 젖은 먹먹한 음악을 멍하니 듣기만 할 뿐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