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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이 Aug 09. 2024

팬티

팬티는 벗고 살아야겠다

코를 킁킁거렸다. 나는 고약한 냄새를 뒤적이며 고집스레 팬티를 붙잡고 있었다. 샤워하고 빨래한 팬티를 입은 지 네 시간밖에 지나지 않아 섬유 유연제와 음부의 냄새가 조금씩 섞여 나왔다. 물컹한 점액질이 조금 묻었다. 남편과 섹스를 한 뒤 다른 여자들의 팬티는 어떨지 생각했다. 하루에 한 번 속옷을 갈아입지만, 그들의 속사정도 나처럼 불쾌한지 말이다. 냉이 많이 나와서 팬티를 하루에 두 번 갈아입어야 한다고 산부인과에 가서 하소연한 적도 있었다. 의사는 콧물이 세균 번식을 막아주듯 냉도 건강한 지표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냉이 안 나와  팬티가 바삭해진다고 말한 것 같다. 여의사의 참신한 표현이 실제로 ‘바삭’이었는지 ‘건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맑은 점액질은 끈적거린다. 코딱지같이 생긴 노란 냉은 지저분하다. 너저분한 팬티를 늘 부끄러운 듯 돌돌 말아 넣고는 남편이 안 봤으면 한다. 내가 하얗고 노랗고 침이 잔뜩 묻은 것 같은 팬티에 대해 하루 종일 떠들고 다닌 어느 날 올케는 속옷을 세탁기에서 삶음 빨래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릴 때 엄마도 녹이 슨 노란 냄비를 가스 불에 올리고 세제와 함께 팬티를 삶았었다. 그때 팬티를 삶던 꼬릿 한 냄새를 떠올리며 코끝을 찡그린다. 올케 말을 들은 후부터는 늘 삶음 빨래한다. 그럼에도 같은 팬티를 3, 4년씩 입게 되면 그 팬티에는 누런 자국이 남게 된다. 오래된 자국을 보고 있자니 새 팬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의 개별 상담은 순항이다. 남편이 오늘 섹스를 하자고 한다니, 놀라운 발전이었다.


“어머… 오늘 언제부터 나랑 하고 싶었던 거야?”


하고 야한 분위기를 잡은 내게


“의무야”


라고 산통을 깨기 전까지는 감동할 뻔했다.


“의무라는 말 때문에 나 죽었어.”


하지만 이렇게 끝내면 안 되었다. 몇 년 만에 그가 다가왔고 그를 지지해 주는 길이야말로 우리 부부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키스했다.


“제이는 오빠 거야.”


 섹스 중에 야한 말은 성기를 간지럽힌다. 소유욕이 강한 남자들은 섹스할 때 여자가 자기 소유가 되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난 그들의 한층 곧게 선 어깨를 보면 흥분이 되었다. 당신 외에는 그 누구와도 섹스하지 않을  거예요. 야한 말이란 것은 내게 꽤 복잡하다. 지나온 시간, 스쳐 간 사람 그리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복합적으로 창조되는 상상 쇼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남편은 그걸 죽어도 못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좋아하는 걸 해오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방출해 보았다. 남편이 섹스 중에 한 어떤 말은 가학적으로 들렸지만 동시에 나를 강하게 흥분시켰다. 내가


 ”언제나 내게 박아줘”


하자 남편은


“정말? 그래도 돼? 애무 안 하고 그냥 박아도 돼? 언제고 아무 때고? 아프다고 뭐라고 하기 없기다”


흥분한 나는 부엌에서 침대에서 거실에서 남편과 사랑을 나누는 것을 잠시 상상했다.


“그럼, 팬티는 벗고 살아야겠다”


나는 하얀 테니스 치마 끝단에 보일 듯 말 듯 한 뽀얀 엉덩이 살을 그렸다. 바람에 살짝 올라간 스커트. 부르르. 아래에서 기분 좋은 잔물결이 출렁였다. 남편은 이미 사정이 끝났지만, 그의 성기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깊은 곳에서 큰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음순을 성기에 비비고 있다 보면, 또 그가 분위기를 깨지 않는 한 온몸이 떨리며 한차례 행복이 발끝까지 전해질 것 같았다. 두 번째 쾌감이 전해졌다. 그의 성기가 막 작아지려 할 때쯤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오빠 끝났는데도 잡고 있어서 미안해. 아프진 않았어?”


 하자 남편은 좋았다, 뭐가 미안하냐고 했다.

 남편은 부부관계가 왜 중요한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었다. 상담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정기적인 섹스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데 자신은 도무지 알 수 없다며


“그러면 장모님, 장인어른은? 정기적으로 하셔?”


그러더니 언니와 형부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 남들도 안 하고 잘 사는데 자신에게 왜 섹스를 문제 삼느냐는 식으로. 난 한마디 했었다.


“남들은 모르겠고, 오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


 생각할 거리는 밀렸지만 상쾌한 기분이었다. 더 이상 더러운 팬티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기로 했다. 건강한 여자임에 자부심을 느낀다. 실제로 난 내 팬티 냄새, 그러니까 내 점액질 냄새가 좋다. 겨드랑이 냄새도 발가락 냄새도 내 몸의 구석구석 숨겨진 체취를 좋아한다. 머리를 안 감는 날이면 뒤에서부터 불어오는 내 머릿기름 냄새도 좋다.


 남편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변하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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