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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이 Aug 09. 2024

정신과 약

왜 스스로를 미워하나요?


약물의 세계에 잠겨 두 달간 집에만 갇혀 있었다. SSRI를 복용하면서 생리 전 증후군의 폭식과 분노를 통제하고자 했지만, 이 약물은 일상적인 활력까지 마비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정신이 구름처럼 흐릿해지고,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더라도 다시 눕고 싶어졌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독서 모임과 운동 프로그램, 모든 일상을 중단했다. 수면의 깊은 바다에 잠겨 낮잠을 즐겼고, 잠들지 못할까 걱정했던 밤도 쉽게 지나갔다. 히스테리는 사라졌지만 기쁨마저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시체가 된 것처럼, 더 이상 우울함을 견딜 수 없어 약을 끊었다. 그 즉시 정신이 맑아졌고, 간단한 음식 한 숟가락에도 감동을 느꼈다. 남편과 희나, 그리고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워 보였고, 그 감사함에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약을 먹고 좀비처럼 지내는 내가 좋았어? 아니면 약을 끊고 제이답게 사는 게 좋아? 가끔 화를 내겠지만.”


남편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꼭 선택해야 한다면 약을 먹는 쪽이 좋겠어.”


라고 답했다. 그 대답에 실망과 섭섭함이 밀려왔다. 남편은,


“너무 기복이 심해서. 너무 좋다가 갑자기 화를 내는 게 두려워서.”


라고 설명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내 허기와 욕망, 충족되지 않는 불편함이 느껴져 불쾌한 기분이 또다시 몰려왔다.포만감에 집착하는 이유는 허기에 대한 깊은 공포 때문이다. 허기가 지면 닥치는 대로 먹어야 할 것 같고, 거대한 배를 바라보며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상담사는 말했다.


“자주 수치스러움을 느낀다고 하시네요. 왜 스스로를 미워하나요?”

나는 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뭐든 잘 해내지 못하면 미움받는다고 느꼈어요. 지금도 어린 제이가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아요. 유혹에 넘어간 자신을 가치 없다고 여깁니다. 불쾌한 감정을 잊기 위해 먹는 것을 반복하죠.”


“네, 잘 이해하고 계시네요. 지금 어렸을 때 받지 못했던 사랑을 제이 씨가 스스로에게 해줘야 할 때입니다. 어렸을 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이나, 좋아했던 장소가 있다면 한 번 방문해 보세요.”


상담사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그날 밤, 이제 막 세살이 된 희나가 끙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열도 없고 감기가 끝났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렇게 밤을 새운 적은 없었다. 불편하게 신음하는 희나를 보며 남편에게


“응급실 가자,”


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일어나 희나 옆으로 누웠다. 그의 목이 아픈 것은 알았지만,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상황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거실로 나가 병원을 검색하며 대학병원과 인기 있는 소아청소년과를 비교했다. 병원이라는 말에 희나가 신음 소리를 참았다. 두 시간 후, 희나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빠, 정말 희나 병원 가야 해. 일어나.”


남편은 옷을 챙겨 입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지? 병원 가야겠지?”


 대답도 없는 남편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목이 아픈 건 알겠는데 중요한 건 좀 말해줘…. 제발…. 응? 병원 갈 거지?”


정수기에서 물을 따르던 남편이 화를 내며 걸걸거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연히 가야지!”


‘마음 챙김’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벌어진 상황과 내 신체 반응, 감정, 행동과 생각을 조용히 알아내야 했다. ‘남편이 화를 낸 건 자신이 몹시 아프고 힘들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눈물이 났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슬픈 것은 남편이 무기력해 보이고 무능력해 보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가 화를 내는 모습에 실망감이 커서일 거야. 남편이 언제나 차분하고 좋은 사람이길 바라고 그것을 벗어나면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내가 만든 단단한 틀 때문일 거야’ 생각은 훌륭했지만, 감정을 빠르게 정리하기는 어려웠다. 남편에게 말했다.


“그렇게 화낼 에너지가 있었다면, 10분의 1만 써서 나와 소통하려고 노력해 주지 그랬어.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말이야.”


내 목소리는 떨렸고 얼굴은 붉어졌다. 남편은


“네가 먼저 화를 냈잖아.”


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와… 정말이지…. 이렇게 싸울 힘이 있었다면 제발 한 마디만 해주면 되었잖아. 얼른 병원에 같이 가자고.”


남편과의 갈등과 슬픔을 이해하고 감정을 정리했다. 희나는 우리 눈치를 보며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병원에 가는 동안 희나는 내 품에 안겨 흐느끼며 울었고, 여러 차례 토했다. 남편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약을 타는 동안 혼자서는 어렵던 일들이 쉽게 해결되었다. 특히 병원 50미터 전부터 울어대며 버티는 희나를 감당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사는 장염이 시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 힘든 순간, 희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극도로 예민해진다. 남편은 입을 꾹 다물고 날 공격하고, 나는 화를 내며 싸운다. 우리 분노가 희나의 눈에 띄는 게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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