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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이 Aug 10. 2024

여행

너무 아파서 죽고 싶어…

    언니와 동진이, 엄마와 희나 와 3박 4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언니가 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실컷 놀아야 한다며 추진했다. 희나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한 시간 반을 운전해 엄마를 데리러 갔다. 운전이 40분만 넘어가도 지루해지는데 90분이라면 엉덩이에 좀이 쑤시고 등이 배기는 시간이다. 매번 그 시간만 견디면 된다고 그 성가신 일만 제치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다짐해도 자주 실천으로 옮기진 못했었다. 엄마가 심장에 스탠스를 박고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설탕처럼 생긴 눈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날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선물같은 하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산과 나뭇가지에 눈이 촘촘히 내려앉았는데 이런 모습은 몇 년 만에 처음 이었다. 눈이 내렸다가 금세 녹아버렸으니까. 보드라운 눈이 거리에 살포시 내려앉았고 기차가 지나갔다. 운전하느라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고이 담아 어수선할 때 꺼내그려보리라 생각했다. 여자 둘이 대화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운전했다. 주제가 ‘나대라’였는데 여기저기서 다양한 주제로 나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운전대를 놓고 차 문을 열고 나가 세상의 빛이 되고 싶었다. 연쇄 살인범을 쫓아다니고 세계 평화를 위해 단식을 하는 둥 어떤 일이라도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았다. 물론 팟캐스트의 사연은 회사 면접에서 기죽지 않았다거나 오랜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배우가 되고자 혈혈단신 3개월 여행비자를 끊고 간다는 사연도 잘 들었다. 대부분 내 젊은 날을 상기시키는 이야기였다. 큰 포부와 당당함, 그리고 삶을 놀이터로 받아들이는 태도까지. 신나는 마음으로 엄마 집에 도착했다. 엄마가 조기를 구워준다고 약불로 천천히 조리했지만 배가 고파 기다릴 수가 없었다.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라면을 끓여 먹고 엄마가 발라주는 새하얀 생선 살을 주는 대로 척척 받아먹었다. 40 중반의 딸에게 생선을 발라주는 엄마는 죽을 때까지 남을 돌보길 원하는 사람 같았다. 엄마 병원에 가자고 나섰다. 엄마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저기 차가 온다는 둥, 차선을 바꿔야 한다는 둥 소심하고 조심스레 운전을 간섭했다. 엄마의 두근거리는 심장과 초조함이 온전히 내게 전해져 짜증이 났다.


“엄마 그냥 날 믿어주면 안 돼? 나 몇십 년째 무사고야.”


엄마는 이러쿵저러쿵 몇 마디 했다. 난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언니가 운전하면 찍소리도 못하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야? 내가 그렇게 미덥지 않아? 아빠 보듯이 하네. 나를. 이번 여행은 제이를 좀 더 편애해 보겠다고 신경을 써봐.”


엄마는 얼굴이 빨개지며 흥분하고 있었다. 말이 많아지고 대화에 상관없는 말을 하며 어느새 우리 둘은 중구난방으로 서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까도 그래. 티브이에 나온 할머니 몸매가 언니랑 나보다 더 좋다고 했더니… 뭐라 했어. 언니 앞에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단속시켰지? 내가 왜 아직 만나지도 않은 언니를 위해 말조심을 해야 해?”


그랬더니 언니가 뚱뚱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싫어한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초점은 그게 아니라. 언니 위주로 생각하지 말라고. 언니는 엄마가 맨날 자기만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엄마 사랑이 자꾸 부족하다는 날 좀 신경 써달라고. 그게 중요하다고!”


언성을 높여 말했다. 그러자 엄마도 언성을 높이며


“아까 알았다고 했잖아. 정말…. 여행 전부터 이러면 난 가고 싶지 않지. 난 지금 혈압도 높아서 걱정인데”


 “아픈 거로 협박하면 어떻게 해?“


상담 치료가 시작되고 엄마에게 내 슬픔을 전하며 진정으로 사과받고 싶다 했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차별한 적이 없는데 억울해 죽겠다고.


“자식새끼들 열심히 키워 놓고 뒤늦게 암이나 걸려 힘들어 죽겠는데…”


하며 울렁울렁 넘어오는 눈물을 울컥 쏟아냈다. 슬픔에 잠식된 말이 끊겼다 이어졌다.


“너무 아파서 죽고 싶어…”


몇 년간 숨긴 말도 마구 뱉어냈다. 나도 실컷 울고 난 뒤 상황을 수습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다 말했다.


“엄마… 내가 미안해. 엄만 차별 안 했어. 내가 잘못했어.”


병원을 가던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엄마가 의사를 만나기 전에 혈압을 낮춰놓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우린 정말 진정해야 했다. 심장 스탠스 수술 이후 혈압조절이 안 돼서 맞는 약을 찾고 있던 의사와 엄마였다. 어떤 약은 혈압을 확 내렸고, 어떤 약은 공황장애에 걸린 사람처럼 심장을 나대게 했다. 우린 내일 여행 갈 때 좌석에 대해 논했다.


“희나 카시트를 언니 차에 옮겨야지.”


엄마가 말했다.


“그럼 내가 뒷좌석 중간에 껴안아야겠다.”


하자


“아니, 내가 중간에 앉을게”


엄마가 말하자, 차만 타면 멀미하는 엄마가 왜 앞 좌석에 앉지 않고 그 자리에 3학년 동진이를 앉히려는 건지 이상했다. 언니 차로 여행하자며 우리 다섯은 동승하기로 했는데, 당연히 어린 동진이가 뒷좌석 중간에 앉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엄마. 당연히 동진이가 중간에 앉아야지. 왜 엄마나 내가 중간에 앉을 생각을 했지? 바로 이런 거야. 제발 이번에는 내 위주로 생각해 달라고”


엄마랑 나는 오랫동안 언니의 독재에 무력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언니는 잔머리가 빠르고 상황을 빨리 읽어내는 통에 여차하면 난 억울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언니 중심이었다. 찍소리를 내지 말아야 엄마가 좋아하는 평화가 유지되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억울함을 참는 건 내 몫이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스치듯 가볍게 던지는 말에도 난 날이 서 있었다. 약간의 비난에도 화가 났었다. 병원에 도착해 엄마는 혈압을 쟀는데 190이 나왔다. 엄마는 진정 좀 해보자고 너무 많이 나왔다고 몇 번이나 다시 해보았다.


“혈압은 몇이 정상이야?”


“140 이상은 위험해. 잘못하면 그냥 쓰러질 수도 있어“


엄마를 화나게 만들어 위험에 빠뜨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를 만나 혈압을 알리고 약을 다시 처방받았다.



숨 쉴 틈도 없이 신나게 이틀을 보내고 맞이하는 마지막 날이다. 언니, 동진이, 그리고 희나 나. 우리는 우리 여행팀의 이름을 5총사로, 하기로 했다. 엄마는 우리들과 다니며 잘 먹어서 그런지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밥을 안 차려서 좋다는 말을 했다. 언니는 득달같이 침대를 사수하려 했다. 자기는 잠자리가 예민하다고 얘기하며 우리가 이해해 주길 바랐다. 나도 잠자리가 예민하다며 침대를 놓고 몇 차례 다투던 중 엄마 혈압이 하도 높아져 혈압 기계가 에러를 보였다.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혈압을 기록하고 있었다. 두 번이나 다시 재보았지만, 기계가 말을 듣지 않았다. 난 결국 침대를 언니에게 양보했다. 침대에 먼저 잠든 희나를 안아 마룻바닥에 눕히고 그 옆을 지키겠다던 엄마를 강제로 침대로 보냈다. 나와 희나 그리고 동진이가 침대가 없는 방을 쓰기로 했다. 등이 아파 잠이 오지 않았다. 하필 희나는 엉덩이가 뜨겁다며 여러 차례 울고 불고했다. 기저귀가 답답한 것 같아 기저귀와 바지를 벗겨 놓았는데 감기에 걸릴지 무서워 바지를 입히면 영락없이 일어나 울어댔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희나가 낮잠에 들었다. 엄마와 언니가 온천에 들어간다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어릴 때 목욕탕에서 바라보던 엄마 모습 그대로였다. 보드랍고 매끄러운 살. 상체는 거대한 바위, 엉덩이는 조약돌같이 조그맣고 여린 나뭇가지로 뻗어있는 다리, 구부정한 어깨와 불룩 나온 배가 부끄러워 빨개지는 얼굴. 옆에 선 언니의 몸도 비슷했다. 거대해 산같이 나온 배. '나도 까딱하면 곧 저렇게 되겠다.’ 싶었다. 여행 중에 난 폭식을 많이 했다. 특히 우리는 편의점에 가서 꼭 5만 원어치 이상은 쇼핑하여 주전부리를 샀는데 그걸 다 먹어 치우는 사람이 나였고, 희나도 나를 따라 간식 타령을 해댔다. 지퍼가 있는 청바지는 입을 수 없을 것 같아 고무줄 바지만 벌써 3일째 입고 있다. 이 바지는 이튿날 묵었던 한옥 호텔에서 흰 고양이가 할퀴고 간 빠진다. 숙소 마당 앞에 고양이가 꼬리를 올리고 이빨을 내보이며 내 주위를 맴돌며 내게 공격 태세를 갖췄다. 웬만하면 내버려 두었겠지만 계속해서 내 곁을 맴돌며 당장이라도 내게 뛰어들어 얼굴을 할퀼 것 같았다. '저리 가!'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언니는 로비에 전화해서 고양이를 데리고 가라 했는데 직원은 그 고양이가 여행객이 이틀 전에 유기한 거라고 말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난 동물과 대치하며 무서웠다. 보통은 도망가던데 이 고양이는 나를 만만히 봤는지 날카로운 이빨만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숙소 안에서 날 걱정하던 희나가 입술이 샐룩거리더니 으앙 하고 울었다. 자기엄마가 위험에 빠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희나를 안정시키기 위해 흰 고양이와의 싸움을 끝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버림받는다는 것은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똑같이 힘든 일이구나 싶었다. 겁을 내고 있을 뿐이지만 세상이 그걸 이해할 리가 없다.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언니와 나는 와인을 한 병 마셨는데 바닷가 일몰 풍경을 보며 흠뻑 취했다. 언니가 취해서 말했다.


 “내가 죽음 죽음 하는 게 어쩌면 엄마의 죽음이 두려워서인 것 같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늘 죽음에 대비하는 거 같아“


하며 코를 훔쳤다. 그걸 듣고 있는 엄마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덩달아 나도 코끝이 찡했다. 엄마는 이번 여행에서 동진이와 희나 보다 더 해맑게 웃었다. 행복해 보였다.


"나 건강해~“


하며 엄마는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번 여행이 얼마나 좋았는지에 대해 말했다. 특히 동진이와 오랜만에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을 오래 했는데 그게 참 재밌었다. 희나가 낮잠을 길게 자는 바람에 밖에서 충분히 놀 수 있었다. 우린 수영하다 심심해지면 데어진 몸에서 모락모락 찬바람에 피어나는 연기에 낄낄대며 이벤트 탕을 넘나들었다. 몸은 뜨거웠고 머리는 찼다. 내가 온천탕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동안 동진이는 수영 모자에 물을 넣었다 뺐다 하며 신나게 놀았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왔을 때 희냐는 더없이 신이 났다. 혼자 기저귀를 벗고 팬티를 입었다. 엄마와 언니가 기저귀를 떼야한다고 계속해서 잔소리했기 때문이다. 희나는 팬티를 거꾸로 입은 데다 그게 똥구멍에 껴서 너무 귀여웠다. 두 달이면 세 돌이 되는 희나 가 제법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희나는 방을 뛰어다니고 우리는 신나서 춤을 추었다. 그러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에 멈칫하게 되었다. 애들이 많냐며 조용히 해달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프런트 전화였다. 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언니는 화가 난다면 다시 프런트에 전화했다. 분노를 가득 담아 난리를 쳤다. 그리고 분이 안 풀린다며 베란다로 나가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언니 말론 자기가 얼마나 미쳤는지 보여줘야 안 건드린다는 이유였다. 당황한 엄마와 내가 정신이 멍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모든 게 정리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엄마는 몇 번이나 언니나 동진이에게 침대를 내어주려 했다. 여행 오기 전에 내가 날 좀 좋아해 주는 쪽으로 편애해 달라는 말을 안 했다면 엄마는 분명 언니에게 침대를 내어주었을 것이다. 이틀 동안 침대를 차지했던 언니가 마지막 날은 나와 엄마에게 양보했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평생 불안한 삶을 살아서 그 기분이 오히려 편안한 사람 같다. 엄마에게 끊임없이 불안을 안겨다 주는 언니와 잘 지내니 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바닷가를 걸었다. 신고 나온 하늘색 양말이 자꾸 아래로 내려갔다. 며칠 전 남편의 짜증 소리를 들으며 샀던 양말 세 켤레 중의 하나다. 난 노랗고, 연둣빛이 나고 하늘색이 나는 양말 세 켤레를 만 원에 샀다. 그걸 신으면 날아다니듯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 양말만 봐도 남편의 화난 얼굴이 생각난다. 그러면 나 자신이 애처롭고 궁상맞은 양말 같다. 난 하염없이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세찬 바람만 불었다. ‘그냥 이대로 살까 봐요. 용서하라고 하지 마요. 화해하라고 하지 마요. 후회의 끝자락, 그걸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난 그냥 이대로 살까 봐요’ 남편과 헤어지거나, 엄마나, 언니가 죽고 나서야 화해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대로 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부른 노래였다. 슬픈 멜로디 노래를 마음대로 만들었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혀에 감미롭게 닿아 목을 적시고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음식, 두둑 내리는 비와 나풀거리는 나뭇잎, 여름밤의 바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보라색 하늘, 그 아래 바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나. 나는 당분간 이대로 살면 어떨까 싶다. 가끔은 슬프고 가끔은 행복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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