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제이 Apr 23. 2019

나약한 존재, 그래서 더 빛나는

네가 있어 다행이야


첫 번째,

무서운 날



출장 마지막 날 직장 동료들과 광저우 맛집을 찾았다. 역시 중국 현지의 맛은 다르다며 우린 입안에 남은 훠궈의 맛에 취해 있었고,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를 잡으려고 길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금요일 밤이어서인지 한국의 강남 마냥 서로 택시를 잡으려 북새통을 이루었고,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가 현란한 중국말로 택시 기사와 네고에 성공해 보란 듯이 우린 먼저 택시에 올라탔다. 녀의 중국어를 감탄하며 수다 떠는 사이 우린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고,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는 100위안 지폐를 들고 택시 기사와 언성을 높여가며 실랑이 중이었다.


"이 아저씨가 우리 100위안이 구겨진 돈이라고

새 걸로 바꿔 달래요. 두 번이나 은행에서 바꿔온

신권을 줘도 이상하다며 계속 안 받겠대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는 아저씨와 100위안 지폐 주고받으며 말다툼을 이어갔뒷좌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리는 "35위안 드리면 되는 거죠? 잔돈으로 드릴게요" 하고 주섬주섬 35위안을  돈을 지불하고 택시를 내렸다.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뭐 저런 이상한 사람이 다 있냐며 볼멘소리로 시렁대며 호텔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근데 저 택시는 왜 호텔 로비 앞에 안 내려주고 이렇게 멀리 코너 쪽에 우리를 내려준 거야?"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소리쳤다. "로비 앞은 밝고..... 헐.... 100위안 위조지폐인 거 같아요. 당했어!"라며 본인이 가진 100위안 지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랬다. 택시기사는 어두워서 위조지폐를 구분하기 어려운 곳에 택시를 세웠고, 본인이 가진 위조지폐와 우리의 지폐를 바꿔치기하기 위해 돈이 구겨졌다며, 이상하다는 핑계로 3번을 그냥 돌려줬다. 그 사이 멀쩡한 3장의 100위안은 어느새 위조지폐로 바뀌어있었다.


"눈뜨고 코 베어 간다"던

옛말을 몸소 느낀 날이었다.




토요일 새벽 광저우에서 홍콩으로 넘어가 남편과 휴가를 보내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있던 나는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광저우 남역으로 가는 택시를 다. 어젯밤 위조지폐 사건로 오늘 혼자 이동하는 것이 걱정이 되었는지 밤새 복잡한 생각들로 잠들 수가 없었다.


택시 아저씨는 중국어로 남역까지 85위안을 달라고 했고, 그걸 내가 못 알아듣자 핸드폰 계산기에 '85'라는 숫자를 찍어서 보여줬다. 난 빨리 홍콩으로 가 남편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손으로 오케이를 그렸고, 새벽 할증이니 85위안은 비싸지 않다고 위안을 삼고 있었다. 새벽 5시라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혹시 택시가 날 남역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면 난 국제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데없는 망상을 하며 구글맵으로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가고 있었다.


10분 정도 지났으려나? 택시 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갑자기 핸드폰 계산기에 '100'을 찍고는 중국어로 한참을 얘기했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85가 아닌 100위안을 달라는 것으로  보여 다시 한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시간 같은 20분을 달렸으려나... 나에게 또다시 중국말로 뭔가를 얘기하더니 한 남자가 서있는 길가에 차를 세운다.


"저 아저씨가 일행인가?"

"둘이 같이 나를 어딘가로 납치하려나?" 

"중국은 장기밀매도 많다던데... "


갑자기 수만 가지 생각이 오고 갈 때쯤 길가에 서있던 남성이 탑승을 거절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합승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방향이 달라 태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구글맵을 따라 남역을 향해 가고 있었고 저 멀리 남역 'South Station'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하안도감이 찾아왔다. 그것도 잠시, 택시는 남역으로 향하는 고가도로를 타지 않고 그 옆 으슥한 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갓길에 차를 세운 택시 기사는 다시 중국말을 시작했고 그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난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저씨는 계산기에 '160'을 찍고 내리라고 손짓했다. 남역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160위안을 내고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에 버려졌으리라...


홈그라운드를 벗어나면
우린 너무 쉽게 나약한 존재가 된다.


난 구글맵의 남역을 가리키며 여기가면 160위안을 주겠다고 손짓 했다. 가 아는 가장 쉬운 영어로, 그리고 번역기가 말해주는 중국어로 한참을 설명했다. 내가 딱해 보였는지 택시 기사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고 남역 앞에 날 데려다주었다. 처음 탔을 때 제안했던 85위안 보다 두배 가량의 돈을 더 지불하였으나 멀쩡하게 이곳까지 오게 된 것에 감사하자는 마음이 더 컸다.


남역에 도착한 나는 콩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게 돈을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흠칫 흠칫 놀랬고, 열차를 놓일까, 혹시 리어 잃어버릴까, 화장실도 애써 참아야 했다. 그렇게 고속열차 1시간을 달려 홍콩 구룡역에 도착고, 세상 온화한 표정으로 날 향해 미소 짓는 남편을 보고 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무서웠,

네가 있어 참 다행이"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 알수록 좋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