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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녕 Dec 05. 2020

#4. 어쩌면 N번 째 인생

:: 돈이 주는 위대함과 교훈 ::

돈을 벌어서 가장 좋은 것은, 취업을 했다는 의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 대신 무언가 표현할 수 있다는 것,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내가 기대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무엇보다 가장 큰 건 나 자신에게도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것. 다음의 도약을 위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걸 깨닫고 나니 앞으로의 미래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돈이란 건 참 위대하지 돈이 전부가 아니면서, 행복을 살 수 없다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가치에서 시작이 다르다.

@an_yeong_

아버지, 다 계획이 있었군요


우리 아버지의 경제 교육 방식은 우리 남매 세대가 살아가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대학 시절 친구들의 용돈 금액을 들었을 때는 '와, 나만 이 정도 금액을 받는구나.'라며 현타가 오기도 했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받지도 안 받지도 않은 애매한 용돈 신세. 하지만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족하다 싶으면 학교에서 장학금으로, 디자인 외주로 일과 돈이 함께 들어왔다. 이제는 시간이 흐르고 옛날이야기를 안주삼아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아빠, 그때 솔직히 용돈 진짜 적은 거였죠?"라고 우리 남매는 지나간 과거에 웃으며 이야기를 던졌고 아빠는 "내가 줬던 용돈은 최소한 부모님 집에 살면서, 다른 부수적인 돈이 들지 않는 환경에 최소한의 밥값과 차비였다. 그 외에 너희가 필요한 것이 생긴다면, 알바를 하든, 장학금을 받던, 학교 혜택으로 교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미끼를 물었다. 돌이켜 봤을 때, 작게 보면 부족하고 크게 보면 그 돈마저도 아무런 대가 없이 들어오는 돈치곤 꽤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숨만 쉬어도 나가는 금액이 없으니, 그만큼도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는 것. 교육이나 생활에서는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라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그리고 대학생 때의 소비 습관이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걸 보니, 아빠의 교육 방식은 그야말로 빅픽쳐.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하신 분이었다. 


아빠가 목돈을 주셨을 때

대학 입학, 20대 성인으로서 첫 사복 구매
첫 주택 청약
서울 자취 보증금

평소보다도 어떤 시작하는 시기에 항상 목돈을 우리 남매들에게 쥐어주셨는데, 항상 시작의 의미로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셨던 우리 아버지는 금액이 어떻든 시작을 (+)로 시작하느냐 0으로 시작하느냐, (-)로 시작하느냐의 엄청난 차이와 목돈을 쥐고 시작할 때 큰 힘이 될 수 있다며 부모의 울타리의 든든함을 각박한 세상 속에서 느끼게 해 주셨다. 그러나 첫 회사, 첫 월급, 첫 자취. 알바를 제외하고 정규직으로 취업된 것은 모두 타지에서 겪은 일들이라 내 인생에서 모든 것이 새로웠는데, 그 속에서 깨달은 가치와 관점이 많았다. 우선 숨만 쉬어도 나가는 금액들은 엄청났고, 돈이 들어오기 무섭게 빠져나가기 바빴다. 부모님은 '첫 직장 가지고 2년 정도는 잘 안 모아질 거다. 지금은 너무 모으려고 하지 말고 여유 있게 살아'라며 다독거려주셨다. 그래도 작고 소중한 월급 내에서 내 나름대로 소비와 저축을 이루다 보니 내가 모을 수 있는 만큼은 모으고 이후 이사 갈 때 보템이 되었다. 하루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부랴부랴 울면서 부산으로 내려갔던 날이었다. 아빠랑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은 기회가 생겼는데, "아빠, 돈을 벌고 모으니까 아빠의 마음을 알 것 같고, 돈을 쓰니까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아빠가 돈을 모으시기 까지 사소한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엄마가 소비할 때 계획적이고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내가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하고 나서야 2N 년 만에 알게 된 것이다.


@an_yeong_

N잡의 시작


이 작고 귀여운 월급으로 어떻게 돈을 모을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4대 보험이 적용 안 되는 단기 알바도 알아보고, 돈이 되는 부수입은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다 운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촬영일이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주말 예식장 데코 업체에서 홍보용으로 업로드할 스냅사진들을 찍는 일인데, 마침 나는 디자인과 출신이라 DSLR을 가지고 있었고, 이 일을 시작하는데 망설임과 두려움은 없었다. 첫 촬영은 테스트라 입금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저는 전공자고 이쪽 업계에서 근무 중인데 돈을 받지 않는 일이라면 저는 안 하겠습니다.'라는 배짱은 또 어디서 나왔는지. 결국 첫 촬영에도 일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이후 적극적으로 스케줄을 문의한다던지, 경기도나 인천 스케줄이 나오더라도 (평균 편도 1시간 30분 이상) 콜을 외쳤더니, 실장님들이 예식 일정이 잡히면 나에게 먼저 스케줄 문의가 들어왔고, 많으면 한 달에 4건, 적어도 1~2건씩 하다보니 이 일을 한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일을 하다 보면 효율과 능률이 오르듯이 처음보다 확실히 카메라 구도나 포커스, 화이트 밸런스 등 카메라를 다루는 법도 조금씩 카메라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고 건이 줄어 주춤했지만, 이후 안정기를 되찾은 고정 프리랜서 업무가 잡힌 것이다.


Seed - 그림자 (앨범커버 의뢰작) - @an_yeong_

어릴 적 좋아하던 그림도 꾸준히 그리다 보니 내 그림체를 정착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내 그림체들과 그림 재료들을 (소수지만) 사람들이 좋아해 주셨다. 그림은 혼자 있을 때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했으며, 내면의 화를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자 타인의 공감을 헤아리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직 많이 유명한 단계는 아니지만, 40 대건, 50 대건 그림을 그리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의 재산, 나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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