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한 달 전쯤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지인들에게 육아용품도 받고 병원과 조리원, 집에서 사용하게 될 물품, 옷가지 등을 준비했다. 틈틈이 책과 유튜브 등을 보면서 공부도 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준비의 대부분은 출산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 조리원에는 뭘 챙겨가야 하나, 좀 더 나가면 아기 목욕시키는 법 같은 것들. 아니면 ‘마음 준비’를 위한 관련된 인문서들을 읽기도 했다. 출산 이후의 일은, 그때그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다. 아기마다 특징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 사야 할 물품도 달라지기 때문에 웬만한 것들은 출산 후 그때그때 사면된다고, 유튜브에서도, 지인들도 그렇게 말했다.
약간은 자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출산과 육아는 '헌신' 아니면 ‘희생'이라는 동생의 말에 '나의 선택으로 낳는 아이인데 헌신이나 희생이라는 말을 굳이 써야 하나?' 생각했다(지금도 이 단어들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아이 하나는 온 마을이 키운다고, 동네 공동육아방이나 육아종합지원센터 등도 알아보면서 이런 것들을 이용하면 되겠다 싶었다(이런 서비스도 대개는 아기가 최소 6개월은 되어야 이용할 수 있다). 친정찬스니, 시댁찬스니 주변에서 말을 많이 해도 그냥 넘겨들었다(찬스는 쓰라고 있는 것…!). 정부에서 금액 일부를 지원하는 3주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고 이후는 내가 하면 되겠지. 할 수 있을거야. 출산 후 집에 와 있으라는 부모님의 말에도 "괜찮아요~" 마다했다. (대체 무슨 자신감?? @.@)
아기가 100일이 되었을 무렵, 어느 정도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나는 여전히 허덕이고 있었다. 당황하고 또 무엇보다 반성했다.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게 '이토록' 많은 마음과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것인지, 이렇게 디테일하게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지, 너무 막연하게만 알았던 것을. 좀 더 준비를 할껄. 어떻게 준비를 했어도 절대로 완전히 알 수는 없었을 테지만......
아이는 하루하루 달랐다. 어제는 잘 먹다가 오늘 갑자기 먹지 않고, 낮잠을 하루 세 번 자야 하는데 잘 때마다 재우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는 순간이 허다했다. 코로나가 기승이었고, 어디를 가려고 하면 한 짐을 챙겨야 했다. 틈 날 때마다 인터넷 검색과 온라인 쇼핑에 매달려야 했고,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낼 수 없었다. 잠깐 시간이 나더라도 뭔가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어야 했다. 아기는 예뻤지만 책임감의 무게가 그걸 압도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힘들어. 집도 그냥 지저분하게 두고 아기 잘 땐 옆에 누워."
엄마의 말이 왜 그렇게 실천이 안 되던지. 아기는 왜 30분 자고 깨버리는지…
힘들지만 잘해 보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다가도, 어느 날은 긴장한 마음을 비우는 게 필요한 일. 이제까진 예측하고 준비하면 웬만큼 할 수 있었던 일들만 하고 살았는데 육아는 그게 안 되는 거였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 예측할 수 없는 유동성에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힘들지만, 그 파도에 몸을 싣는 일.
이 땅의 육아를 하는 모든 분들을 존경하게 됐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