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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y 25. 2022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출산 한 달 전쯤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지인들에게 육아용품도 받고 병원과 조리원, 집에서 사용하게 될 물품, 옷가지 등을 준비했다. 틈틈이 책과 유튜브 등을 보면서 공부도 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준비의 대부분은 출산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 조리원에는 뭘 챙겨가야 하나, 좀 더 나가면 아기 목욕시키는 법 같은 것들.  아니면 ‘마음 준비’를 위한 관련된 인문서들을 읽기도 했다. 출산 이후의 일은, 그때그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다. 아기마다 특징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 사야 할 물품도 달라지기 때문에 웬만한 것들은 출산 후 그때그때 사면된다고, 유튜브에서도, 지인들도 그렇게 말했다.


약간은 자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출산과 육아는 '헌신' 아니면 ‘희생'이라는 동생의 말에 '나의 선택으로 낳는 아이인데 헌신이나 희생이라는 말을 굳이 써야 하나?' 생각했다(지금도  단어들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아이 하나는  마을이 키운다고, 동네 공동육아방이나 육아종합지원센터 등도 알아보면서 이런 것들을 이용하면 되겠다 싶었다(이런 서비스도 대개는 아기가 최소 6개월은 되어야 이용할  있다). 친정찬스니, 시댁찬스니 주변에서 말을 많이 해도 그냥 넘겨들었다(찬스는 쓰라고 있는 것…!). 정부에서 금액 일부를 지원하는 3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고 이후는 내가 하면 되겠지.   있을거야. 출산  집에  있으라는 부모님의 말에도 "괜찮아요~" 마다했다. (대체 무슨 자신감?? @.@)



평소 자주 가던 산책길인데, 출산 후엔 완전히 다른 느낌. 짧은 산책도 너무 소중해진다.



아기가 100일이 되었을 무렵, 어느 정도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나는 여전히 허덕이고 있었다. 당황하고 또 무엇보다 반성했다.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게 '이토록' 많은 마음과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것인지, 이렇게 디테일하게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지, 너무 막연하게만 알았던 것을. 좀 더 준비를 할껄. 어떻게 준비를 했어도 절대로 완전히 알 수는 없었을 테지만......



아이는 하루하루 달랐다. 어제는 잘 먹다가 오늘 갑자기 먹지 않고, 낮잠을 하루 세 번 자야 하는데 잘 때마다 재우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는 순간이 허다했다. 코로나가 기승이었고, 어디를 가려고 하면 한 짐을 챙겨야 했다. 틈 날 때마다 인터넷 검색과 온라인 쇼핑에 매달려야 했고,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낼 수 없었다. 잠깐 시간이 나더라도 뭔가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어야 했다. 아기는 예뻤지만 책임감의 무게가 그걸 압도했다.  


아기의 수면에 대해 공부…공부… 뭐가 맞는거지?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392, 403쪽



"너무 잘하려고 하면 힘들어. 집도 그냥 지저분하게 두고 아기 잘 땐 옆에 누워."


엄마의 말이 왜 그렇게 실천이 안 되던지. 아기는 왜 30분 자고 깨버리는지…


힘들지만 잘해 보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다가도, 어느 날은 긴장한 마음을 비우는 게 필요한 일. 이제까진 예측하고 준비하면 웬만큼 할 수 있었던 일들만 하고 살았는데 육아는 그게 안 되는 거였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 예측할 수 없는 유동성에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힘들지만, 그 파도에 몸을 싣는 일.


이 땅의 육아를 하는 모든 분들을 존경하게 됐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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