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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Jun 21. 2020

감정이 파리한 순간에도 초파리는 태어난다

 방 안 곳곳 여름이 날아다닌다. 날파리가 여름이 왔음을 알린다. 여름은 싱크대 수채통, 화장실의 세면대와 바닥 하수구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 봄을 떠나보낼 준비가 안됐는데 여름이 왔다고 난리를 피우는 녀석들을 위해 포트기에 물을 가득 담아 끓였다. 당분간 여름이 세어 나오지 못하도록 하수구에 끓는 물을 부어 조치를 취해본다.


 그동안 청소를 말끔히 해두었는데, 심지어 계란 껍데기를 묶어놓은 밀봉된 봉투 안에서도 날파리는 태어났다.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날파리의 정체가 뭘까.


 날파리의 '날'의 의미는 그저 '난다'는 의미일까? 파리는 모두 날 수 있으므로, 이름 앞에 '날'을 붙여 유난 떨지 않았을 것이다. 이 녀석들이 아무데서나 태어난다고 해서 태어'날'의 의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니 날파리는 하루살이의 방언이라고 나온다. 그렇다, 날은 하루라는 의미다. 날파리에게 오늘은 일생이자, 파리의 날인 것이다. 태어난 날을 축하하고 기뻐만 하다가 죽는 삶, 부럽고 얄미운 삶이다.


 국어사전을 보다가 또 알게 된 사실은, 방 안을 날아다니던 녀석이 날파리가 아니라 초파리라는 것이다. 초파리는 어떤 녀석인가, 하루 단위보다 짧게 초 단위를 살아서 붙여진 걸까, 아님 다른 파리보다 작고 미세하다고 이름 앞에 초를 붙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모든 파리의 시초로 탄생해서 초라는 영광의 직위를 붙여준 걸까.


 정답은 식초의 '초'였다. 음식물이 발효되면 당분이 발생하면서 시큼해진다. 그 시큼한 틈에 태어나 초파리라고 부른다. 초파리가 계란 껍데기에서도 태어나는 걸 보면,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아주 적은 당분에서도 귀신같이 알고 태어 날 수 있는 것 같다.


 달콤한 삶을 꿈꾸는 무미건조한 순간에도 초파리는 내게 찾아왔다. 지극히 무던하게 보낸 날에도 내가 인식하지 못한 달콤한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도 초파리는 어김없이 태어나고 우리에게 무미건조함 속에 존재하는 달콤함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달콤한 마음으로 여름이 맞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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