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랑할 수 있는 건
"오, 이 노래 좋은데?"
필이 빡 꽂히는 노래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플레이어에 반복 재생 기능이 있는 이유는 이런 순간들을 위한 걸까. 한 번만 듣기 아쉬워서 아쉬워지지 않을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야 만다. 요즘은 못 가지만 코인 노래방에 가서 직접 불러보기도 한다. '어려운 노래였구나...' 사실 혼코노에서 청자는 나뿐이라 잘 부르는 것 따위 중요하지 않다. 마디마디 가사를 곱씹어 부르면 음의 높낮이처럼 감정이 더 짙어지고 옅어진다.
위 과정에 따라 반복해서 듣고 씹고 맛보게 되면, 감동은 익숙해지고 노래의 아쉬움은 사라져서 다른 노래에서 아쉬움을 찾게 된다. 가수협회와 음반협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복 재생 기능을 없애야 한다. 반복 재생 기능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아쉬움이 사라지는 순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얼마 전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우린 마지막 날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표정은 첫날 비행기를 타며 들떴었던 표정과 상반되어 있었다. 한 친구는 소화가 안돼 체했고, 한 친구는 바위에 발바닥이 찢기고 렌트 카를 벽에다 긁기도 했다. 비가 와서 패러글라이딩이 취소됐고, 밤하늘의 별도 볼 수 없었다. 우리가 아쉬움을 느낀 건 여러 아쉬운 상황들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가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끝이 났으니까.
여행이 계속되었다면 우리는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을 반복 재생한 것처럼 여행을 반복 재생하면서 못했던 일정을 답습하고 아쉬운 자리에 새로운 일정을 채워가며 아쉬움을 해소했을 것이다. 아쉬움이 사라진 순간 한동안 그 노래를 듣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여행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튜브에서 바람을 빼는 바로 그 순간 때문에 나는 여행을 사랑하는 거라고. 여행엔 늘 '끝'이 있습니다. 돌아가는 날이 있습니다. 나에게 여행지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길어야 일주일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인지도 모릅니다."
유병욱 작가님은 <평소의 발견>에서 여행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 즉 튜브에 바람을 빼면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순간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요즘 아쉬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쉽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었다. 하늘엔 아쉬움이 붉게 타고 있었다. 오늘따라 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운 건, 흐르는 시간이 유난히 아쉬운 건, 소중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하루 끝에 노을이 있다. 노을이 있어서 오늘을 사랑할 수 있겠다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