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삼공 May 02. 2023

관중

풍경을 바꾸는 힘

  점봉산 숲의 풍경은 다른 숲과는 사뭇 다르다.


  색은 짙고 그늘은 유난히 깊다.

  숲은 고생대부터 같은 풍경으로 계속 이어져온 모습이다.

  넘어진 나무들, 그 나무들을 감싸고 있는 짙은 녹색의 이끼와 낯선 식물들, 그리고 으스스 한 느낌의 큰 양치식물이 가득하다. 

  많은 요소들이 점봉산의 숲을 아주 오래된 풍경으로 보이게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관중'이라는 양치식물이다.


  주로 꽃이 피는 초본을 조사했던 나에게 양치식물인 관중은 관찰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녹음이 가득해지는 늦은 봄 무렵 점봉산에 들어서면 관중은 다른 어떤 꽃보다 더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생김새는 일반 식물의 모습과 다르고 크기는 사람 키만큼이나 크며, 숲 어디에서나 보일 만큼 개체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고, 함께 점봉산을 방문했던 대부분의 친구나 팀원들은 숲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다른 숲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마치 공룡이 가득했던 고생대의 숲을 상상했다. 그리고 이 낯설고 오래된 풍경의 이유가 덩치 큰 양치식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관중의 정체를 물어보곤 했다.


관중. 양치식물이다. 관중이 가득한 점봉산 숲은 마치 고생대의 숲 같다.


사람 키만큼이나 큰 점봉산의 관중. (출처: 한국일보)


  관중은 고사리목 면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아주 큰 고사리라고 생각하면 머릿속에 그리기가 싶다.

  고사리목답게 입 뒷면에는 포자낭이 가득하다. 관중의 포자낭을 처음 본 사람들은 벌레가 붙어있는 것 같다고 오해하며 징그러워하기도 했다.

  보통 산지의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무리 지어 자라며 잎은 1미터가 넘게 자란다. 크기도 크기지만 모습은 더 특이하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사리와는 달리 큰 줄기가 없고 잎이 뿌리에서부터 그대로 자라난 모습이다.

  커다란 잎사귀 여러 개가 땅 위에서 바로 핀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봄에 점봉산 숲 여기저기에서 싹이 트기 시작할 때면, 관중은 더 괴기스럽게 보인다. 돌돌 말린 잎이 땅에 붙어서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털이 가득 붙어 있어 처음 보면 식물인지 벌레인지 구분이 잘 안 될 정도이다.

  이러한 관중의 특징들은 점봉산을 원시림이 가득한 고생대의 숲처럼 보이게 만들어준다.

  관중은 점봉산의 숲의 풍경을, 분위기를 바꾸는 존재이다.


관중이 땅에서 올라오는 모습. 돌돌 말린 잎에 털이 복슬복슬한 모습이 괴기스럽게 느껴지도 한다.  동그랗게 말린 잎은 어른 주먹만 하다.



관중 뒷면의 포자낭. 처음 본 사람들이 벌레가 아니냐며 기겁을 하기도 한다.

 

  K 선임은 수재이다.

  고학력자가 많은 우리 회사에서도 눈에 뜨일 정도의 학력과 기술력을 가진 최고급 인력 중 하나였다. 주변 동료들은 그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K 선임은 GWP (Good Work Place) 담당자를 손수 맡았다.  회식자리를 알아보고 족구대회 같은 부서 이벤트를 기획하며, 후배들의 마음 관리를 해 주는 등 기술력이 크게 필요 없는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직접 손을 들고 나선 것이다.

※ GWP (Good Work Place) : 

     : 지금은 워라밸이 대세지만 몇 년 전에는 GWP가 있었다. 조직문화를 즐겁게 만들어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K 선임은 기술적인 업무를 할 때보다 훨씬 즐거워 보였다. 

  GWP 담당자를 안 시켜줬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업무도 훌륭히 수행을 하며 그는 처음부터 GWP 업무를 하기 위에 태어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당시 우리 부서는 두 개의 부서가 합쳐진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서로를 잘 몰라 생기는 오해와 담당자 간의 기싸움, 거기에 새로운 부서장의 억압적인 성향은 우리 조직을 경직되고 딱딱한 분위기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K 선임의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가득한 행동은 우리 사무실의 분위기를 많이 바꾸었다.

  

  특히 K 선임이 기획한 몇 개의 이벤트가 연달아 히트를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 중에 하나가 부장님들만을 위한 "6070 파티"였다. 당시에 나는 기획업무를 하고 있었기에 행사에 참석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K 선임이 기획한 이벤트는 정말 즐거웠다.

  행사는 부장님들이 학생쯤일 때 유행했던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시작되었다.

  부장님들은 시작부터 이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신이 났었다.

  행사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부장님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띄워놓고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시간이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사라지신 우리 부서 최고령 부장님의 대학생 때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풍성한 머리카락을 자랑하며 낯설지만 낯익은 청년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이 나온 당사자도 매우 행복해했고 주변 사람들도 무척 즐거워했다. 

  그 분위기는 식사 자리까지도 이어져 많은 분들이 웃고 즐기며 그날의 행사를 만끽했다.

  이벤트 다음날의 사무실 분위기는 예전에 우리 사무실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밝고 즐거웠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풍경을 바꾸고 풍경을 결정짓는 사람이 있다.

  부서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지옥처럼 만드는 성질 더러운 부서장일 수도 있고 K 선임처럼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 사무실에서 K 선임은 점봉산 숲의 관중이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 사무실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점봉산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야생화가 가득한 봄의 점봉산 풍경을 사랑한다.

  온갖 빛깔의 꽃들과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아직은 쌀쌀하지만 따뜻함이 묻어 있는 바람.

  하지만 시간이 된다면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시기에도 방문하기를 권해본다.

  다른 숲과는 사뭇 다른 풍경의, 관중이 가득한 원시림의 점봉산 숲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전 10화 큰앵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