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함께 가는 여정에 도무지 해야 할 말들이 떠오르지를 않아 침묵을 유지한다.
주말에 봉사(정토회 군법당 봉사; 군법당에 온 군인들을 위해 간단한 공양을 준비하는 일) 일정이 잡혀져 있어서 차 두 대로 나누어 탔다. 나는 성남에 사시는 택시를 하시고 우리 아빠보다 더 나이가 지긋하신 거사님 차에 타고 서초에 법사님과 사회보는 봉사자 분(법우님)을 함께 태워 군법당으로 가는 일정이다. 거사님과는 이미 친숙하지만 그래도 만나면 많은 대화거리는 없다. 그래도 우리 아이가 함께 가기에 그나마 어색한 분위기가 달래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난히 할 말이 많이 떠오르지 않아 딸아이만 바라보며 서초에 도착하였다.
서초에서 법사님과 법우님을 태우니 그래도 법사님께서 주절주절 수다를 많이 하신다. 옆에 탄 법우님은 처음 뵙는데 말수가 나처럼 없으시다. 서로 내향형임을 감지했고 간단히 인사만 나눈 채 아이를 사이에 앉히고 군법당으로 향했다. 너무 다행히도 20분 거리의 군법당이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왜 이렇게 멀리 있는 느낌이었다. 법우님께 질문을 던져볼까도 생각이 들었지만 왜 이렇게 말이 떨어지지 않는지 나의 아킬레스건이 또 한번 건드려진 느낌이다. 앞자리에서 수다 떠시는 법사님의 이야기만 들으면서 추임새만 소심하게 던진다.
드디어 군법당에 도착하여 어색한 침묵이 깨지고 친숙한 보살님들과 PX도 들리고 두런 두런 이야기 하며 군법당 봉사를 시작한다. 하는 일에 비하여 인원이 많이 와서 할 일은 많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참석한 봉사이고 새로운 곳이기도 하여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공양메뉴는 신라면과 짜파게티이고 부수적으로 피자, 오렌지, 과자 , 음료수를 준비했다. 군인들이 듣는 법문도 함께 듣고 1시간 가량의 법회활동 후에 우리가 준비한 공양시간을 맞이하며 맛있게 먹었다. 뒷정리를 하고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타고 온 그대로의 멤버로 차를 타야 한다. 돌아가는 시간의 기쁨도 있지만 차안에서의 분위기가 걱정되기도 하였다. 차를 타는 순간 법우님께 어느 지역에 사시고 어느 지회이신지 묻는 순간이었다. 간단한 대답에 나의 사는 곳을 이야기 하니 더이상 말할거리도 없고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법우님의 말수에 또 다시 침묵이 흐른다. 아까전 법회시간에 차분히 여법하게 사회를 너무 잘 보던 법우님이 동일 인물인가 싶을 정도 였다. 이렇게 말수 없으신 법우님이 사회보실 때는 달변가가 되었다. 이번에는 법사님도 침묵의 시간이다.
그래서 법사님께 나의 고민거리를 질문했다. 아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이가 발달이 느렸어서 지금 여러가지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이가 또래 친구를 잘 못사겨서 학교에서 쉬는시간에 혼자 앉아 있어요. 아이는 또래 친구에게 가서 먼저 말을 못하겠다고 해요." 하고 물었다. 법사님께서는 " 엄마가 마음이 급한 것 같아요. 그러닌깐 질문도 하는 거에요. 아이에게 치료해 주고 하는 일을 잘 하고 있었요. 아이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빠른 아이도 있고 느린 아이도 있고 다양한 아이들이 있어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고 이 아이가 잘하는 점을 자꾸 칭찬해 주고 말해주고 그러세요. 아이만의 장점과 좋은점이 있을 거에요. 그 점을 봐주고 칭찬해 주세요." 하는 말씀과 질문 잘 했다는 칭찬의 말도 해 주셨다.
질문은 잘 한 것 같은데 다시 또 찾아 온 정적이 몸은 가만히 있지만 내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약간의 답답함도 느껴졌다. 이 답답한 공기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 또한 다른 친구들에게 먼저 말 걸기 힘들어 했던 아이이다. 그래서 친구 관계 맺기가 어려웠고 친숙해 지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냥 편안하게 친구들이랑 마구 노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고등학교 때 3학년 때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들과의 시간이 생각난다. 학기 시작할 때 점심 멤버로 모였는데 서로 먹기만 할 뿐 말 한마디 오고 가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대학교에 가서 과전체 술자리의 모임에 가면 말이 잘 안나와서 난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부터 그런자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렇다고 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친숙한 사람들과는 엄청난 수다를 떨 수 있고 나로 인해 배꼽잡고 웃기기도 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찾아오는 오랜만의 정적 시간에 조금은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좋은 일을 하고 서로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찾아오는 정적 시간을 조금은 편안하게 맞이했으면 한다. 내향적이고 말 수가 많지 않는 나에게 언제든 올 수 있는 가슴 요동치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이 정적을 맞이할 때는 대범한 마음으로 확 끌어 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과 대면하여 힘들어 하지 않고 파도치듯 유연하게 이 상황을 맞이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