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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Mar 11. 2021

나는 어른이 되었는가_(2)


나는 크다. 180cm가 넘는 키에 몸무게도 세 자리니 길이, 부피, 면적 어느 쪽으로든 상위권에 드는 몸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30대까지의 나는, 그럭저럭 민첩했다. 유치원 때부터 결혼 초까지 운동을 놓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근력이야 당연하고, 덩치에 맞지 않는 순발력 덕분에 “둔하다”는 말은 듣지 않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가를 어깨 한 번 부딪히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내 뒷모습에 친구들이 감탄하는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둔해졌다. 신경은 둔감해졌고 근육은 탄력이 줄어들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그런 변화는, 스스로 알아차릴 만큼 확연해졌다. "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난 그런 몸이 원망스러웠다. 그리 정직하지 나이건만, 왜 내 몸은 그렇게 거짓말 하나 못 하는 고고한 존재란 말인가. 그런 솔직함으로 인해 나는,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움직여야 한다는 인식과 그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몸 사이에 괴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괴리乖離. 서로 어그러져 동떨어짐. 세상 대부분의 실망과 분노와 슬픔과 좌절은 여기에 기인한다.      


나는 나를 기억한다. 나의 가장 건강하던 때를 기억하고 가장 활기찼던 때를 기억하며 그래서 가장 즐거웠던 때를 기억한다. 기억한다. 기억이라는 건 가끔 잔인하다. 모두 예전 일이라는 의미니까. 이제 다시 구체화 될 수 없는 정지된 이미지라는 뜻이니까. “라떼는 말이야”라며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얼굴을 하는 게 자연스러울 때가 다가왔다.      


서울에 살던 시절, 일주일이면 두세 번은 한강에서 평속 20km를 유지하며 2시간 정도 자전거를 탔다.


물론 그 ‘라떼’를 좀 더 오래 마실 수도 있었다. 지금을 조금 더 나중에, 조금 더 천천히 마주할 수도 있었다. 운동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했으면 될 일이었다. 그랬다면 훨씬 좋은 상태의 몸을 유지할 수 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변명이 워낙 많아 선택에 어려움이 느껴지니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생략하도록 하자. 어쨌든 나는 아이를 키우며 운동을 멀리했고 덕분에 내 나이에 어울리는 몸을 갖게 됐다. 확연하게 느려지는.     


이런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가장 올바른 방법은, 다시 운동을 하는 것이다. 다만 스스로에게 다짐을 받아놓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예전만큼 운동해서는 예전만큼의 운동능력을 갖출 수 없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납득해야 한다. 모든 신체기능이 20대 후반만 못하기에, 나는 더 정성을 들여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 한들, 예전 수준에는 결코 이를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당히 비효율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비효율적인 존재다. 그것이 운동이든 음식이든 지식이든, 투입되는 것에 비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보잘 것 없다. 생산성이 낮아졌다. 예전보다 더 정확한 자세를 유지해야 부상을 피할 수 있고, 예전보다 더 정제된 것을 먹어야 소화에 문제가 없다. 책을 읽을 때 소모되는 에너지 역시 훨씬 더 커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 촬영을 하면, 그 여파가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몸이 됐다.


체력이 강해지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지면 글이건 사진이건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40대가 되며 절감하게 된 사실 중 하나다. 컨디션이 좋을 때의 사진이나 문장이 그렇지 않을 때의 것들과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프로는, 가끔 120%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80%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명제에 비추어 보면, 난 돈 받고 일을 할 자격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그동안 쌓아온 요령으로 어찌어찌 욕을 안 먹을 정도로 납품을 하고 있지만, 이제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어졌다. 도전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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