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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Oct 03. 2023

우리는 모두 한때 과학자였으니까

제1차 과학관 여행

대전. ‘노잼’을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데에 전혀 주저함이 없는 자존감 높은 도시. 내가 대전을 처음 경험한 건, 내 또래들이 대개 그러했듯, 1993년 대전 엑스포를 통해서였다. 서울올림픽 이후 오랜만에 치러지는 국제 행사였을 뿐 아니라, 10년도 남지 않은 21세기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하던 시기였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과학입국(科學立國)’이라는 국가적 슬로건에 대해 적잖은 사람들이 공감하던 때였다. 나 역시 과학자가 되는 꿈을 가졌던 때가 있었으니까.     

 

대전 엑스포에서 가장 많이 보았던 건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자기부상열차였다. 당시 유행하던 이런저런 과학과 관련된 잡지나 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미래 기술의 총아 중 하나였던 자기부상열차는, 여행과 과학을 좋아하던 내게 더 없이 흥미로운 존재였다. 그래서 비록 몇백 미터에 불과한 거리지만, 실제 자기부상열차를 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그 뙤약볕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부터 대전은 내게 과학기술과 관련된 이미지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대전을 방문한 이유 중 대부분이 그곳에 설립된 각종 연구소에서의 취재 때문이었기에 그런 선입관은 더욱 공고해졌다. 한 번은 로컬 협동조합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던 중 “매장에서 진열과 계산을 담당하는 여성 근로자들 중 많은 수가 석사 이상의 학력을 자랑하는 전문 연구원들이었고 그래서 매장 운영도 오래 전부터 상당히 체계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시 대전!”이라며 감탄을 한 적도 있다.      


다만 그런 대전을 업무 이외의 목적으로 방문한 기억은 대전 엑스포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성심당의 빵이 훌륭한 걸 모를 리는 없었다. 대전 출장의 마지막 코스는 항상 성심당이었으니까. 하지만 성심당만을 목적으로 향하기엔, 다른 이유로 대전에 갈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런 내가 노트북과 카메라 없이 대전에 갈 계획을 세우게 된 건, 과학관에 가보고 싶다는 알밤이의 요청 때문이었다.     


과학관. 미디어가 지금만큼 다양하지 않던 80년대만 해도 남자아이들에게 그 어떤 곳보다 흥미진진했던 공간. 하지만 깨달았다. 어떤 과학관은, 비단 어린이 뿐 아니라 연령과 국적을 불문하고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이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뮌헨의 명소이자 독일의 자랑거리이며 모든 과학과 기계 매니아들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독일박물관을 경험한 이후 얻게 된 깨달음이었다.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 1903년, 독일공학자협회의 회원 중 한 명이자 사업가였던 오스카 폰 밀러의 제안에 의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독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곳. 그래서 전시 대부분이 과학과 기술에 대한 것들에 편중돼 있지만, 관람객들은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역사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기에 박물관이라는 이름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 구성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지만, 2006년 당시 내가 경험한 독일박물관은, 다른 여느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시대순으로 전시가 구성돼 있었다. 다만 석시-청동기-철기 이후 바로 로마 시대로 이어지는 부분이 신선했다. 그 후부터는 인류의 기술이 진화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건축 및 기계와 관련된 기술을 상세히 재현해뒀다. 할 수 있다면 당시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옮겨두기도 했는데, 2차 대전 당시 활약(?)하던 나치의 실제 잠수함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독일박물관에서 머물렀던 건 대략 다섯 시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는 독일현대미술관도 연이어 관람할 계획이었지만, 박물관에서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한 탓에 그 일정은 뒤로 미뤘다. 일요일이 아니면 관람료가 비싸짐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에 온전히 하루를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다. 관람 코스 마지막에 등장한 양자물리학관을 제외하면, 나는 모든 곳에서 매료됐다. 나도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분명히 기술과 관련된 일을 했을 거라는 신념 같은 것도 갖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독일박물관 같은 곳은 오직 독일박물관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관람하는 모든 이의 지적 호기심을 정확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세상에서 그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국내 과학관 대부분은 어린이, 조금 더 눈높이를 높여봤자 청소년들에게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인과 과학 사이에 왜 괴리가 생기는 건지 아직 이해가 쉽진 않지만, 그래서 박물관과 달리 과학관은 초등학생들 위주로 전시와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있다.      


문제는, 그런 과학관이 우리집과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는 데에 있었다. 과학관은 광역시 혹은 인구 100만 이상의 창원시 같은 곳에나 존재하니까. 그래서 알밤이의 과학관 관람 요청을 접수한 후 가장 먼저 짚어 본 건, 새삼스럽지만, 각 과학관까지의 정확한 거리였다.      


물론 가장 가까운 곳은 창원이었다. 다만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을뿐더러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이미 한 번 다녀온 경험이 있다. 곧 어엿한 고학년이 될 녀석이었기에 좀 더 본격적인 과학관을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라면 과천 서울과학관이 최선이라 생각하기 쉽겠지만, 천만의 말씀.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위상을 갖고 있는 국립중앙과학관은 대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과학기술과 관련된 많은 기관과 기업이 대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알밤이에게 “유튜브에서 대전 과학관을 검색해 봐”라는 과제를 주고 대전에서의 일정을 계획해봤다. 마침 봄방학 기간이었으니 평일에도 출발이 가능한 상황. 평소 등교할 때와 비슷한 시각에 통영을 출발하면 점심 시간 무렵 성심당 본점에 도착하게 되고, 점심 식사 후 빵쇼핑을 한 후 과학관에 가서 천천히 관람 후 저녁 식사. 이후 유성온천에서 뜨끈하게 몸을 담갔다 귀가. 이 정도면 대전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셈. 알밤이도 이런 계획에 동의했다.      


집에서 대전까지, 오랜만에 알밤이만 태우고 2시간 40분을 달리다 보니 이 녀석이 벌써 아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가는 동안 내가 묻는 말에 대한 대답 외에는 한마디도 안 하는 거였다. 엄마 혹은 제 동생과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 그게 웃기기도 하고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아들로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였기에 대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과학관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먼저 도착한 곳은, 계획했던 대로 성심당이었다. 우선 지하상가에 위치한 성심당 우동집에서 식사를 한 후 드디어 본점에 입성했는데, 그렇게 큰 빵집에 그렇게 많은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걸 처음 본 알밤이가 당황한 게 느껴졌다. 그나마 평일이라 사람이 적은 편이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녀석은 얼른 나가자 했을 터였다. 그래도 오래 머물 수는 없는 공간이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알밤이가 원하는 빵, 내가 평소 자주 구매하는 빵들을 가득 구입한 후 다시 차에 올랐다.      


오후 1시 30분쯤 도착한 국립중앙과학관은, 주차장의 위용부터가 대단했다. 인근에 위치한 기관을 방문하기 위해 그 앞을 지나다닌 일은 많지만 실제 진입한 것은 처음이었던 나 역시 예상보다 큰 규모에 과학관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알밤이 역시 마찬가지 기분이었던 모양인지, 제법 거리가 되는 본관까지 이동하는 속도가 평소와는 달랐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자연사관과 과학기술관이 마주 보고 있고 그 뒤로 천체관과 미래기술관, 과학교육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먼저 발걸음을 한 곳은, 자연사관과 과학기술관 사이로 보이던 야외전시장이었다. 그곳에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와 대전 엑스포의 상징이었던 자기부상열차가 반짝이는 모습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자기부상열차 앞에서 알밤이에게 이게 어떤 의미를 갖는 물건인지 설명해줬다. 물론 그걸 다 이해하기는 힘든 일이었을 테지만.      


예상치 못한 추억과의 재회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알밤이의 친구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 과학기술관으로 들어섰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는, 오래돼 보이는 전시품부터 얼마 전에 새롭게 들여온 것으로 보이는 최신 체험 기구까지 다양하게 준비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험한 과학관이 창경궁 옆 국립어린이과학관이었던 터라 그 규모만으로도 녀석에게는 장거리를 이동한 보람을 느끼게 해줬다. 나보다 앞장 서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이것저것을 묻는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신이 나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인터뷰 때문에 만났던 책임자급 박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국책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이어오던 은퇴 연구자들의 연구 경력을 활용하기 위해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기간 동안 강의를 개설했는데, 그 강의가 진행되는 곳이 국립중앙과학관이었다. 굵직한 직책을 갖고 있던 연구자들의 직강이 개설된다는 소식에 신청은 눈 깜짝할 새 마감이 됐고, 강의가 진행되는 날이면 전국으로부터 학생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물론 대한민국 학부모들이라면 그런 강의가 진행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이를 태우고 달렸겠지만, 대전이라 접근성이 좋다는 평가가 많았다는 이야기였다.      


우리집도 나중에 아이를 태우고 유명하다는 누군가의 강의를 듣기 위해 길을 달리게 될까. 아이가 원한다면야 기꺼이 그러겠지만, 우리 부부 중 누군가가 먼저 등을 떠밀 일은 없지 않을까. 등을 떠민다 해서 순순히 떠밀 아이로 자라게 될까. 아니, 떠밀려 간다 해도 그 정도 수준의 강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머리를 갖고는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상상과 터무니 없는 기대, 괜한 걱정 같은 것들이 뒤섞인 채 함께 과학관을 오가던 중, 알밤이의 시선이 꽤 진지하게 고정돼 있는 걸 알아차렸다.      



그것 축구 골대였다. 앞에는 축구공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가까이 가 설명을 읽어보니, 무회전슛으로 골을 성공시키는 미션을 성공시키라는 내용이었다. 무회전슛이라. 너무 어려운 문제인데. 

    

날아가는 모든 물체는 회전을 한다. 그 회전은 날아가는 물체가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게끔 만든다. 반면 무회전슛은 공의 정중앙을 차서 좌우상하 어느 쪽으로도 회전하지 않도록 만든다. 회전 없이 날아가는 공은 일정한 궤적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진행방향을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공을 막아야 하는 골키퍼 입장에서는 답이 안 나오는 상황과 대면하게 되는 셈이다.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무회전슛의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건, 그 원리가 회전 없이 날아가는 너클볼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너클볼 역시 공을 받는 포수마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갑작스레 방향 전환을 하기 때문에 제대로 구사하거나 안정적으로 포구할 수 있는 투수와 포수의 숫자는 한정적이다. 그리고 무회전슛 역시 정확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찰 수 있는 선수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제 막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알밤이도 무회전슛이 무엇인지는 이미 다양한 영상을 통해 알고 있었다. 자신의 슛을 카메라를 통해 분석해준다는 기계 앞에서 녀석은 기대와 설렘, 긴장이 잔뜩 버무려진 칼국수집 겉절이 같은 얼굴이 돼 있었다. 어떻게 공을 차야 할지 고민을 하는 한편, 앞에서 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꼼꼼히 주시했다. 하지만 이 녀석의 운동 신경이 그리 신통치 않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알밤이의 차례가 됐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힘껏 차!”라고 격려와 함께 등을 두드려주는 것 외엔 없었다.      

세 번의 슛 기회가 주어졌지만, 무회전슛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알밤이가 실망할까 걱정이었지만, 이 녀석도 그게 얼마나 어려운 미션인지 알고 있었기에 큰 타격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실험실 안에서 번개가 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으로도 유명한 테슬라 코일을 재현하는 곳에서 녀석은 전기가 지나가는 통 안에 들어가는 체험에 선정됐기에 아쉬움 같은 건 남지 않았다.      


알밤이 혼자만 데리고 오길 정말 잘했다 생각했던 게 바로 이 테슬라 코일 체험 때였다. 사회자가 체험 희망자를 무작위로 선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열심히 손을 들고 있던 그 많은 아이들 중 형제가 뽑힐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즉, 만약 알밤이가 뽑혔다면 호두는 뽑히지 않았을 거라는 뜻. 그렇다면 당연히 호두는 심통이 났을 테고, 그때 틀어진 기분은 어떻게 해도 쉽게 바로잡히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편치 않았을 테고. 내가 “취향에 맞춘 가족 여행”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과학관을 모두 둘러보고 다시 주차장으로 향하기 위해 밖으로 나서자, 벌써 어둑한 기운이 가득했다. 알밤이를 태우고 향한 곳은 피자집. 이 역시 호두가 없었기에 홀가분하게 선택가능한 메뉴였다. 우유를 비롯해 우유로부터 파생된 각종 유제품을 싫어하는 호두는 “치즈 없는 피자” 같은 형이상학적인 피자를 선호하는 터라,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을 기회가 흔칠 않았다. 내가 “호두 없으니까 뭐 먹을지 정하기 쉬워 좋다. 그치?”라며 웃자 알밤이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자를 먹고 향한 곳은, 그날의 마지막 코스였던 유성호텔 대온천장이었다. 표를 끊으며 생각해 보니, 업무 때문이 아니라, 놀기 위해 대전에 온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신혼 무렵, 할 일이 없던 어느 주말 아내와 함께 유성호텔에 와서 1박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대온천장에서 온천을 즐기기도 했었고. 다만 그때는 온천 출입구 앞에 대형 바나나맛우유 모형을 중심으로 한 포토존은 없었다. 알밤이는 그곳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는 기분 좋게 탈의실로 향했다.     



유성호텔의 대온천장은, 도심에 위치한 곳답지 않게 노천탕이 구비된 곳. 그 노천탕의 가치는 겨울에 빛나는 법. 그리고 나와 알밤이가 방문했을 때는 아직 찬바람이 불어오던 2월. 덕분에, 평소 온탕 지구력이 그리 높지 않았던 알밤이도 찬바람을 맞아가며 아빠와 비슷한 수준으로 온천욕을 즐겼고 덕분에 나 역시 재잘거림 담당 호두가 없는 호사를 아쉽지 않게 누릴 수 있었다.      


온천을 끝내고 나오니 시간은 어느새 8시 무렵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 40분 정도 될 테고, 녀석은 양치질만 하고 바로 자면 되겠지. 시동을 걸고 천천히 호텔을 빠져나올 때부터 알밤이는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 올랐을 무렵엔 잠이 들었지만, 그래도 집에 도착했을 무렵엔 다시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다. 덕분에 이제는 제 엄마와 비슷한 몸무게를 자랑하는 녀석을 들고 오지는 않아도 됐다.      


호두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아내는 졸린 표정으로 이를 닦는 알밤이의 등을 토닥이며 재미있었느냐 물었다. 알밤이는 반밖에 뜨지 못한 눈을 천천히 껌뻑이며 고개를 끄덕이다 양치질을 마무리했다. 내게도 고생했다며 웃던 아내는 “호두 역시 형 없이 없으니까 엄마랑 둘이서만 있을 수 있어 좋아했다”고 따로 보냈던 하루를 설명했다. 우리의 하루는, 멀끔하게 온천욕까지 하고 돌아온 알밤이의 노곤한 상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서로 가장 즐거운 한 때를 보낸 사람들답게, 무척이나 잘 잤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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