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4차 겨울맞이여행
겨울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풍경은 무엇일까. 어른들이야 각자의 기억과 경험과 상황 때문에 너무나 다양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겠지만,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될 무렵의 아이들이라면 거의 비슷한 답을 할 것이다. 썰매와 눈싸움과 눈사람. 어른이 돼서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겨울의 상징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게다가 더위를 많이 타고 추위에 강한 체질 덕분에 오래 전부터 겨울을 가장 좋아했으니.
이 겨울의 상징들을 보기 위해 핀란드 헬싱키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8시간을 달려 산타마을에 도착한 경험이 있다. 물론 헬싱키에 도착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 헬싱키에 먼저 도착해야 했으며, 단 며칠 만에 다녀올 수 없는 여행을 위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후회는 없느냐고? 결코 없었다. 내가, 한 달에 보름을 새벽에 퇴근하던 생활을 참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순간을 위해서였으니까.
12월 23일 저녁 9시 무렵 도착했던 산타마을 로바니에미는, 세상 어느 곳보다 어두운 하늘 과 빛나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북극권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캐나다 온타리오, 스웨덴 모라 등과 치열한 ‘원조 산타마을’ 경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둔 곳. 그렇다 해서 그리 크지 않은 시내까지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흥청이는 것은 아니었다. 해가 뜨지 않는 극야 속의 작은 도시는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산타 할아버지께”라는 편지가 전 세계로부터 모여드는 곳까지는 다시 버스로 30분을 이동해야 했다. 별로 수고롭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웠을뿐더러, 내내 두근거리는 여정이었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어둑한 오전 10시 무렵 도착한 목적지엔,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 읽던 안데르센 동화집의 삽화 속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온통 눈 덮인 침엽수림으로만 가득 찬 숲길을 걷다 썰매를 끄는 순록 떼와 마주치기도 하고 이글루에 들어가 커피를 마셔 보기도 했으며 전 세계의 모든 언어로 인사를 건네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만나기도 했다.(물론 무료는 인사까지. 촬영은 유료였다) 내가 상상하던 겨울과 크리스마스의 풍경들이 모두 실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29살의 여행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런 풍경을 직접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대신 눈밭에서 뛰어놀며 눈사람 만드는 경험이라도 선사하고 싶었다. 아내 역시 그런 생각에 동의했다. 전국에서 가장 눈이 귀한 경남 끄트머리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겨울마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근 지역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렸다. 후보지는 전라북도 남원이었다.
남원은 나와 아내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었다. 2시간 이내에 눈밭이 넓게 펼쳐진 곳. 우리 집에서 1시간 40분 거리에 위치한 광한루원이 딱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원에 눈 예보가 내린 어느 주말, 포털 사이트의 지도를 통해 고속도로의 CCTV를 확인했다. 교통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설치된 기계지만, 날씨에 일정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내게는 목적지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훌륭한 도구이기도 했다. 그런 고속도로 CCTV를 통해 남원요금소 인근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는 게 확인됐다. 아내와 난, 미리 준비해놓았던 눈놀이 옷들을 아이들에게 입히고 지체없이 출발했다.
차가 고속도로에 오른 후 한 시간 정도 지날 무렵이면 산청에 이르게 된다. 본격적인 지리산 권역. 희끗희끗한 풍경들이 차창밖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눈 보여?”라고 물어보면 고개를 길게 빼고 바깥을 보다 “눈이다!”라고 소리를 지른다. 함양에서 전북 방향으로 접어들면 한동안은 긴 오르막길을 오른다. 자연스레 시야가 넓어지고 밝은 회색 혹은 순백색으로 빛나는 이런저러한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도착하느냐는 질문의 빈도가 높아진다.
그렇게 도착한 광한루원은, 예상보다 따뜻했다. 맑고 푸른 하늘에 햇볕이 꽤 강하게 내리쬐던 덕분이었다. 그래서 주차장의 눈들은 이미 군데군데 녹아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트렁크에서 카메라를 거냈고 아내는 아이들을 차에서 꺼냈다. 입장료를 끊고 광한루원으로 들어서자, 다행히 온전한 형태의 눈밭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아이들은 뒤뚱거리며 눈밭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 모습을 ‘제대로 된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그 곁을 분주하고 오갔다. 흔치 않게, 일하는 것처럼 사진을 찍었던 건, 나중에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니들 재밌게 해주려고 이런 데까지 갔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순간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 앳된 모습을 저장하는 것도 큰 목적이긴 했지만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식상한 레퍼토리에 맞설 세세한 자료를 축적해놓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아내는 눈을 뭉쳐놓고 있었다. 눈싸움을 하고 싶었던 아이들을 위해 견본을 만들어 놓은 것. 하지만 정작 이 녀석들이 원한 건 눈사람이었다. 물론 주먹만 한 눈덩이 두 개를 이어붙인 눈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자기들 키만큼은 큰 눈사람을 요구했다. 아내는 “그럼 엄마랑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고 아이들도 좋다고 눈을 뭉쳐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집중력과 목적의식이 엄마만큼 높고 강할 수는 없는 법.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굴리는 건 아내 혼자 뿐이었다.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몸놀림으로 사방을 뛰어나녔다.
“엄마 안 도와주면 눈사람 안 만들어!”
엄마의 으름장에 농구공만큼 커진 눈덩이를 끙끙거리며 미는 시늉을 하던 아이들은 금세 흩어졌다. 저희들끼리 눈을 뿌리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 해서 정말 눈사람을 만들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결국 아내 혼자 눈사람을 완성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눈사람다운 위용을 자랑할 만큼은 됐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은 그리 열광적이지 않았다. 그저 나뭇가지 따위를 갖고 와 얼굴에 표정을 만들어준 게 전부.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어 “너희들을 이렇게 즐겁게 해준 부모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려 했던 나나, 가장 싫어하는 계절인 겨울에 한 시간 가까이 눈밭에서 눈덩이와 씨름을 한 아내 모두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아내가 “어린이들! 눈사람 안 좋아?”라고 붙잡고 물어도 “좋아!”하고는 다른 데로 달려가 버렸으니까.
광한루원에서 이리저리 눈밭을 거닐고 때로는 뛰어다니던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건 오후 2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명하다는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뚝뚝 녹아내리는 창밖의 눈덩이들을 잠깐 감상했다. 가뜩이나 해가 짧아진 계절, 산자락에서는 땅거미가 더 일찍 내린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차에 채운 게 오후 4시 무렵.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당연히 잠이 들었고, 나와 아내는 어쨌든 숙제 하나를 끝낸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런 남원을. 3년 후 다시 찾아갔다. 역시 겨울이었다.
다시 남원을 찾은 건, 역시 눈 때문이었다. 그 전 해에는 구례엘 갔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고, 아이들은 광한루원에서보다 더 신이 나 뛰어다녔다. 덕분에 즐거운 겨울 한때를 보낼 수 있긴 했지만, 돌아오는 길이 어딘지 모르게 아쉬웠다. 하룻밤 자고 오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다. 이제, 낯선 곳에서 겨울밤을 보내는 낭만을 이 녀석들도 즐길 수 있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점멸하는 것처럼 반짝이며 흩날리는 눈송이들과 그 눈이 쌓여 있을 내일 아침을 상상하는 두근거림, 그림책에서 보았던 풍경을 떠올리게 되는 크리스마스 장식들, 그 아래서 들떠 있는 여행객들. 모두 겨울밤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풍경들. 이 녀석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통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니까.
우리 부부가 통영에 내려온 첫 해 겨울, 나는 무엇보다 통영의 크리스마스가 궁금했다. 눈도 오지 않고 춥지도 않은 이곳의 크리스마스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차가 막힐 것을 각오하고 아내와 함께 일부러 시내에 나가봤다. 하지만, 통영에서 가장 붐빈다는 그 거리는 주말보다 한산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은 곳들도 프랜차이즈 업소들 외에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날들 중 하루인 크리스마스는, 의외로 감탄할 만한 모습이기도 했다. 세상에 그런 크리스마스, 아니 겨울 풍경은 오직 통영에서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녀석들이 각각 4살과 2살이었을 때 일부러 부산 남포동 크리스마스 축제를 찾기도 했다. 겨울밤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울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 녀석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아예 읍 단위 시골로 이사를 한 상황이었던 터라, 해가 지면 동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게 당연한 환경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휘황찬란한 조명들과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내 입을 벌리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하룻밤을 자고 온 것은 아니었다. 저녁과 후식을 먹고 집에 돌아오기에 큰 무리가 없는 거리였다.
남원에서의 겨울밤은 부산에서의 겨울밤과 달리 고요할 게 틀림없었다. 물론 연말이었기에 우리가 예약한 호텔에 적잖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틀림없었지만, 그 사람들이 지리산자락을 가득 채울 수는 없을 테니까. 산자락의 겨울밤은 어느 곳보다 깊고 고요할 테니까. 그곳에서 내리는 눈송이는 무척이나 무거울 테니까. 우리 부부는 다시 남원으로의 겨울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마침 저녁에 눈이 예보된 날 떠나기로 했다.
이번엔 광한루원에 가질 않았다. 다만 남원요금소를 들어서면서 “늬들 예전에 여기서 엄마가 눈사람 만들어줬던 거 기억 나 안 나?”라고 묻기는 했다. 물론 신나는 목소리의 “안 나!”라는 대답만 돌아왔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들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다시 엄마 혼자 눈사람을 만들 수도 없는 일인 것을.
두 번째 남원 방문 당시 첫 목적지는 남원 백두대간생태교육 전시관이었다. 남원에서 어디를 갈까 검색하다 알게 된 곳이었는데, 얼마 전 개관한 건물 특유의 깔끔한 외관을 본 아이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신이 난 표정이 됐다.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한 눈발은 그런 기분을 더욱 기운을 불어넣었다.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내부는 백두대간의 생태계를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동물들은 박제나 모형 형태로 전시해두었기에 큰 감흥이 없었지만, 어떤 동물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아보기 쉽게 정리한 도표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특히, TV나 유튜브, 동물원 등에서만 보던 동물들이 전시관과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그보다 더 관심을 보였던 것은 호랑이 라이드. 안장을 얹은 호랑이 모양으로 제작된 탈 것 위에 올라타 영상을 통해 백두대간을 훑어보는 일종의 가상체험이었는데, 아무래도 완성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놀이동산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 한반도를 대상으로 한 영상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던 터라 아이들은 꽤 집중해 관람했다.
전시관 안에는 이런저런 놀거리들이 꽤 잘 갖춰져 있었다. 특히 유치원부터 초등 저학년까지는 몰입해 즐길 수 있을 만한 게임들도 적잖게 준비돼 있었던 덕분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만 해도 괜찮았다. 첫 번째 겨울 남원 여행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눈밭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그런데, 다시 바깥으로 나오니 눈발이 제법 거세졌다.
조심조심 운전해 도착한 곳은 돼지갈비집이었다. 눈 내리는 저녁, 열기가 오르는 테이블에 모여 앉아 구워 먹는 돼지갈비! 얼마나 낭만적인 광경인가. “우리집 외식”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억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풍경이기도 했다. 그래서 중학교 입학 무렵에는 어머니로부터 “늬들은 외식이라고 하면 돼지갈비밖에 생각나는 게 없냐?”고 타박을 들어야 했지만, 그래도 돼지갈비는 밖에서 먹는 밥상의 중심에 위치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메뉴였다.
아이들도 돼지갈비를 좋아했다. 그 달콤한 고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중에서도, 잔반을 남기지 않고 항상 모든 반찬을 깨끗하게 비우는 모범 초등학생인 큰 녀석은 더더욱 좋아했다. 그래서 열심히 구워야 했다. 형에게 지기 싫어하는 호두도 오랜만에 쉴 틈 없이 고기를 먹었다. 나와 아내가 겨우 갓 구운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건, 녀석들이 된장찌개와 냉면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요즘 아이들 고기 구워주는 일이 부쩍 힘들어졌다는 생각을 하며 바깥으로 나오자,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돼지갈비집의 뜨거운 식사를 끝내자, 설국이었다.”라는 쓸 데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전에 아이들은 눈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이 이만큼이나 펑펑 내리는 눈을 본 건 처음이었다. 쌓여 있는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상황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마냥 환호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눈의 기세가 감상만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차를 몰아 호텔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우와 최고급 호텔이야 최고급!”
물론 그 호텔이 나쁜 곳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서 최고급 호텔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녀석들은 펑펑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은은한 금빛을 발산하고 있는 지리산 자락 아래 호텔이 꽤 낭만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로비에 설치된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런 낭만적 감상을 최대한으로 증폭시켰고.
태어나서 가장 겨울다운 하룻밤을 보낸 아이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눈밭으로 나가길 원했다. 어젯밤, 투숙객 몇몇이 만든 눈사람이 잘 있는지 얼른 보고 싶다는 거였다. 내가 짐을 챙기는 동안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몇 개의 가방을 짊어지고 로비 바깥으로 나갔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보이질 않았다. 저기쯤 있으려나 싶은 곳에서 꼬물거리는 아이들과 천천히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그 뒤를 좇았다.
아이들은 완만한 경사의 눈밭에서 눈을 뭉치려고 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눈은 자꾸 부서지기만 했다. 어젯밤엔 분명히 함박눈이 내렸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잘 뭉쳐지질 않았다. 그래서 눈싸움 대신 눈뿌리기 대결을 하던 아이들은, 조금 더 위쪽 방갈로 근처에 고양이들이 있다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큰 녀석인지 작은 녀석인지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아무튼 둘 하나가 뒤를 돌아보더니 “엄마, 눈사람 만들어줘!”라고 큰소리로 부탁을 했다. 어젯밤, 다른 사람들이 눈사람 만들던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던 아이들에게 아내는 “내일 눈사람 만들자”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이들은 그 약속을 “내일 눈사람 만들어줄게”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 내가 들어도 기가 막혔으니 당사자인 아내는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
“같이 만드는 거야! 엄마 혼자서는 안 만들 거야!”
아내는 두 번 다시 남원에서 혼자 눈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아이들은 그런 걸 돌아볼 틈도 없이 고양이를 찾으러 갔다.
“눈사람 만들고 싶으면 얼른 와! 안 그럼 엄마 갈 거야!”
그제야 아이들은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와 쪼그려 앉아 눈뭉치를 만들었다. 하지만 조금 아까 확인했던 것처럼 눈은 좀처럼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그리고 저 위에서는 검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은 그때마다 “고양이다!”를 외치며 일어섰다 다시 쪼그려 앉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엄마 곁을 떠났다.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고, 나는 다시 조심조심 차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아주아주 커다랗지만, 그 모습이 들키지 않길 바라는 검은 고양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