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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Mar 28. 2024

죽은 개를 기억하다_(8)

한비_6

대부분의 진돗개들은 목욕을 싫어한다.

진돗개 뿐 아니라 목욕을 좋아하는 개는 많지 않다.

더군다나 전문가의 세심한 손길이 아닌 

주인의 막무가내 손빨래식으로 이루어지는 목욕을 좋아하는 개들은 더더욱 많지 않다.

한비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목욕을 시켜야만 했다.


한비를 목욕시키는 단계는 이러했다.

가만히 누워 있는 한비의 등 뒤로 가다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면

한비는 나를 잠깐 돌아본 후 원래 있던 자세로 돌아간다.

그런 한비 등 뒤에 나란히 누운 후 가만히 끌어 안으며 

"우리 한비는 어쩜 이렇게 이쁠까?"라고 중얼거린다.

한비는 귀찮지만 잠시 참아주겠노라며 고개를 거실바닥으로 파묻는다.

나는 그런 한비의 몸을 반 바퀴 돌려 나와 마주보게 만든다.

성가셔 하는 표정이 역력하지만, 아직까지는 참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 한비의 얼굴을 내 왼쪽 어깨에 가깝게 밀착시키며 꼭 껴안는다.

그리고 귀에 "목욕할까?"라고 속삭이면

이제 막 시동을 건 4기통 엔진처럼 앞발과 뒷발로 나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런 한비를 나는 더욱 꽉 껴안으며 

"우리 한비가 목욕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치?"라고 재차 속삭인다.


그 상태로 한비를 들어올려 욕실로 들어가거나

뒤에서 앞발을 들고 걸음마를 돕듯 어기적거리는 한비를 앞세워 욕실로 향한다.

그나마 이건 상대적으로 얌전한 방법들이다.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 아래 누워 있는 한비에게 소리를 친다.

"한비! 목욕!"

그럼 한비는 벌떡 일어나 꼬리를 말고 마당 구석으로 도망친다.

뒤따라 나간 나는 수도꼭지를 열고 마당 이곳저곳에 물을 뿌리며 물청소를 겸해 한비에게 장난을 친다.

한비는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지만, 어쩌겠는가. 도망갈 곳 없는 좁은 마당인 것을.


마침내 시멘트 바닥을 모두 물로 씻어내리면

한비 쪽으로 호스를 가지고 가 슬슬 물을 뿌린다.

그때쯤이면 한비도 포기한 상태로 뿌리는 물을 맞기만 한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한비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수도가 쪽으로 한비를 이동시킨다.


욕실에서건 마당에서건, 목욕이 시작되면 그 후의 과정은 동일하다.

우선 빨래비누로 털의 기름기를 한 번 쫙 빼준다. 

그 후에 개샴푸를 이용해 윤기와 부드러움을 더해준다.

비누칠과 샴푸를 하는 동안에는 다리 사이로 한비의 허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털이 많이 나 있는 엉덩이 쪽에서 잔뜩 거품을 만든 후 점점 머리 쪽으로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겨드랑이와 목덜미를 특히 꼼꼼하게 닦아줘야 한다. 

정수리 부근을 벅벅 문지르고 있으면 

얼른 끝내달라는 표정으로 해실거리며 손목쯤을 핥는다.

이럴 때만 애교지, 이 말 안 듣는 똥개야.

나는 피식 웃고는 꼬리를 북북 긁는다.

그 이후에는 맑은 물로 헹굼으로써 목욕은 끝난다. 


이제부터는 한비의 시간이다.

물이 잠긴 걸 확인한 한비는 표정이 돌변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다.

기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상태로 이곳저곳에 몸을 부비며

괜히 멍! 하고 짓다가 다시 여기저기를 개구리처럼 뛰어다니기도 한다.

미리 마당 물청소를 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욕실에서 목욕을 하는 겨울이면 

우선 수건으로 털의 물기를 닦은 후 내 방으로 안아서 옮긴 후 내려놓는다.

그럼 마당에서와 똑같은 행동을 방 안에서 한다.

그 사이 나는 욕실로 돌어가 이리저리 튄 거품들을 닦아내고

배수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털을 모아 버린다.


목욕을 마친 개가 이렇게 흥분하는 건

개, 아니 대부분의 동물이 냄새를 통해 피아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증명하는 냄새가 이상한 악취(샴푸향)로 바뀌었으니

집안 이곳저곳에 퍼진 자기 냄새를 다시 몸에 묻혀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그러니, 목욕을 시킨 후 뒷정리는 목욕을 시키는 것만큼이나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한비를 목욕시키는 일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어떤 날씨에도 산책을 해야 했던 터라

게다가 흙을 파헤치길 좋아하던 터라

빈번하게 목욕을 시켜야 했다. 


하지만, 몸은 귀찮을지언정 기분은 괜찮았다.

그동안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녀석에게

인간의 무서움을 알려줄 수 있던 몇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한비는 말을 참 안 듣는 진돗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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