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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Mar 27. 2024

죽은 개를 기억하다_(7)

한비_5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나는 매일 저녁 혹은 아침 혹은 아침 저녁으로 한비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섰다.

한비가 수술을 받아야 했던 이유가 "충분치 않은 산책 및 배변"이었기에

아버지와 우리 형제는 하루 두 번씩 한비 운동을 시키기로 했다.


순번이나 당번제는 아니었다.

시간이 맞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태풍이 상륙하든 한파가 급습해 빙판길이 되든

어떤 일기 상황이든, 한비를 데리고 나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개인적 약속이나 일정도 

"내가 한비 운동을 안 시켜도 되나?"를 먼저 확인한 후에야 잡을 수 있었다.

미리 확인을 했더라도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집으로 달려가야 했다.

적어도 아침이면 8시 이전, 저녁이면 9시 이전에는 운동을 시켜야 했다.


그래서 대학에 다니는 동안,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야, 나 집에 좀 다녀올게. 개 운동시켜야 해"라며 급하게 일어선 일이 적지 않았다.

물론 대략 1시간 반 후에 다시 술자리에 합류했다. 돌아오겠다 약속을 했으니까.

처음엔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어 믿지 않던 친구들도

우리집에 놀러왔다 내가 한비를 껴안고 있는 걸 본 후에는

더 이상 잠시 동안의 귀가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약 다섯 달에 걸친 유럽-아프리카 여행을 떠날 때도

부모님께서는 한비 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지 걱정을 하셨다.

가끔 밤새 놀다 새벽에 귀가하는 날이면 

대문을 여는 열쇠 소리에 반갑게 뛰어나온 한비에게 

하네스(수술 이후 벗겨지기 쉬운 목줄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았다)를 걸고 산책을 나섰다.

보통은 아버지가 전담하시던 일이었던 탓에 

새벽 산책을 내가 해결하는 날이면 아버지께서는 

"오늘은 니 덕분에 잠을 좀 더 잤다"며 웃으시곤 했다. 

그만큼 한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일은

부담이 함께하는 일상이었던 탓이다. 


부담의 가장 큰 원인이 "산책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라면 

두 번째는 체력과 관련돼 있었다.

한비는 예상보다 더 힘이 센 개로 자랐다.

그래서 산책 채비를 할 때부터 약간의 긴장을 요했다.

아직 신발도 신지 않은 상태에서 "나갈래?"라고 먼저 물으면 

한비는 거실과 대문을 몇 번이나 빠르게 왕복하며 신이 났음을 알린다.


사람이 집안에서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리는 것 같으면 

다시 거실로 뛰어들어와 빨래통에 있던 아무 옷이나 꺼내 물고 흔들며 채근을 한다.

겨우 빨래를 떼어 놓고 "나가 나가 나가" 하며 손을 휘휘 저으면

다시 달려나가 대문에 앞발을 올리고 서서 혀를 길게 내밀고 벌써 헉헉 거리고 있다.


그런 녀석의 몸통에 하네스를 두르고 대문을 열 때는 깊게 심호흡을 해야 한다.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이 녀석은 온 힘을 오직 전진에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를 벗어나 개천가에 이를 때까지는

180cm가 넘는 개나 상체를 뒤로 한 채 끌려가는 것처럼 줄을 잡아야 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짧게 잡아야 했으니

어머니는 한비를 데리고 나갈 엄두를 못 내실 정도였다.


산책로처럼 차도를 따라 뻗어 있는 인도에 이르러서야 줄은 조금 느근해지는데

간혹 가로수 근처에서 쥐라도 발견하면 난리가 났다.

쥐가 사라진 구멍을 파내느라 정신을 잃기 때문이었다.

간혹 제 몸이 모두 들어갈 정도로 깊이 파고 들어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난 다시 그 흙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느라 손발이 온통 흙투성이로 변했다.


그런 꼴로 집에 돌아가면, 한비는 어쩔 수 없이 목욕을 해야 했다. 

털 사이에 흙이 잔뜩 붙은 채로 집안을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한비를 키우면서 힘들던 순간들 중 하나가 바로 목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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