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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Mar 28. 2024

죽은 개를 기억하다_(9)

한비_7

한비는 말을 안 들었다.

오죽 말을 안 들었으면 내가, 그리고 어머니가 한비를 지칭할 때

"말도 안 듣는 똥개"라 부를 정도였다.

한비야, 라고 불렀을 때 다가오길 바라는 건 한 살 무렵에 포기했다.

앉으라거나 저리 가라는 등의 명령을 따르길 바라는 건 언감생심.


심지어는 그 흔한 손도 한 번 안 줬다.

아무리 손을 내밀고, 사람 손에 자기 손을 쥐어주어도

먹을 것으로 꼬시고 과장된 칭찬을 해도

한비의 앞발은 결코 올라올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그 어떤 개보다 즐겼다.

식구들끼리 모여 앉아 있으면 항상 그 가운데에 있으려 했다.

밥상에서는 언제나 아버지 옆에 앉아 점액질로 이뤄진 폭포 같은 침을 흘리곤 했는데

그 끈적한 액체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재빨리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물론 고기 반찬만 먹었는데, 혹시나 뜨겁고 짜고 매울까

아버지는 당신께서 직접 입에서 온도와 간을 맞춘 것을 다시 한비에게 건네셨다.

마치 옛날 할머니들이 밥알을 씹어 아기에게 먹이는 것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그러다 혹시라도 아버지 입에서 고기가 늦게 나온다 싶으면

한비는 그제야 앞발을 들어 아버지의 가슴팍을 툭툭 건드렸다.


물론 한비를 다른 방에 가두고 사람들끼리만(가족들끼리가 아니다. 한비 역시 엄연한 가족이었으니까.) 식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한비가 괴로워서 안 돼"라는 아버지의 만류에 채택되지 못한 방법이었다. 


손님들이 오면 한비는 전에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진돗개들이 낯선 사람들에게 경계심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주인이 그 낯선 사람을 아는 척 하면 그때부터는 짖는 걸 멈추고 나름의 인사를 건넨다.

다만 그 인사가 조금 번거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짖어대던 낯선 이에게 집안 누군가가 인사를 건네는 순간 꼬리를 흔들기 시작한 한비는

손님이 집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자기가 먼저 현관으로 달려가

'밝은 얼굴'을 하며 더 힘차게 꼬리를 흔든다.


우리집을 처음 방문한 손님들 중에는 간혹 그 모습에 긴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배를 까뒤집고' 쓰다듬어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한비에게

웃음과 함께 따뜻한 손을 건네 몇 번을 만져준다.


그렇게 목적을 완수한 한비는 얼른 일어나 원래 자기가 있던 자리에 엎드려 있는다.

우리집에 자주 방문하는 손님들, 그러니까 동네 아주머니 같은 분들은

이런 통과의례에 몹시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실이나 안방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면 우선 한비에게

"어이구 그래 그래 얼른 만져줄게."라고 인사부터 건네셨다.


동생은 큰댁 식구들처럼 중요한 손님들이 오실 때면 미리 한비를 더 정성껏 목욕시켰다. 

한비가 배를 보이고 누웠을 때 털이 더 밝고 윤기나게 빛나길 바랐기 때문이다.

한비도 그걸 알았는지, 그런 손님들이 오실 때면 더 적극적으로 뒤집어지곤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접대용 행동들.

우리 가족끼리만 있을 때의 한비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먹자고 할 때 달려오고, 목욕하자고 할 때 도망가는 것만 빼면.


아니, 하나가 더 있었다. 

한비야, 저거 잡아! 라고 하면 한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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