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 삶이 가끔 파본(破本) 같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잉크가 접힌 페이지,
잉크가 번진 문장,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막막한 단락들 때문이지.
하지만 조금만 멀리서 네 생(生)의 책장을 넘겨보렴.
번진 자국은 네가 치열하게 울었다는 진심의 증거이고,
잘못 접힌 페이지는 네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성장하려 했던 흔적이란다.
너는 단 한순간도 고립된 '점'이었던 적이 없다.
네가 무심히 건넨 미소는 어느 절망한 이의 내일을 붙드는 실마리가 되었고,
네가 혼자 삼킨 눈물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굳은 마음을 녹이는 온기가 되었지.
그러니 안심하고 흔들려도 좋다.
네가 길을 헤매는 그 모든 굽잇길조차
결국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돌아오는 거대한 회귀의 일부이니까.
오늘도 고생했다.
나의 작고 눈부신 우주여.
난 비종교인이다.
그래도 종종 '전지적 하나님 시점'으로 '창백한 푸른 점'에 잠시 세를 내고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신의 전지전능한 감시자의 눈이 아니라, 끝없는 연민의 시선에서 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으며 산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그분의 시점에서 보면, 우리의 선택들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서로 얽힌 이야기의 실타래다. 한 사람의 용기가 다른 사람의 절망을 건너게 하고, 한 사람의 실패가 또 다른 사람의 성장의 토양이 되기도 한다. 그 복잡한 관계망을 그분은 한눈에 본다. 그래서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어떤 잘못도 그 자체로만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의 상처와 역사와 두려움까지 함께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분이 모든 길을 대신 정해 준다면, 우리들이 삶은 드라마가 아니라 각본에 불과할 것이다. 자유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넘어질 수 있기에 일어나는 순간이 빛나고, 길을 잃을 수 있기에 다시 찾는 기쁨이 있다. 그분은 그것을 알기에 침묵을 선택한다. 그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신뢰이다.
그분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 작은 생명들도 우주의 일부이듯, 저 인간의 미미한 고민도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슬픔은 흩어지지 않고, 어디선가 조용히 받아 안겨진다.
우리가 혼자라고 느낄 때조차, 그 시선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길을 잃는 순간에도, 이미 누군가는 그 길의 전체 지도를 알고 있다. 결국 '전지적 하나님 시점'이란 두려움의 시점이 아니라, 안심의 시점이다. 우리가 헤매는 동안에도,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삶은 여전히 의미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신은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흔들리는 모습마저 나는 사랑한다.
그 또한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