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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Jul 18. 2023

하루하루 시간만 잘 흘러가네요.

6.19~22

6월 19일 월요일



납품이 끝난 다음 주 월요일 출근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


해야 할 일들은 있지만 마치 모든 일이 끝이 난 듯 마음은 차분해진다.


주말 3일 동안 쉬었지만 회사에서도 쉬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하지만 몸에 박힌 직장인 근성은 자연스럽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켜쥐게 된다.


딴짓을 해야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두 눈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기계처럼 일을 한다.


그렇지, 지금 일해야 나중이 편해진다.



하마가 신혼여행을 갔다 오며 글랜피딕 15년산을 사 왔다고 한다.


사실 하마는 술을 한입도 마시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걸 이찬과 함께 셋이서 먹기로 했다.


어디서 먹을지 장소를 정하던 중 지현이가 자리를 비켜줄 테니 우리 집에서 먹으라고 했다.


지현이 등에 날개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그렇게 성립된 월요일 저녁 글랜피딕 15년산 모임이 시작되었다.



집 앞 마트에서 육회를 사서 청양고추 마늘 그리고 쪽파를 넣은 간단한 육회무침을 만들었다.


육회는 언제 먹어도 맛있는 것.



우리가 대학생 때부터 자주 시켜 먹었던 마시내 탕수육 김피탕을 주문했다.


때는 2007년 대학교 1학년일 때 애들을 만났고 야식을 엄청 시켜 먹었다.


돌도 씹어 먹을 20살에겐 언제나 허기짐이 가득했고 음식이 눈앞에 보이면 게걸스럽게 먹기 바빴다.


집에선 치킨도 시켜 먹지 않았던 때라 대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켜 먹는 야식 문화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친구들과 눈만 맞으면 야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야식은 탕수육이었다.


중국집에서만 시켜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던 탕수육이었는데 육영, 박사, 마시내 등등 다양한 가게에서 야식 전문 탕수육을 배달하고 있었고, 일주일에 7일을 먹을 만큼 자주 시켜 먹기도 했다.


지금은 모든 탕수육 집이 사라지고 마시내 탕수육만 남았고, 우리의 추억도 하나만 남았다.


가격은 많이 올랐지만 김피탕(김치 피자 탕수육)은 언제나 한결같이 맛있었다.


20살 때처럼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20살과 다르게 이젠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시킬 수 있다.



이찬이 가져온 감자를 하마가 갈고 내가 부쳐 세 명의 힘을 더한 감자 전이 완성되었다.


이찬과 나는 글랜피딕 15년산을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도 하고 레몬과 토닉워터를 섞어 하이볼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하마는 0.00 알코올이 들어간 맥주(a.k.a 탄산음료)를 3캔이나 마셨다.


이박사에게 랑그랏사 팁을 공유 받고 속성 과외도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설거지가 좋다는 하마가 설거지를 해주었고 다음에 다른 동기들하고 와이프들을 데리고 함께 오는 것 및 이찬 참석의 집들이를 하기로 웃으며 약속하고 애들을 배웅해 주었다.


자리를 비워준다고 처가에서 놀다가 지현이가 돌아왔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들려주며 밤을 마무리 지었다.





6월 20일 화요일



하루하루 시간만 잘 흘러간다.



수영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 미리 몸을 풀고 꽤 많이 돌았다.


이제 허리도 거의 괜찮아져서 발차기도 찰 수 있었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스트로크를 섞어가며 화요일 발차기 훈련을 마쳤다.


초여름 같은 더위 속에 수영 후 몸에 매우 열이 난 상태로 출근을 했다.


땀나는 건 싫지만 건강한 열이 싫지만은 않다.



수영을 마치고 아침을 챙겨 먹으려 하는 편인데 오늘은 딱히 먹을 걸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현이랑 그랑주에서 커피와 함께 아침으로 먹을 크로크무슈를 시켰다.


조금 베어 먹다가 지현이 한입을 나눠줬다.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 지현이지만 오늘따라 한입 먹겠냐는 제안에 먹겠다고 했고 크로크무슈를 한입 앙하고 베어 물었다.


이 모든 게 큰 그림이었을 줄 남은 크로크무슈를 보고 깨달았다.


크로크무슈는 식빵 사이에 치즈와 햄이 들어가 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내 손에든 크로크무슈에는 햄이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햄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지현이가 한입 베어 먹는다고 했더니 정말 한입과 함께 햄을 몽땅 가져가버렸다.


이런 게 바로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속담인가 보다.


그렇게 나는 코가 베였다.


괜찮아. 지현이만 만족스러우면 됐지.



점심시간에 박연준 '고요한 포옹' 산문집을 읽었다.


따뜻한 글을 쓰는 박연준 시인의 '쓰는기분'을 좋게 읽어서 이번 신작인 '고요한 포옹'이 출시됐다는 알라딘 광고 문자를 받고 바로 구매했다.


그리고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고요한 포옹' 산문 중에 나를 깨우치는 문장이 있었다.



"

SNS가 생활화되면서, 사람들은 인생도 광고해야 할 무엇으로 생각한다.


(중략)


보여주기 위해선 편집이 필수다.


박연준 '고요한 포옹' P.83

"



이 글을 읽고 순간 인스타그램을 습관적으로 보고 스토리를 올리던 내 모습을 보았다.


'아, 나는 편집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구나.'


'내 인생은 기쁨도 있지만 슬픔과 고통도 있는데 기쁨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편집하고 있었구나.'


순간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다음 장에 더 깊은 이야기가 나왔다.



"

우리 삶은 대체로 너저분하게 굴러간다.


(중략)


언제부턴가 우리는 '사는 삶'이 아닌 '보는 삶'을 살고 있다.


(중략)


이것은 남의 삶이다! 건너다보는 삶 말고 진짜 삶은 어디에 있을까?


박연준 '고요한 포옹' P.84

"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요즘 TV를 틀어도 온통 관찰 예능뿐이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엔 온갖 보는 삶이 널브러져 있다.


그 삶이 그들의 진정한 삶이 아닌데도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고통을 망각하고자 다른 사람의 좋은 삶을 보며 부러워한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있었구나.'


앞으로 좀 더 '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나'가 제일 중요하니까.



퇴근 후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VS 엘살바도르' 경기를 직관하러 갔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차도 많았으며 저 멀리 길가에 주차를 겨우 하고서 입장할 수 있었다.


폭우가 쏟아져 내렸고 우리(나, 지현, 선영, 민영)는 서서 닭강정과 떡볶이를 먹으며 허기짐을 해결했다.


사람도 많은데 비까지 쏟아져 내리니 분주함과 정신없음이 함께 쏟아져 내렸다.



경기 시간에 딱 맞춰 자리에 들어갔다.


선수들이 입장해 경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자리는 4층이었지만 온 경기장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좋은 시야를 자랑했다.


저 멀리 이강인도 보이고 황희찬도 보였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2023년에서 2002년이 겹쳐 보였다.



좋은 찬스 찍는 걸 얻어걸렸다.


이강인은 정말 잘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솔직히 잘했는지 모르겠다.


전광판에 피파 온라인 게임 광고를 하기 위해 '엘살바도르 수도는 산살바도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넌센스라고 믿지 않았던 재미있는 지현이 반응 덕분에 엘살바도르 수도가 산살바도르라는 사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후반 손흥민이 교체 투입됐다.


대전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경기는 아쉽게 1:1로 비겨버렸다.


아직까지 제대로 전술과 색깔이 잡히지 않은 클린스만 호의 모습을 보며 벤투가 그리워졌다.


경기 중 파도타기를 하는데 뒤에서 "충청도는 파도타기도 느린가 봐."라는 말에 속으로 낄낄거렸다.


괜찮아유~


돌굴러가유~


경기가 끝나고 피곤에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차를 너무 멀리 주차했었고 한참을 걸어서야 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딱히 한 일은 없는 느낌이었지만 왠지 모를 피곤함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쇼파에 누워 한참을 멍하니 가만히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온 힘을 쏟았나 보다.




6월 21일 수요일



아침에 수영을 했던 거는 두말할 것도 없다.


주말엔 종종 안 가는 일이 발생하지만 평일을 빠지진 않는다.


도룡 수영장이 회사 바로 앞이기도 하고 강습은 들어야 하니까.


강습이라고 해봐야 45분 내내 쉬지 않고 도는 것뿐이긴 하지만.



점심에 오랜만에 짜장볶이를 먹겠다고 물을 붓다가 뜨거운 물이 컵라면 뚜껑에 맞고 튀어 엄지손가락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정말 가벼운 화상인데 라면을 먹는 내내 화끈거려 얼음을 댔다 땠다 반복하며 젓가락질을 했다.


원체 아픈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얼른 메디폼을 잘라 화상 부위에 붙였다.


통증 중 가장 아픈 게 화상 통증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정말 뜨거운 물이 잠시 튀었을 뿐인데 이렇게 따가운 화상을 입다니 오늘 하루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책을 다 읽고 박준 시인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책을 펼쳐 들었다.


어쩌다 보니 시인의 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유퀴즈를 통해 알게 된 박준 시인의 글을 따뜻하다.


때론 두서없이 흘러가는 글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찾지 않고 흘러가는 그대로 글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글 속으로 스며들어있다.


이 시도 그런 느낌이다.


마침표도 없고 줄이 바뀌지도 않고 주욱 이야기가 덤덤히 덤덤히 흘러간다.


그냥 글이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보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시를 읽는 방법을 알려준 책이 있다.


시는 소리 내어 읽으며 그저 의미를 찾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라고 말했다.


소리 내 읽진 못하지만 속으로 한음절 한음절씩 발음하며 읽어 먹었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지현이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계란과 어묵을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금방 행복해졌다.


단순하다.



저녁 먹기 전 잠시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용사가 다시 되었다.


릴리트의 끝을 볼 날이 다가온다.


디아블로4 스토리를 보니 확장팩에서 빵하고 터트릴 분위기다.


메피스토, 바알, 디아블로가 나오지도 않았다.


디아블로는 디아블로가 하이라이트인데 말이다.


용사여 기다리거라.



아버님이 소고기를 사준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나섰다.


소고기의 색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수도 있구나.


거기다 맛도 더 아름답다.


감사하게 소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후식 냉면은 필수지.


위가 조금만 더 커질 수 있다면 냉면과 함께 소면 그리고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을 느낀다.


언제나 맛있는 걸 왕창 배부름 없이 먹고 싶다.



그리고 집에 가서 맛있는 포도로 후식을 먹었다.


식탁에 오손도손 앉아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하루의 피곤을 씻을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선물에 행복했던 저녁 순간이었다.





6월 22일 목요일



수영을 마치고 나와 출근을 했다.


다음 주까지 해야 할 일들이 많기에 언제나처럼 그냥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이 기계처럼 일을 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검색이라도 잘 되면 모를까 이상한 특허 내용들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럴수록 손에 휴대폰을 드는 시간들은 길어졌고, 자연스럽게 일하는 시간들은 줄었다.



우리의 퇴근길은 항상 똑같다.


신세계를 지나 카이스트 앞을 지나고 유림공원 지하차도를 통과해 홈플러스를 지나 지하차도를 통과해 오토월드를 넘고 넘어 집에 도착한다.


항상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유림공원 앞을 지날 때 보이는 월평동의 전경이다.


다리 위에서 차들이 움직이고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우직이 서 있는 산의 모습을 보며 미니어처 같다고 느끼기도 하고 그 속에서 알게 모를 평온함을 느낀다.


항상 눈으로 바라봤었는데 오늘따라 차가 막혀 잠시 이렇게 사진을 찍을 여유가 생겼다.


퇴근 중 소중한 장면이다.



밥을 해놓지 않아 밥이 없었고 밥하고 먹을 마땅한 반찬도 없어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중 스파게티 면이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간단하게 오일 파스타를 만들었다.


들어간 재료는 마늘과 살라미 햄뿐이었지만 나름 맛있는 스파게티가 완성되었다.


남은 면을 다 삶는다고 2인분이 아닌 3인분 양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파스타에 왜 베이컨을 쓰는지 알았다.


살라미 햄은 맛이 없었다.


다음엔 꼭 베이컨을 써야겠다.


배불리 저녁을 먹고 쇼파에 가만히 앉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며 휴식과 죄책감을 함께 느끼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하루 종일 고생한다고 소모한 정신력을 억지로 회복시켜본다.


그래도 내일은 금요일이라 일찍 퇴근한다는 행복에 출근길이 출근길 같지 않고 마치 휴일길 같아 부담은 없다.



또 다른 3일 연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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