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숙제가 아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일기
초등학생 때 가장 싫었던 방학 숙제는 단연코 일기였다.
노는데만 정신이 팔려 하루하루 일기를 미루다 결국 개학 전날 몰아서 쓰던 것이 일기였다.
시작은 '오늘은 날이 맑았다.'로 시작해서 '재미있는 하루였다.'로 끝나던 일기라기보다 일상을 시간 순대로 나열했던 것이 우리가 처음 접하는 일기라는 것이었다.
일기라고 말하면 초등학생 때 쓰던 일과를 나열하면 글처럼 느껴지고,
다이어리라고 말하면 왠지 모르게 하루를 정리하는 있어 보이는 글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일기든 다이어리든 나의 하루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소중한 행동인데 어떻게 부르는지에 따라 글의 향기도 달라진다.
초등학교 이후로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하건 2009년 군대에 들어갔을 때부터였다.
군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이 내 안에 존재했었고 실수하지 말고 잘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내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훈련병일 때 부터 그날그날 무슨 훈련을 받았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주 간단하게 적는 것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행동이 되었다.
처음엔 초등학생 일기처럼 단순한 나열로 시작했다.
거창하게 일기를 쓸 생각도 없었다.
하루를 쓰고, 일주일을 쓰고, 한 달을 쓰고, 두 달을 쓰다 보니 단순한 행동들의 나열로는 나의 일과와 생각들을 정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점차 하루하루 쓰는 일기의 양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1년 10개월이라는 군 생활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기를 썼다.
전역할 때쯤에는 하루 일기가 A5용지 반을 채우고도 넘을 정도로 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날 느낀 내 생각들을 일기에 녹이기 시작했다.
군인이라는 옷을 벗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온 대학생이 되었을 때 새해를 맞으면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다이어리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디자인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해서 군대에서도 '양지' 다이어리를 사용했어서 가장 익숙한 '양지'다이어리를 사는 것이 새해를 준비하는 나의 일과가 되었다.
하지만 규칙적인 군대 생활과는 달리 대학생이 되면서 불규칙한 수업과 게임과 술과 모임 등으로 인해 집에 오자마자 자는 날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일기를 쓰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일기는 항상 내 마음속 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하루하루의 소중한 인생들을 전부는 기록하지 못해도 일부라도 기억하고자 다이어리 앞 캘린더에 작은 글씨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빼곡히 적어갔다.
그리고 마음의 짐이 충만하다 못해 넘치거나 여유가 생겼을 때 다이어리에 길게 일기를 적었다.
일주일치를 몰아서 적은 적도 있었고 한 달을 적지 않은 적도 있었다.
오랜만에 일기를 적을 때면 '정말 오랜만에 일기를 써본다.'로 시작해서 '다음부터는 밀리지 않고 열심히 써야겠다.'로 끝나곤 했다.
꾸준히 일기를 썼든 그렇지 않았든 상관없이 일기를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의 소중한 하루가 정리되면고 내 생각을 녹인 글들이 고단했던 하루를 치유해주고 행복했던 하루를 한번 더 상기시켜 엔도르핀이 솟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것을 잠시 쉬어가긴 해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꾸준히 일기라는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향상되었다.
또한 책을 좋아했고 거기다 일기라는 글이 더해지니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생각이 풍부해지고 생각을 글로 정리할 줄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말하는 능력도 향상되었다.
또한 일기에 내 일상과 생각을 녹이다 보니 이야기를 써내는 기승전결의 스토리 텔링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에 썼던 일기를 지금 봤을 땐 매우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그래도 내 소중한 추억들의 한 페이지를 망각하지 않고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다는 소중함이 생겼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예상하고 12년 전부터 일기를 꾸준히 썼던 것은 아니다.
그저 지나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뿌린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 울창한 숲이 되었을 뿐이다.
그저 남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작은 나의 행동들이 나를 더 상장하게 만들었고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항상 일기에게 고맙고 일기를 꾸준히 쓰고 있는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과 기록될 날들이 같을지 아니면 다를지 모르지만 언제까지나 일기는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내가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