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가 잠시 내려, 하늘을 보며 하얀 여우의 꼬리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것도 잠시. 쨍쨍하던 하늘이 사라지고 굵은 소낙비가 쏟아져 내린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갈 길을 잃고 허둥댄다. 어느덧 도시의 공간들은 검은 어둠과 세찬 비에 휩싸인다. 한치의 앞도 모르는 사람이란 참으로 미미한 존재.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쏟아지는 빗속에서의 섹스였던가? 아마도 그건 불타오르는 정념의 욕망이기 보다는 벌거벗은 자연에로의 회기에 대한 순수의 대리만족이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희열이라면, 순수한 상태로 자연과 일대일로 맞선 데에 대한 기쁨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옷을 훌훌 벗고 비 아래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묵은 찌꺼기를 씻어내라는 자연의 명령 앞에 불현듯 순종하고 싶은 것. 결국 나는 자연 앞에 본연으로 순수해져 그 속에 겸허히 섞일 것이다. 마알간 모습으로. 아~ 묵히고 묵혔던 치명적인 욕망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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