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도시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민 Dec 09. 2021

문방사우와 Ctrl C, Ctrl V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그림 이종민

* 칼럼 <규구준승>의 명명에 대한 생각


이 칼럼의 제목을 '규구준승'이라 명명함에 다분히 ‘문방사우’라는 말을 의식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알다시피 문방사우(文房四友)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나 뭇 문필가, 서예가, 화가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음은 물론, 때론 스스로 하나의 정신이 되어 독자적 예술품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작가마다 노트북컴퓨터 하나씩 장착한 시대가 되었지만, 이 도구들의 상징적 의미만큼은 한 번도 훼손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컬어 컴퓨터 화면을 종이라 하고, 워드프로세서는 벼루와 붓이며, 먹을 갈아낼 연적 속의 맑은 물이 창작의 순수와 닮았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그것들의 합은 여전히 감동을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도구가 바뀌었음에도 변질하지 않는 창작의 본질이 나는 좋다. 남의 문장을 베낀 못된 손가락의 작가는 순간 몰락하며, 하물며 직접 터치하지 않았다 하여 유명 화가를 법으로까지 내모는 것이 그 세계이다.


기술인 건축이 그러한 예술적 속성에만 매몰될 것이냐는 것은 의미 없는 논란이다. 왜냐하면, 건축은 가장 원초적인 인류의 창작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상상과 희망에서 출발하여 현시적 물건으로 발전해 가는 건축의 프로세스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을까? 그러므로 건축을 하는 마음은 그 어느 예술보다 진지하고 순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창작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건축가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건축이 불특정 다수의 것이라 하여, 대량 산업 생산물에 가까워진다고 하여 소홀하게 될 수 없는 진리의 영역이란 말이다.


예로부터 ‘규구준승’이란 말이 하나로 결구(結句)가 된 의미는 집을 짓는 사람이 그 본질과 진리로부터 벗어나지 말라는 뜻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로 재고 각도를 맞추어 선을 긋는 행위. 건축가에게 그러한 행위 이상 진실하고 근본적인 작업이 있을까? 예의 예술가들이 먹과 종이를 다루는 마음에서 살폈듯이 우리에게는 그런 본질이 남아 있는지 반성할 일이다. 문장가와 화가들이 도구가 바뀌어도 여전히 원칙을 철석같이 지키고 있으나 우리의 주변은 어떠한지? 건축의 역사가 여느 예술의 분야보다 훨씬 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 일찍 천박해지려는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이 재고 그린 그림을 천연덕스럽게 내 컴퓨터에 옮긴다거나, 하물며 몇 날 며칠을 세운 남의 그림을 건축주의 메일 박스에 천연덕스럽게 옮겨 놓지는 않았는지? Ctrl C, Ctrl V.  편리한 그 말이 갑자기 무서워진다는 말이다.


규구준승(規矩準繩). 지금 와서  용도폐기된 기구들에 대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로  보는 것은. 예의 예술가들에 비하여 하나도 모자라지 않는 나의 자세를 견지하려 함이다.



사족 /

規矩準繩(규구준승)

(1)목수가 쓰는 걸음쇠, 곱자, 수준기, 다림줄을 통틀어 이르는 말. (2)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


매거진의 이전글 눈을 그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