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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Dec 26. 2021

눈을 그리다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그림 이종민



산타 옷을 입은 아이들의 사진과 지인의 엽서가 핸드폰으로 전송된다. 시간은 여지없이 연말을 향해 간다. “하얀 눈이라도 왔으면.” 무심히 뱉은 말에 동료가 맞장구친다. “그러게 말이에요. 눈 본 지가 언제야?” 화실에서 동료와 그림을 그리다가 눈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모두 어린이가 되었다. 마침 바깥 하늘이 회색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모두 마음속으로 말로만 듣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그리고 있었다.


대화가 이어진다. “누가 눈 그림이라도 한 번 그려 봐요.” “뭐 어려울 것 있어요? 하얀 종이를 그대로 놔두면 되지. 어색하면 작은 점이라도 하나 찍어 놓고.” 잠시의 정적 속에 저마다 마음으로 눈 그림 하나씩 그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눈빛이 맑았다.


지난 연말 서울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방송은 몇 년 만의 대설이라 소식을 연신 전송하였고, 실제로 눈앞이 온통 눈밭이다. 기차 안의 나는 설국에서 따듯한 남쪽 나라로 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주섬주섬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어 창밖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따듯한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는 익숙지 않은 풍경을 기록해 두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 위에 몇 자 적어 놓았다.


‘오호라~ 어제저녁에 눈이 내린 과정이 세상의 모든 색을 하나하나 덮어가는 과정이었다면, 지금 내가 설경을 그려보고자 하는 일은, 마치 눈밭의 포수가 하얀 토끼를 추적하는 일과 같구나. 눈이 감추다 감추다 남은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그것들을 제 자리에 안착시키는 일. 말하자면 백색 눈의 순리에 역행해 보려는 검은 잉크의 애타는 열정이라 할까?’    


많은 건축가의 첫 작업은 하얀 종이로부터 시작되기 일쑤다. 머릿속 이미지를 종이 위에 구체화 시키는 것이다. 스케치라 불리는 건축가의 그림은 건물과 도시를 만드는 첫 단추가 된다. 자신에게는 확신일뿐더러 타인을 설득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고 보니 건축가의 작업은 눈밭같이 하얀 종이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설경을 그리면서 느꼈던 기억대로라면, 무의 공간에 검은 궤적을 하나, 둘 남기는 과정이다. 옹기종기한 작은 선들은 주택이 되고, 교회가 되고, 상점이 된다. 나아가 거리가 되고 도시를 이루기도 한다.


반면, 하얀 종이 앞에 서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그려 놓은 무수한 검은 점과 선들을 지우려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거리를 거닐다가 지워버리고 싶은 풍경을 만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새 종이 앞에 다시 서고 싶은 열망은 크다. 그것은 비극을 마무리해야 하는 극작가의 절박한 마음과 같은 것이다. 가령,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 섰을 때의 마음 같다고나 할까? 학교를 포위한 30~40층의 아파트의 그로테스크한 모습과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짙고 어두운 그림자에 몸서리치는 순간은 건축가를 늘 절망에 빠트린다.  


나는 건축가 앞에 놓인 하얀 종이는 검은 궤적을 기다리는 새 종이이기보다는 절망을 딛고 자신을 지운 결과이기를 더 바란다. 오늘처럼 아이같이 설레며 눈을 기다리는 것 또한, 내 머릿속에 잘못 그려진 무수한 검은 선과 점들을 없애 보려는 반성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도시와 거리를 하얀 백지로 되돌려 놓고, 깨끗한 붓으로 하나, 둘 다시 그리려는 열망에 싸이는 것이다.      


그날, 화실의 우리는 하얀 종이를 펴고 아이같이 눈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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