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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태 사진 찍기

by 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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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한 것은 나이 오십이 훌쩍 넘어서다. 그 후로 나의 앨범 한구석에는 '뒤태 사진'이라는 폴더가 생겼다. 행위로 말하자면, '사진 찍어 주기'에서 '사진 찍어 간직하기'. 어쩌면 상호적인 일에서 개인적인 일로 바뀐지도 모른다. 정면 사진에 대한 회의의 출발이 대체로 그랬다.

이 나이 즈음 되면, 서로의 면상이란 굳이 기록할 이유가 없어질 정도로 익숙하다. 일상이 카메라이고 생각이 인화지인 듯 사진으로의 기록이란 뻔하고 무의미하다. 혹 포즈를 취해야 할 경우가 있는 날이면, 찍는 나는 화면구성을 위하여 무언가를 지시하며 그이를 이리저리 움직이게 한다. 찍히는 쪽도 진실한 표정이기보다는 그동안 나름으로 구축한 세련된 포즈의 연출에만 몰두하게 된다. 반복되는 행위는 가끔 짜증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그런 사진을 왜 찍느냐는 회의에 이른다.


숨겨진 그 무엇을 찾아보려는 '인디아나 존스'의 탐심 같은 것이 오래전 카메라를 구입할 때부터 있었고, 그러한 나에게 아내는 멋진 탐구 대상이었다. 하지만 작위 된 정면 사진 찍기가 계속되면서 대상의 진실에 가까이 가려는 나는 그만 시들해졌다. 그때부터였던가 보다. 아내 몰래 사진 찍기. 어느새 나의 비밀 폴더에는 여러 가지 모습의 아내 사진이 즐비하다. 비밀의 경로로 자물쇠를 굳게 채워놓았음은 물론이다. 가끔 홀로 들어가 배회하고 싶을 때를 위해서다. 그럴 때면, 그야말로 처녀지를 출입하는 마음처럼 설레는 것이다. 아~ 이 무슨 주책이란 말인가.

뒤태 찍기의 짜릿함을 즐기는 것은 아내도 마찬가지다. 문득 소파에서 졸고 있다가 '찰칵'하는 소리에 눈을 뜨면, 나의 초점 잃은 허접한 표정은 그이의 폰 카메라에 이미 저장되었기 일쑤다. 그래도 나는 지은 죄가 있으므로 초상권 운운하지 못한다. "빨리 지워라~" 하는 소리가 끝이다. 그러한 해학적인 사진 찍기는 피차일반이어서 내가 뺏어 오는 만큼 나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딱히 화낼 것이 없다. 어느 날, 나는 아내의 핸드폰에 저장된 나의 초상을 보고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 속에는 나의 똥배는 물론이고, 헤~벌어진 입과 듬성듬성한 정수리의 머리카락까지 수십 장의 사진이 실로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말하자면 나의 진실 대부분을 담아놓고, 심심할 때 한 번씩 열어보면서 혼자 웃고 즐겼더란 말이다. 받은 만큼 주는 것이니,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아내여! 그렇더라도 나의 입장은 정확히 밝히겠소. 혹 사진을 찍는 태도 변화를 애정이 식은 것으로 오해했다면 거두어들이시오. 말했듯이 내가 뒤태에 몰두하는 것은 아직 그대에게 찾지 못한 비밀이 있다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쫓아다니던 소년의 설렘을 열심히 부활시키는 중임을 기꺼이 밝히는 것이오. 나의 렌즈는 24시간 가동되는 파파라치, 그러니 매사에 행동을 얌전하게 하시오. 그대가 멍하니 한눈을 판다거나 순간 졸음에라도 빠질 때는, 소파이건 침대이건 어김없이 나의 렌즈가 들이대어 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시라. 그리고 내가 그대의 핸드폰을 종종 점검하듯 나의 ‘뒤태 사진’ 폴더도 가끔 살피시라. 혹 내 비밀 앨범을 뒤지다가 자신의 속옷 차림의 사진을 발견하더라도 그저 놀라기만 하고 변태자로 고발하지 마시라. 여학생의 뒷모습을 몰래 훔치던 소년의 마음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린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책을 읽어준다. 수십 년간 계속되었지만, 둘은 서로 그 이유를 알려주지도, 알려 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책이 쌓인 두께가 두꺼워진 만큼 세월이 따라 흘렀다. 그들의 나이도 오십을 넘겼다.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집요하게 물었지만, 둘은 말이 없었다. 그저 그러한 사실만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비로소 '사랑'이라는 말로 그걸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 책을 읽을 때 이미 오십을 넘긴 나는 비로소 말없이 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나 혼자 볼 사진이더라도 뒤태 사진은 계속 찍어야겠다. 비록 ‘찍어 주기’에서 “찍어 간직하기‘로 용어전환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진은 어디까지나 상호적인 행위이며 확인인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서로 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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