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는 작품 ‘바벨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을 ‘우주’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도서관 서가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아주 낮게 난간이 둘려져 있는 이 진열실들 사이에는 거대한 통풍 구멍들이 나 있다. 그 어떤 육각형 진열실에서도 끝없이 뻗어 있는 모든 위층과 아래층들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그리고 도서관은 끝이 없다고 단언하고, ‘도서관은 영원으로부터 존재한다.’라고 썼다.
바다가 보이는 해양박물관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앉아서 책을 본다. 바닥은 앞마당과 높이가 같고, 해안선 너머로 보이는 물의 높이와는 불과 1m 남짓. 그 마룻바닥에서 눕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며 책을 읽는다. 그러한 아이들의 모습이 물고기나 돌고래의 유영과 닮았다면 지나친 관찰일까?
그때 낮은 서가에 꽂힌 책이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 도서관에서만큼은 마치 물속에서처럼 자유 분망하고 아무런 저항 없이 지혜를 얻고 갔으면 해.” “그리고 높이와 깊이가 저항이 되지 않는 자유스러운 세상으로 더 멀리 헤엄쳐 나가길 바란다.” 아이가 답했다. “응. 그렇게 해 볼게, 책아!” 그때 멀리 바다에서 시작된 빛 한 줄기가 아이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책이 보자기(보따리)에 꽁꽁 싸여. 서당으로, 학교로 사람을 따라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한 책이 건물로 들어간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어서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없어진 만큼 시간과 환경이 변했다는 것 또한 어찌 부정할까?
문득 도서관에 가는 일과 책보따리를 푸는 일을 연결해 본다. 유쾌한 반전. 도서관에 가면 이젠 사람들이 책에 싸인다. 마침내 도서관이 사람을 싸는 보따리가 되었다. 책 보따리 가득 열망이 싸였듯, 보르헤스의 우주와 아이들의 빛이 책에 싸여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건축가가 도서관을 보는 눈엔 또 다른 시선이 보태어진다. 도서관의 변모. 도서관에 책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건축가에게 소중하다. 그러므로 공간이 변용되고. 빛 냄새, 그리고 여러 가지의 색깔이 서로 융합한다.
그것들을 그려본다는 것은 집을 구축하는 과정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우리는 그 흔적을 차근차근 쌓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도서관의 문화적 파워를 실감하였다. 도서관을 ‘영원’이라고 했던 보르헤스의 관찰이 적확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