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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May 02. 2022

청사포에서 바다를 그리다

부산을 말하다

그림 이종민

바다를 그리는 일은 그 위에 나를 눕히고 수평을 배우는 일이다. 때론 물 위에 나를 띄워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청사포 바다, 그곳에 가면 나는 고개를 떨구어 위를 쳐다보는 일을 멈추고 오로지 바다에 몰두한다. 어느  난쟁이 마을에 나타난 키다리처럼 을씨년스럽게 들어앉은,  순한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 모든 잡다한 것들을 기꺼이 외면하려는 것이다.

꽤 오래전, 고개 너머에 터가 닦이고 수평과 수직이 무질서하게 난립하고부터였나 보다. 유례없는 부조화가 도시를 점령하기 시작하였고, 나 또한 광대처럼 환락에 동참하여 대열에서 춤을 추고 독주를 마셨던 것.


그리하여 청사포 고개를 넘는 나는 마치 자유를 얻은 새의 활강처럼 바다를 향해 달려 내려간다. 그 일은 내가 지난 환락에서 깨어나는 애절한 방법이다. 무질서에 대한 능동적 외면은 그러한 만큼의 평정을 불러오고, 그 안온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다시 깨운다. 너는 애초에 무엇이었느냐?


잠시 후, 짙은 바닷속에 잠겨 잊힌 것들이 모두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는 환희에 몸을 떤다. 그것은 노랗기도 파랗기도, 때로는 불그스레하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매우 앳되고 깨끗한 것들이었음을 확인한다.


나도 모르게 큰 숨을 내쉬고 스케치북을 연다. 머~언 우주의 어느 곳처럼 색이 부재한 페이지가 나를 유혹하고, 나는 아이같이 흥분에 싸여 이런저런 색깔을 만지작거린다. 오~ 이제부터라도 순색이기를, 제발 끝까지 순색으로 남겨지기를.....


그리하여 청사포 바다를 그리는 일은 나의 근원을 찾고, 다시 그 평온으로 들어가는 일. 설령 한때의 과오가 씻기지 않을 만큼 무게를 지닐지라도 껍질을 벗고 심기일전해야 할 일. 하물며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아야 할 것.

아~ 무엇보다도 바다에 나를 띄워 수평을 배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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