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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May 08. 2022

대변항 멸치털이

부산을 말하다

그림 이종민


구릿빛 노동자들의 노란 갑바 사이에서 할아버지의 눈빛을 본다. 내 할아버지께서는 어부이셨고, 건축은 내 밥벌이다. 건축이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라면, 어로는 일시에 포획하는 작업. 둘 다 땀 흘리는 고된 노동이 포함되는 일이다. 그래서 끝까지 원시적 형태를 유지하게 될 일인지도 모른다. 


단단한 바위와 부동의 흙이 건축의 토대인 반면, 어부의 발아래는 늘 일렁거리는 물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심연이다. “까짓 땅 위의 일을 가지고.....” 그래서 어부들은 항상 자신들을 지상 최고의 노동자로 여긴다. 나 또한 내 할아버지의 노동을 늘 최고로 인정하였다. 


멸치를 터는 어부의 동작은 일사불란하다. 한 사람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 일. 그 앞에 긴장하지 않는 자가 있을까? 한 동작의 오류가 그물의 면과 밧줄의 선을 통하여 모두에게 전해져 다른 이의 노동이 흩어진다면 낭패다. 한 마리의 멸치를 놓치는 일 따위가 무어 그리 대수일까? 순간, 어부의 진지한 눈빛과 숙달된 노동이 유달리 숭고해 보인다. 


한철 남쪽의 온 바다를 누비는 멸치 떼. 남해 사람들은 남해 멸치가 최고라 하고, 거제 사람들은 거제 멸치가 최고라 하고, 이곳 기장 사람들은 그 말을 비웃는다. “무슨 소리 하능교. 기장멸로 젓갈을 담아야 지대로제.” 아무튼.....


대변항에 봄이 익으면, 나는 그 숭고한 노동과 멸치 떼의 풍요를 만끽하러 바다로 나가야 한다. 운 좋게 햇살이 쨍쨍하면, 번쩍이는 멸치 비늘과 그 사이로 새벽이슬처럼 반짝이는 어부의 땀방울을 보게 될 테다. 어찌 집에만 있을까? 멸치 기름 자글거리는 소리와 아주머니의 애절한 호객에 동하여 어느 한 집의 모퉁이 좌석에 앉게 되고, 마침내 옛 생각에 잠긴다. “아주머니! 멸치회 한 접시 주소. 소주도 한 병 하고요.” 


오래전, 내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멸치회는 막걸리에 빡빡 빨아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무쳐야 제맛이다.” 이후로 그 이야기는 내 집의 전설이 되고, 나는 해마다 무슨 계절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 맛의 소환에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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