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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Dec 13. 2021

남천동 길

부산을 말하다

그림 이종민



당나라의 문호 한유가 창작에 대하여 두 가지 말을 하였다. 하나는 ‘입언’(入言)으로 후세에 모범이 될 문장을 남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승어인’(勝於人)이니 남보다 뛰어나기 위함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 나는 그만 슬픈 처지가 되고 만다.

그때마다 어거지 몰골을 한 나는, 나의 애타는 공간에서 벗어나 마치 실패한 내 인생의 궤적을 닮은 구불구불한 남천동 길을 걷는다. 그것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변하지 않은 사위를 매번 확인하는 과정을 닮았다 할까? 다람쥐 쳇바퀴처럼 연속적이고 지속적이다. 길이 길을 열어 줄까? 혹여 그런 역설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그따위의 것도 길이라고....”라며 웃어버릴지도 모를 그런 평범한 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장을 애써 무시하련다. 지난 어느 글에서, 이 길의 감동이 걸어가다 보면 바다가 화악 트이는 시야의 반전이라든지, 솔솔 풍겨오는 갯내음의 발견과 같은 것에 있음을 토로한 적도 있었지만, 오늘의 길은 그런 특별함에 얽매이지 않아도 좋다.

좁아서 어깨를 부딪혀도 내가 먼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차를 피해 곡예걸음을 걷더라도 그저 피식 웃으며 여유를 부려보는 것이다. 고개를 올려 건물의 높이에 감탄하지 않아도, 두리번거리며 유리창 속을 궁금해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눈에 익은 건물과 그것들이 간간히 만들어 주는 오랜된 기억의 소환 같은 것에 나는 더 몰두한다.


그것이 설령 대문호가 지적한 무게로부터의 탈피해 보려는 비겁한 절차라 비웃어도 나는 만족한다. 늘 새로워야 하는 건축가가 느끼는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대한 기억과 포근함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것이라 할까? 몇 걸음 만에 내 어거지 몰골이 금방 화안하게 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되니 나의 주장에도 꽤 일리가 있다.

익은 것이 새것에 못 미친다고 어찌 말할까? 그리하여 지구단위, 도시계획을 앞세운 신식 풍의 집들이 부러워하기보다는 지금은 내 걸음걸이에 더 열중하련다. 어떤 사람과 부딪히게 될까? 가계의 좌판에는 어제 보지 않은 어떤 물건들이 나왔을까? 이 야릇한 향기는 어디서 오는가? 그러다가 어느 모퉁이에 도달하면 어떤 회상에 잠겨, 이루지 못한 연가풍의 소설을 다시 그려본다.


무엇보다도 내 저의는 대가의 창작론에 어깃장을 질러 보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몇 채의 새집이 아니라, 그 집들의 흥망과 소란, 명멸의 안타까움을 지켜보던 이 거리가 아니었던가. 오호라~ 더 본질적인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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