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났습니다, 아주 잠시 #06
세비야 셋째 날.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모닝콜 삼아 눈을 떴다. 어제까지 흐리던 날씨가 개었는지 암막 커튼 틈으로 아침을 들이밀고 있었다. 기분 좋은 햇살에, 그럴 리 없겠지만 밖에서 지저귀는 새가 반가운 손님을 예고하는 까치는 아닌가 순간 의심했다. 침대 협탁에 케이블을 연결해 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 휴대폰은 초록빛 가득 배터리를 채우고 나를 기다린다. 괜히 나까지 다시 100% 에너지가 충전된 느낌이다. 스크린을 밀어 화면을 여니 회사로부터 메일이 하나 와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m을 흔들어 깨웠다. “드디어 왔어!” “... 뭐가?” “뽀나쓰으~!”
회사는 매년 초 직원들의 성과 평가를 개별 공지한다. 평가는 업적 평가와 역량 평가 두 가지로 나뉜다. 업적 평가는 작년에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어떤 일을 해 회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보고 이를 바탕으로 연초 인센티브를 산정한다. 반면 앞으로 어떤 일과 역할을 해낼 것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것은 역량 평가다. 새로운 한 해 연봉 인상률이 여기에 달렸다.
회사는 지난해 업적에 대한 평가가 좋아도 역량 평가 결과는 낮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앞으로의 역량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이 꼭 과거 업적이 훌륭해서는 아닐 수 있다고도 한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의 화술처럼 회사 역시 연봉과 인센티브를 연관 짓지 않으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일십백천만..” 역시나 스페인에 한국산 까치는 없다. 나는 제시받은 인센티브 금액을 세 번 다시 세어보고는 그대로 모니터를 덮어버렸다. 그동안의 고생들이 영면 기억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년 나에 대한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중요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고 결과도 좋았다. 동료들과 팀워크도 좋았다. 일을 위해 안식휴가까지 미뤘다. 인센티브만 바라고 한 행동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합당한 보상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도 꽝. 6년을 속고 한 번을 또 속았다.
m과 나는 오늘을 쇼핑 데이로 명명했다. m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았다. 돈을 적게 벌어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돈을 왕창 써버려 돈을 못 모으는 것이 현대 사회 직장인들의 특이점 아닌가. 누군가에겐 시발 비용, 누군가에겐 플렉스다. 우리는 스페인 전역에서 도시를 상징하는 마그넷과 메이드 인 차이나로 강하게 의심되는 스페인 가죽지갑, 선물용 초콜릿 세트 따위를 사고, 하몽과 컵과일, 오렌지 주스를 잔뜩 마시며 돌아다녔다. 회사가 우리에게 허락한 플렉스는 딱 이 정도였다.
현대의 소비 트렌드 대부분은 각자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가심비'에 의한 소확행도 분명 내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곳에서 출발한 주요한 삶의 태도다. 이런 태도를 견지하며 한 번에 '지르는' 플렉스도 분명 필요하다. 동시대의 삶은 자신의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의 성취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작정 절약하는 삶이 과연 더 아름다울까?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플렉스 해 버렸지 뭐야"라고 외칠 수 있는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다.
이주영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2020 트렌드 키워드 "플렉스 해 버렸지 뭐야"…우리 '플렉스'할까요?
회사는 매년 초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한다. 그동안 한 일과 앞으로 할 일을 채점하고 등급을 나눠 직원들을 차분(差分)한다. 호봉으로, 연차로, 직군으로, 직급으로. 어제의 동료였던 우리는 그렇게 다른 밴드에 묶여 단절된다.
직원이 회사를 평가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누군가를 평가를 한다는 것은 평가에 맞는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직원이 회사에 부여할 가치라고는 노동력밖에 없으니까. 직원은 회사를 평가하는 상황은 자신의 노동력을 더이상 제공하지 않겠다는 무가치를 부여하는 순간뿐이고, 우리는 그걸 퇴직이라고 부른다. 연봉과 인센티브가 협상이 아니라 통보이듯이 회사에 대한 직원의 평가도 대부분 통보로써 기능한다.
사실 회사는 다르지 않았다. 한 번도 다른 적이 없었다. 내가 회사에 몸담은 7년 동안 늘푸른 소나무처럼 올곧게 한결같았다. 조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변하는 건 사람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어제와 같은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면 나도 7년 전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 스페인에 있었고, 안식 휴가 중이었고, 날씨가 오랜만에 맑았고, 아침에 지저귀는 새가 반가운 까치인 줄 알았다. 오래 품은 알이 안쪽에서부터 껍질을 깨고 나오듯 무언가 내 속에서도 희미한 균열이 느껴졌다.
밸런타인데이였다. 무심코 입을 다시니 달콤 쌉싸름한 맛이 느껴졌다.
2020.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