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켰다!
2020년 3월에 쓴 첫 글을 시작으로 2022년 12월 31일 지금 100번째 글을 쓰고 있다. 시간으로 치면 300시간, 단어 수로 약 7만 개 정도 썼다. 전체 조회수는 작고 소중할지라도, 나의 100번째 글이 곧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다.
올해 안에 100개의 글을 쓰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다. 한 주에 한 개씩 쓰겠노라했던 결심에는 못 미쳤지만, 내 의지만으로 한 마일스톤을 달성했다는 것을 조용하게 기뻐하고 있다. 내 글을 읽어준 사람들, 응원해주고 쓴소리 해준 이들을 하나 빠짐없이 기억한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땐 내 활자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갔고, 어떻게 보일까에 치중했다. 내 생각은 섹시하니까, 그 생각을 담을 글 자체도 수려하고 멋져야 했다. 문장에 미사여구가 덕지덕지 붙어 무거워졌고, 한 문장이 담아야 하는 의미가 많아졌다. 그래서 내가 쓰고도 내 글의 호흡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내 글은 솔직하지 못하다. 특히 2020년에 쓴 글 속에는 남 눈치를 보는 내가 보인다. 그래서 속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독자를 너무 의식하며 글을 쓰면 한 문장 짜내기가 고되다. 그래서 첫 줄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쓰도록 노력한다. 갈수록 단순한 형식의 문장을 짧게 쓰려고 노력했다. 독자가 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는 나의 역량을 넘어선다고 생각했고, 독자적 해석의 여지를 줄이면 재미없는 글이라 생각한다.
나는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 특정 장소를 정해서 글을 썼다. 일단 그곳에 갔으면 어떤 글이라도 쓰고 나와야 하는 게 숙제였다. 창작의 변비가 와도 아랫배에 있는 힘껏 힘을 줘서 내보냈다. 그렇게 스스로 마감 기한을 맞췄다.
그래서 글 쓰기 전, 글 쓰는 시간, 글 쓴 후의 시간은 하나의 의식처럼 내게 특별하다. 쓰고 난 내 속은 시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찾지 않을 것을 안다. 난 굵직한 주제 아래에서 일관성 있게 쓰는 스타일도 아니고 오히려 내 고민을 아카이빙 하는 목적으로 썼으니까. 근데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란다.
천재적인 발상으로 시작한 글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오히려 브런치에서 조회수가 폭발한 글은 99개의 글 중에서 2~3개 정도인데, 그중 다음 메인에도 실렸던 글은 <화가 나면 도시락을 싸세요>와 <그 시절 죽도는 지금>이었다.
앞 글은 내가 동생이랑 같이 살 때의 경험을 글로 풀은 단편 에세이였는데, 이것이 4만 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짧은 글이지만 상황에서 느낀 감정을 공유했기에 괜찮은 글인 것 같다. <그 시절 죽도의 지금>은 혼자 죽도를 여행하면서 기록한 여행기다.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발전시키거나, 충돌하는 고민들을 문장으로 밀어내는 작업이 내 글쓰기다. 오랜 시간 몰스킨에 노트테이킹을 했던 나는 내 머리 안에 있는 생각들을 활자로 풀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조금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써야 해소된다. 난 어떻게 살고픈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글로 유명해지기 어려움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글을 쓸 이유는 더 솔직한 내 글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아직도 무섭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꿈을 좇고 있는 미생이다. 내 글을 통해 스스로 용기를 얻고 싶다. 기록과 발행을 통해 계속 무언가를 시도할 용기를 얻고 싶었다.
이것 또한 확실하다. 지난 3년 동안 쓴 100개의 글은 내 것이라는 것이다. 잽 앤 레슬 이름으로 발행하는 에세이들은 언제든 내가 증명할 수 있는 실존하는 무언가이다.
자판을 두드려가며 쓴 내 글들을 통해 나는 앞으로 마주할 내 삶을 대비할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창대함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틀린 약속이 될 수 있다. 창대하지 않대도 어쩔티비. 일단 시작했고 그리고 버틸 수 있으면, 과연 창대함이 유일한 목표일까?
“Man, sometimes it takes you a long time to sound like yourself.”
20세기 재즈의 역사인 마일스 데이비스도 초창기엔 자기만의 소리를 내지 못했고, 거장들의 소리를 흉내 내며 오랜 시간 불다 보니 자신의 소리를 찾았다. 내친김에 그의 말 하나 더(올 해의 마지막이니까!)
“Don't play what's there, play what's not there.”
- Miles Davis
essay by 이준우
photo by 이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