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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Nov 22. 2020

일(Work)의 물리학과 소(Cow)

21세기 소의 삶

일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은 천직, 생업, 노동, 직업, 커리어, 알바, 가게, 장사 등 다양한 모습을 통해 삶을 형성한다. 경제 활동을 이루는 형태는 과거에 비해 매우 다양해졌지만 일이란 것 자체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태도는 크게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일을 설명하는 다양한 사전적 정의가 있고, 개개인의 기준마다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그중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물리학 용어로써의 work의 정의는 이러하다. ‘외부에서 작용한 힘(물리력)에 의해 물체가 일정 거리를 움직였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 전이의 양(척도). 에너지 전이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하거나 에너지의 형태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물리학이 정의하는 work를 우리가 하는 일(work)에 응용해본다면, 일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이동하는 에너지의 크기(양)이라고 정의해도 무리가 없겠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작용한 힘은 무엇으로 설명하면 좋을까? 우리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갖게 만드는 것들의 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래 사이 압력(peer pressure)이 될 수도 있고, 사회 계층에서 탈락할 것 같은 두려움, 애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결핍, 많은 부의 표식을 얻고 싶은 욕망, 이를 넘어 인간의 최소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

단조로운 삶

5년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되는 쇼팽 피아노 콩쿠르의 2015년 경진대회에서 우승한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한 인터뷰가 기억이 난다. 작년부터 그에게 빠져 작품들을 찾아 듣다 한국에서 한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그는 피아노를 안 칠 때는 보통 늦잠을 자고 영화나 책을 읽는 것 외엔 딱히 하는 건 없다고 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과 공연으로 보내겠지만, 그처럼 한 분야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의 하루 일과가 어떤지 들어보면 의외로 삶을 단순하게 유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직업과 연관된 활동들을 포함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먹고, 자고, 쉬는 것, 그리고 일. 일 외의 시간은 꽤나 심플하다.

겸업 주의자 vs. 전업 주의자

일과 함께 단조로운 삶을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에 얼마만큼의 에너지와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개인의 몫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인간이 하루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에너지를 강력한 동력원으로 전환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까? 이 힘의 작용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 이 힘의 원천과 성격을 연구해야 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부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부업을 하고 있거나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는 주된 이유는 미래 소득을 증대하기 위함일 것이다. 소득을 늘릴 마음 에너지를 n개로 나눠도 한 개였을 때만큼의 힘을 발산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를 둘로 나눠도 두 일(work)을 유의미하게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모든 활동이 다섯 손가락 이상이라면, 그만큼 강력한 외부(마음)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주제에 대해 한 디자인 회사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업과 부업의 경계에 대해서, 그리고 부업과 전업에 대한 그분의  의견을 구했다. 그만의 인생 경험과 시대정신을 감안한 답변이라고 생각해 여러분과 공유한다. 여러 부침이 있던 디자인 회사를 정리한 후 지금은 대기업 계열사를 거래처로 두고 있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 중이다. 한 사람의 의견으로 봐주길 바란다.


"전업이냐 겸업이냐는 일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선택지 자체가 될 수 없다. 즉 겸업주의와 전업주의라는 비교 명제는 성립될 수 없다. 겸업은 대체로 한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으로 상위 10% 안에 드는 탑티어 인재들에게 해당되는 주제이다. 업계를 통틀어 대부분의 인력들은 소속된 한 개의 조직에서 직함을 갖고, 적어도 특정 위치에 올라야 겸직이 있는 식이다. 법인 대표이며 어느 라이온스 클럽의 간사이고, 또 어느 브랜드 이사이고, 어느 공공기관 자문위원직을 맡는 이는 최소 자기 분야에서 10% 안에 드는 사람이 하고 있다.

요즘 이런 주제가 유행하는 이유는 정부나 대기업이 추구하는 변화의 일환이라고 본다. 점점 직원의 금전적 복리후생을 줄이고 정규직 임금 상승폭도 주는 것과 함께 작용한다. 본업에서 높은 수준의 전문성(mastery)을 채 연마하지 못 한 90% 사람들에게 이러한 방법론이 유행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고졸 출신 대표들이 있다고 고졸자 = 대기업 창업자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며 원래 창업할 지능, 언변, 카리스마 등이 있었던 것이다.

겸업은 훌륭한 탑티어급 인재가 사회 활동에서 자연스레 나온 아웃풋의 일종일 뿐, 겸업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탑티어급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겸업은 능력 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갖는 것이지, 하나의 성공 방법으로 얘기할만한 게 아니다. 요즘 횡행하는 자기 계발 관련 콘텐츠에 혹할 정도라면 이미 당신은 겸업을 못 할 사람이다. 당신이 이러한 부류의 사람이라면 취직에 몰두하거나 자기에게 더 맞는 직장으로 이직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낫다. 눈 앞의 일도 집중해 해결하지 못하면 멀티태스킹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코뚜레

나는 소가 되지 않기로 했다

임상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이 한 인터뷰 중 유명한 것이 ‘  정리 먼저 해라’ 일 것이다. 단면적인 조언이지만 심오한 변화를 낳을 수 있는 말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는지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 탐색은 개인의 영혼을 찾는 과정이다(soul-searching). 우리는 어떠한 지향점을 반드시 설정해야 한다. 지향하는 바가 없으면 인생을 빙빙 도는 어지러운 원만 그리게 되고 스스로 어지러움에 메스꺼움을 느낄 것이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결정받는 입장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과정이기에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힘의 원천을 모아 자기 통제력을 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가 코뚜레를 하고 있는지 거울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고 있다. 맹목적인 생계활동은 농경 사회에서 소의 역할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하게 삶아진 여물을 먹고 나가 하루 종일 농사꾼 주인을 위해 일하는 식이다. 일을 우직하게 해냄에 있어서는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나무랄 데 없이 이행하지만, 결국 소는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고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소의 삶은 소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21세기의 소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미래 나의 자식도 송아지 인생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나는 어서 빨리 소의 삶을 청산해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오늘 아침도 방 정리를 한 후 출근한다. 방 정리만 잘하는 소로 남지 않기를.



essay by junwoo lee

photo by eberhard grossgasteiger, 티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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