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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Nov 22. 2017

일상 - 2017.11.22

걸어가는데 30분. 다시 돌아오는 데 30분.

남자는 오후 한시 반에 일어났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더 잘까. 아니면 일어날까. 하고 고민하던 남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잠은 충분히 잤지만, 덕분에 시간이 충분하진 않았다.


뭘 할까. 남자는 고민에 빠졌다. 어제 잠에 들기 전 계획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으나, 다른 일도 하고 싶었다.

결국 남자는 가방에 책 두권을 넣고, 샤워를 마친 후에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남자가 하기로 정한 것은 근처의 카페를 가는 것이었다. 남자는 회사를 다니며 차를 쓸 일이 없다는 판단 하에 차를 부천에 있는 본가에 두고 시흥에 왔다. 때문에 근처는 걸어다닐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먼 거리라면 택시를 타겠지만 마음에 드는 커피 한 잔을 마시겠다고 택시를 왕복으로 타는 것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나서니 제법 찬 바람이 남자의 몸을 쓸어내렸다. 완연한 겨울이구나. 남자는 문득 생각했다.


최근 남자는 한 카페를 찾아내었다. 초밥을 먹기 위해 찾아간 정왕역 근처에서 찾아낸 카페였는데, 남자가 좋아하는 핸드드립(가게에서는 브루잉 커피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었다. 뭐. 이름이 중요한가)을 파는 카페였다.

가격은 오 천원. 아메리카노의 약 두 배의 가격에 달하는 커피였지만 남자는 그 정도는 지불할 생각이 있었다.

카페를 걸어간다면 왕복 한 시간의 거리였지만 그래도 남자는 가고자 했다. 마음에 들었기에.


카페에 도착한 남자는 가게 카운터에 있는 네 가지의 원두의 향을 맡아보고, 오늘은 에디오피아 시다모를 마셔보기로 했다. 남자는 따뜻한 브루잉 커피에 에디오피아 시다모 원두를 선택하고 현금으로 결제한 후에,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에, 유리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가 나왔다. 남자는 향을 잠시 맡아보고, 커피 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약간 짙은 스모크향에 달콤한 맛이다. 좋은 조합이네. 기분이 좋아진 남자는 가방에서 책 두 권을 꺼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 1권'

제프 르미어의 그래픽 노블 '수중 용접공'


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남자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분명 단점도 존재하는 작가지만 장점이 너무나도 뚜렷한 작가였다. 남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 깊은 문장을 좋아했다. 섬세하면서도 깊은 의식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 문장들. 덤덤하게 그 깊은 의식을 부드럽게, 섬세하게 표현하는 그 문장들이 좋았다.

제프 르미어는 또 어떤가. 그만의 독특한 그림체로 펼쳐내는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진실된 이야기들. 


남자는 테이블 위에 차려진 두 가지의 멋진 세상을 음미하면서, 시간을 보낸 후에 다 마신 커피잔을 카운터에 다시 가져다 놓고 카페를 나섰다.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남자의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에 영감을 받고, 힘을 내며,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쓰고 싶고,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키워낸다.


집에 돌아와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아차. 어느새 출근 시간이 다 되었다. 남자는 브런치에 쓰던 글을 급히 마무리 하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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