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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May 02. 2017

탈락, 그리고 존 치버

꺾였을때 하는 것.

오늘은 손님이 없었다. 모두들 어디로 놀러간 것일까. 어제는 많이 바빴는데. 남자는 손님이 없는 김에 그동안 미뤄왔던 대청소를 했다.

냉장고와 벽, 바닥 등 얼룩진 곳의 얼룩을 모두 지우고, 여러가지의 식자재를 준비한 후에, 남자는 우유박스를 몇 개 겹쳐놓고 그 위에 앉아 핸드폰을 열었다.

브런치팀의 이번 프로젝트의 당선자 발표가 있었다. 남자는 심호흡을 한 후에, 글을 클릭해 명단을 확인해 보았다. 명단에는 '멀라이언 스노우볼'이 없었다.


남자는 잠깐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화면을 끄고 일어났다. 마침 손님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나가고 나서, 남자는 다시 우유 상자 위에 앉았다. 몇 번째 탈락인가. 남자는 서른 번 째 탈락 이후에, 횟수를 세는 것을 포기했으면서도, 괜히 몇 번째 인지 세어보았다.

아무래도 '멀라이언 스노우볼'은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최근 출판사들의 경향은 라이트 한 것들이니까. 자기 개발서나, 에세이, 여행 후기 같은 글들이. 남자는 몇 번이나 '멀라이언 스노우볼'을 수정해볼까.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그럴 수 없었다. 풋내가 나든, 완성도가 떨어지든, 임팩트가 떨어지던, 대중성이 떨어지던..일단 완성한 글이었다.

독립출판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일까.


남자는 집에 도착해 서재를 둘러보았다. 이럴 때 읽는 책이 있는데...뒤적이다가, '존 치버의 일기'(출판사 : 문학동네)를 꺼냈다.


존 치버는 성공한 작가였다. 글을 쓰며 평생을 살았는데,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바로 알코올 중독과...양성애자라는 사실이었다.(존 치버는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낳았다. 그렇기에 완벽한 동성애자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그의 일기는 35년간 쓰여졌고, 29권의 분량이다. 그 중에 그에게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분량만 책으로 발매가 되었는데, 그의 인생이 녹아있는. 그런 출판물이다.

존 치버는 평생을 절망하며 살았다. 자신이 동성에게 호감을 느낀 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자신이 뜨기 전에는 무명이라는 사실에 절망했고, 뜨고나서는 자신이 '상표처럼 되어버렸다.' 라며 절망했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에 절망하면서도, 술을 마셨다. 

남자는 존 치버의 일기를 처음 읽었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느꼈다. 남자도 늘 정직함과 솔직함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나, 분명하게도 그 이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이면을 늘 숨겨야 했기에, 그것에서 오는 괴리감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 치버는 비록 일기지만 자신의 그런 이면을 기록하고, 말년에는 그것을 출판 하고 싶어했다.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수 없는 욕망과,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괴로움, 그리고 유명해진 후에 자신을 잃어버린 괴로움...알코올 중독으로 부터 오는 절망. 그로 인해 파생된 부인과의 싸움 등.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글을 썼다. 남자는...가끔 절망을 느낄 때면, 존 치버의 일기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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