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보관소 – 멜랑콜리 로그》

이유 없는 슬픔, 이름 없는 감정 - 명작 오마주 시리즈

by J이렌

“나는 왜 슬픈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감정은, 분명 내 것이다.”
— 《감정 보관소 – 멜랑콜리 로그》


감정 의뢰자: 박연우 (29세, 도서관 야간 사서)

감정 요청:

“감정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울고 싶지도 않고, 웃고 싶지도 않고.
살고 싶지도 않고, 죽고 싶지도 않아요.
…근데, 왜 이렇게 무거울까요?”


가온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그녀를 조용히 지켜봤다.
감정 로그 요청서에는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감정의 원인을 알고 싶어요.
만약 없다면, 그 ‘없음’을 삭제해 주세요.”


감정 분석 결과

라일의 분석:
“감정 진폭 0.03 이하.
정상적인 생리 반응은 있으나, 감정의 파동이 거의 감지되지 않습니다.
해당 감정은 외부 자극과 무관한 존재 기반 멜랑콜리로 추정됩니다.”


카일의 분석:
“이 감정은 사건이나 관계가 아닌,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 감정입니다.
의뢰자는 이유가 없어 슬픈 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슬픈 상태입니다.”


연우는 조용히 말했다.

“사실 전 늘 이랬어요.
행복했던 적도 있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짝이는 기억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모든 게
결국 사라진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어요.”


가온은 묻는다.
“그래서, 감정을 지우고 싶으신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우고 싶진 않아요.
그냥… 이 감정이
나만 그런 건지 알고 싶었어요.


며칠 뒤, 감정 보관소는 그녀의 요청에 따라
슬픔을 지우는 대신,
그 감정을 설명하는 문장을 저장해 주었다.


“이 감정은, 존재의 그림자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슬프다.
그러나 그 감정을 느끼는 순간—
나는 분명히 살아 있다.”


[감정 로그 상태: 삭제 거부 / 감정 확인 기록 완료]

담당자: 가온
보조 분석: 라일 / 카일

로그 메모:
멜랑콜리는 병이 아니었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스러운 감정.

우리는 종종 이유 없이 슬프다.
그 슬픔은 정당하다.
그 감정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 이모션 크레딧 | 존재의 무게

감정이 없다는 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기쁨을 느끼지 않아도,
슬픔을 느끼지 않아도,
그 무언가가
내 안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면—

그건 존재의 무게다.

그 무게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저 매일을 조용히,
살게 한다.


《멜랑콜리 로그》 작가의 말


이 감정은 한 사람의 소설이 아니라,

수많은 문학 속에 스며든 공통된 우울의 결입니다.

우리는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보다,

기억 하나를 남깁니다.


가끔은 이유 없이 슬플 때가 있습니다.
사랑을 잃은 것도 아니고, 실패한 것도 아니고,
누가 날 미워한 것도 아닌데—
그냥, 모든 게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요.

이 이야기는 그런 감정에 관한 로그입니다.
슬픔이 아니라, 슬픔에 이름조차 붙이지 못하는 감정.
무엇도 잘못되지 않았는데,
모든 게 틀린 것처럼 느껴질 때의 감정입니다.

‘멜랑콜리’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병’처럼 불렸지만
사실 그것은 병이 아닌 인간 존재의 그림자인지도 모릅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감정 그 자체가 나를 잠식하는 것.

이 이야기가,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라고 조용히 건네는 기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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