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회복하고 있다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과 5월 셋째주

by 진아
습윤 테이프 안에서 끝없이 하얀 진물이 흐르고, 일주일에 두 번 레이저 치료를 위해 열어 보는 상처는 변함없이 샤프심으로 찍은 붉은 점 하나이리라는 것을 당신은 모른다. 한 달도 더 지나서야 그 붉은 점이 두 개가 되고, 두 달이 가까워졌을 때에야 굵은 연필로 찍은 점 정도로 커지리라는 것을 모른다.


"마침내 수술실에서 걸어 나온 그녀는 울먹이는 당신을 위로하려고 했다. 커다란 멸균 가제와 반창고를 우스꽝스럽게 이마에 붙인 채 머뭇머뭇 반복해 말했다.
괜찮아. 진짜 금방 낫는대. 시간만 지나면 낫는대. 누구나 다 낫는대.

- 한강, '회복하는 인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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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한강이 맨부커상을 받았고, 오랜만에 친구랑 한강의 소설에 대한 얘기를 했다. <희랍어시간>과 <소년이 온다>, 그리고 당연히 <채식주의자>에 관한. 이나는 한강이 아이를 낳고 나서 인간을 바라보는 온도가 좀 달라졌다는 얘기를 해주며 <회복하는 인간>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응, 그래. 대답을 할 때까지 내가 금방 이 소설을 읽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요일. 강남역 수노래방 살인사건이 보도되었다. 처음엔 황망함과 분노, 그리고 곧 두려움이 찾아왔다. 이제 밤에 한강을 뛰는 일이 좀 더 무서워지겠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실제상황이라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받아들이기 싫은, 그런 일. 퇴근을 하고 강남역 10번 출구에 갔고 수많은 포스트잇과 꽃들 앞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끝도 없는 무력감이 갑자기 찾아와 자리를 금방 떠났고, 서점에 들러서 <회복하는 인간>을 샀다. 밤새 화나는 마음과 무력한 마음 사이를 오가며 뒤척였다.


목요일 아침, 출근하는 버스에서 <회복하는 인간>을 읽었다. 소설이나 시가 내 삶에 '찾아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 아침에 그랬다. 사놓고 가방에 그대로 들어있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합정에서 광화문까지 버스가 달리는 동안 끝까지 읽을 수 있었고, 전날 포스트잇 앞에서도 나오지 않은 눈물이 갑자기 쏟아졌다. 사연있는 여자처럼 버스에서 울다 내려 출근을 했고, 하루를 잘 보냈다. 달라진 상황은 하나도 없지만, 뭔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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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붙은 해설에서 평론가는 이 소설을 '아픔의 원인이나 치유의 과정이 아니라 오로지 아픔이라 상황 자체'가 강조되는 소설이라고 썼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읽었다. 소설의 화자가 주인공이 지금은 모르는 미래의 회복 과정을 현재형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는 아픈 상황 자체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 샤프심만큼 나아지긴 하지만 언젠가 결국 회복하게 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생생한 고통의 감각들과 함께 회복의 과정을 그린 이유는, 인간은 그런 존재라는 것, 그러니까 흉터가 남고말지만 그럼에도 회복의 과정을 거치는 존재라는 것을 얘기한 건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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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무력하게 만드는 세상을 살면서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을 때가 더 많다. 뭔가를 시도해도 이게 무슨 소용이지, 생각하게 되는 나날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치지 말아야 할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회복하는 존재'에 대한 믿음, 정도. 이건, 곧 나아질거야, 라는 희망적인 수사라기 보다는 흉터를 가지고 사는 삶에 대한 통찰에 더 가깝다. 회복하는 존재라면, 그 속도가 아주 더딜지라도 가만히 있지 않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내 안의 다짐같은 것이기도. 샤프심만큼 회복된 상처를 알아챌 수 있는 민감함을 가질 수 있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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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서로를 돕는 사람들을 본다. 절망적인 교육 환경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환대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치지 않겠다는 여자들.


우리는, 흉터가 남겠지만, 회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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