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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26. 2017

세상엔 이런 직함도 있다

조직 안에서 내 일의 서사를 만들어가며 일하기

지난 2월 말에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3월에 진저티프로젝트에 합류했다. 2월에 퇴사 이후를 고민하던 중에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고, ‘두 개를 같이 해도 될까요?’라는 나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주신 덕에 진저티프로젝트에서 N잡러의 삶이 시작되었다.

저는 무슨 일을 하게 되나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새로 일하게 될 곳에서의 나의 업무를 정리하고, 서로의 이해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다. 하게 될 일의 종류와 내용은 정해졌는데, 내가 어떤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는 건지 궁금했다.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것이 아니라, 이직할 사람과 사람이 필요했던 조직이 딱 만나 대화를 하면서 일이 만들어진 경우라서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직함’이었다. 직함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직을 할 때 당연히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관성 같은 것. 그래서 입사 관련 서류를 보내면서 질문을 했다.  

2월 27일 자, 진저티프로젝트에 보낸 메일 일부


여기까지는 입사 전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2월 28일 자, 빛나님에게서 온 답장


…음?

직함을 직접 naming 하라니, 이건 뭐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거기 적응하기도 전에 내 정체성이 들어간 직함을 스스로 생각해야 하다니. 나에 관한 걸 스스로 정하는 것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하지만, 여기까지 정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뭔가 당연한 일들을 놓치지 않고 자신을 설명해 내는 빛나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 피디이자 수비수이자 포토그래퍼를 겸하는 연구원이라니! 동시에 나는 스스로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하려면 일단 조직 안에 들어가야겠지,라고 생각하며 입사 전 당연히 알게 될 줄 알았던 부분을 모호하게 남겨둔 채로 진저티프로젝트에서의 일이 시작되었다.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찾은
나만의 일


진저티프로젝트에서 나는 대개 다른 조직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라고 부를 수도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입사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상반기에 출판한 <어댑티브 리더십>의 스토리 펀딩을 진행했고, 진저티프로젝트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블로그 관리, 보도자료 작성, 출판물(결과보고서) 관련 기획 등등을 맡고 있다. 아주 간단하게는 조직 안에 있는 얘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마감러가 되게 해 준 <어댑티브 리더십> 출판 스토리펀딩


그런데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이것을 하려면 글쓰기 능력이나 다른 조직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SNS를 다루는 능력뿐만 아니라 ‘조직 내 업무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고 공유되어야 할 이야기에 대해 빨리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면 늘 하게 되는 것이라 특별할 것이 없지만, 진저티프로젝트 업무 특성상 유닛으로 하는 프로젝트 여러 개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맥락을 알지 못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얘기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5월에 갔던 제주도 워크숍 포스팅. 다른 어떤 소식보다 '놀러 갔다'라는 소식을 더 반가워하는 팔로워들을 확인한 유익한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서사를 잘 전달한다는 얘기 안에는 우리의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의 맥락도 이해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진저티프로젝트를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진저티가 무엇을 하느냐만큼 진저티가 어떤 조직이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요한 팔로워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행사 정보나 해외 소식보다는 ‘진저티가 이걸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진저티는 이 행사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정보가 된다. 그래서 이를 잘 전달할 수 있는 글을 기획하고, 멤버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나의 글을 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조직 내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나의 직함을 Ambassador of Narrateave 라고 정해보았다. 물론, 나 혼자 정한 것은 아니고, 잡담을 하다가 갑자기 만들어진 ‘직함 만들기 워크숍’에서 함께 머리를 모은 결과다. 진저티프로젝트 멤버 모두가 서로의 직함을 새로 정의해 보는 시간이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도를 맞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모두 진향님, 빛나님, 이렇게 부르기 때문에 특정 직함은 진저티프로젝트 안에서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업무를 스스로 명명해 보는 것, 그리고 그 작업에 동료들의 도움을 더하는 과정이 결국 진저티프로젝트의 색깔을 더 확실하게 하고 자기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더하는 것 같다.

그 워크숍에서 정한 진저티프로젝트에만 있는, 우리만의 직함은 다음과 같다.

TeaEO(Tea Excutive Officer) 서현선

현선님은 진저티프로젝트의 대표를 맡고 있다. 작은 조직에서 대표가 하는 일들(즉, 모든 일)을 하고 있다. 대표로서 전체를 보고, 멤버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업무의 모양을 설계하고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 너무 많이 일하고 있지는 않아요?’ ‘혹시 이걸 하는데 가장 불안하게 하는 건 뭐예요?’ 등의 질문을 하고, 이를 통해 불안은 덜고,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을 만든다. 미팅을 위해 먼 길 가는 멤버들의 드라이버이자, 각종 워크숍의 능률을 높여주는 맛있는 간식 큐레이션을 담당하기도 한다.

TeaKO(Tea Knowledge Officer) 홍주은

진저티프로젝트가 쌓아나가고 있는 지적 재산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밀레니얼 프로젝트, 청소년 주도 연구 프로젝트, 30-40대 여성들의 일에 관한 연구 등 진저티프로젝트가 해왔고, 또 앞으로 하게 될 연구를 진두지휘한다. 특유의 꼼꼼함이 연구를 계획하고 진행하는데 있어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어 평소 에너지가 많지 않지만 연구나 워크숍이 시작되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TeaOO(Tea Operation Officer) 고현진

진저티프로젝트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현진님. 진저티프로젝트 모든 멤버들이 자기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고 있는 장본인. 출판프로젝트의 PM도 맡고 있다. 철없는 중학생 동생을 둔 대학생 언니처럼 각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원들을 적절히 모으고 또 분배하는 일을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예상할 수 없는 대단한 개그감과 엉뚱한 아이디어의 소유자로 개별 프로젝트에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Teatris Genius 김빛나

빛나님은 밀레니얼 교사 연구 프로젝트의 PM을 맡고 있고, 이외의 진저티프로젝트의 작은 살림들을 챙기고 있다. 한 번에 4줄을 깰 수 있는 테트리스의 막대기처럼 유닛 활동을 할 때 필연적으로 비게 되는 자리를 제대로 메워 해당 프로젝트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한다. 노인 이슈에 관심이 많아서 사이드프로젝트를 하고 있고, 최근에는 더 적극적으로 해보기 위해 출근일을 주4일에서 주3일로 조정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이외에도 밴드활동(드러머)을 하는 등 '자기의 연구처럼 사는 삶'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CreaTeave Superhero 강진향

진저티프로젝트의 디자인물/이미지 작업을 전담하고 있으며 교육과 연구프로젝트를 함께 이끈다. 우리는 진향님에게 슈퍼히어로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어떤 것이든 진향터치의 은총을 입으면 좀 더 직관적이고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다. 디테일한 아이디어와 이를 실행해 내는 능력으로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연구나 교육에 색깔을 입힌다. 회의 할 때 '제가 OO만화에서 봤는데', '이걸 보니 영화 OOO의 한 장면이 생각나네요.' 등의 발언으로 만화와 영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며 덕성이 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고 있다.

Tea Taster 남은채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턴. 진저티프로젝트에 합류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없었던 시간이 잘 생각나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진저티프로젝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소셜섹터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일이라는 것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직접 경험하며 맛보고 있다.

진저티 멤버들의 명함 뒷면. 멤버들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다. Tea Taster는 진저티프로젝트를 다채롭게 경험해 보라는 의미로 무지개 명함을 드렸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간극을 좁히는 실험

흔히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두 개는 한번에 이룰 수 없는 것으로 대개 얘기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특히 일터에서는 '해야 할 일'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하는 걸까?

'내 직함을 내가 정하기'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물론 간극이 없어진다거나 현실적인 이유들로 '하고 싶은 일' 위주로만 업무가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직함을 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우리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찾을 뿐만 아니라 나의 목적과 조직의 목적을 맞춰나가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을 강화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실현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

어쩌면 그래서, 진저티 멤버들의 직함은 개인과 조직이 성장해나감에 따라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내가 해야 하는 일도 변하고, 또 성장은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의 모양도 변화시키니까.

나는 내년에 어떤 직함을 갖게 될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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