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학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하얗게 질린 표정의 민아가 긴급 호출을 했고 메시지함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학교에 있지? 기다려.. 어디 가지 말고 꼭! 나 그리 가고 있는 중이니까 우리 만나는 광장 벤치에서 보자’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뭔가 큰일이 난 것은 분명했다. 알고 지낸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다급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난 벤치에 앉아 민아를 기다렸다. 사실 민아를 만나고 있을 때 기은이가 지나가다 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괜한 오해를 하고 따지고 들 텐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삐삐의 음성 메시지함으로 들려온 음성은 이곳으로 온다고 했고, 내가 굳이 다시 연락을 해서 다른 곳에서 보자고 하면 촉이 좋은 민아가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뻔했다.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밖의 카페로 들어가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민아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헉헉”
“어휴, 뭐 하러 그렇게 뛰어와, 힘들게.. 자, 어서 앉아서 시원한 음료수 좀 마셔”
난 들고 있던 음료를 건네며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러나 민아는 내 손을 잡아끌고는 빨리 가자고 하면서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캠퍼스 밖으로 다시 나가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대체? 왜 오자마자 다시 나가는 거야, 말 좀 해봐”
민아는 이내 택시를 잡으며 나를 집어넣고선 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난 평소에 보지 못하던 민아의 모습에서 뭔가 심각함을 감지했고, 재촉하지 않고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택시 기사 아저씨도 눈치가 빠른 분이신지 상황을 보고선 목적지를 묻지도 않고 일단 차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이내 민아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동부병원 장례식장으로 좀 가주세요”
“뭐, 장례식장? 무슨 일이야, 그래서 그렇게 다급했구나. 무슨 일인데, 누가 죽은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난 총알같이 물어봤고, 그렇게 물어보는 짧은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누굴까, 나에게 찾아와서 장례식장을 같이 가자는 걸 보면 우리가 함께 잘 아는 사람일 텐데. 누나? 그러고 보니 경희나 민아한테 신경 쓰느라 참 고마운 누나였는데 연락도 자주 못했었지.. 아니다, 설마 경희한테 무슨 일이? 다시 약을 했나? 또 자해라도 한 건가?’
1초 동안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던데, 아무래도 전적이 있는 경희한테 무슨 일이 난 것만 같았고,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갔다.
“준혁이가 죽었어..”
“아……”
순간 울컥하며 와락 눈물이 차올랐다.
이게 어떤 기분인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경희가 죽은 것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인 건가. 경희와 멀어지느라 더더욱 얼굴 본 지가 오래되는 녀석이었다. 누나한텐 그렇게 게기며 장난기 가득한 녀석이 나에게는 깍듯하게 수학 공부도 열심히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위태위태해 보이는 누나가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지, 그래서 나에게 고마웠던 건지 그 많던 장난기도 나에게로 향하는 적은 거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어쩌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몰라 나도, 교통사고를 당했대. 근데 뺑소니인가 봐. 경희 얘 지금 정신이 나갔어.. 흑”
그렇게 된 후로 민아가 내 앞에서 ‘경희’란 이름 두 글자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보아 하니 민아도 경황없는 연락을 받고 최소한의 사실만 인지한 채, 나를 끌고 가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가봐야 하니까. 뺑소니라니 세상에..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비통한 마음과 동시에 경희 얼굴을 어떻게 보나.. 죄책감도 함께 커져만 갔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싸대기를 맞고 온갖 쌍욕을 들어도 차라리 맘이 편할 것만 같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허겁지겁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상복을 입고 홀로 앉아 천애고아처럼 망연자실해 있는 경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만에 보는 자리인데 하필 장례식장이라니. 시선이 마주치기도 전에 내 심장은 쿵쾅쿵쾅 거리며 얼굴이 붉어졌고, 이미 눈물은 글썽이다 못해 왈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저토록 애닮은 모습이라니.
미안함 마음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았다.
뭐라 말을 꺼내기 어려운 난 절을 올리려 앞에 섰고, 함께 들어간 민아가 경희를 부른다.
“경희야, 나 왔어. 오빠 데리고 왔어..”
초점을 잃은 경희의 망연한 눈은 몇 번을 불러서야 우리를 쳐다본다.
나만의 느낌이었던 걸까. 경희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이내 꺼진다.
“아아아악~!!!”
단말마 같은 비명이 터진다. 무섭게 맺힌 한이 느껴져 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오빠가 여긴 왜 왔어! 헤어지자고 할 땐 언제고 소식 한번 없더니 니가 여길 왜 와!!!”
“나도 준혁이도 아무렇게나 살다가 아무렇게나 갈 테니 꺼져, 꺼지라고!”
그렇게 힘없이 종이인형처럼 구겨져 있던 아이가 무릎을 펴고 반쯤 일어서서 쥐어짜듯 외친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 난 준혁이에게 절을 올리고 일단 나가 있으라고 하는 민아의 손에 등 떠밀려 조용히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절을 두 번 하는 동안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경희의 비명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 소리에 놀란 옆방 다른 곳의 사람들도 여럿이 와서 무슨 일인지 쳐다보는 중이었다.
짧게 마주친 경희의 모습은 며칠 동안 굶은 건지, 눈에 띄게 삐쩍 말라 있었고, 예전의 통통했던 볼은 살이 빠져 홀쭉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퀭한 두 눈.. 내 잘못이었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중간에 연락이라도 하지, 아무 연락이 없으니 그럭저럭 결국은 경희도 마음을 정리하며 나를 잊고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었던 것은 내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하고자 했던 핑계였다.
걱정이 됐더라면 경희 모르게라도 간간이 소식을 살펴야 했었다. 그리고 민아에게도, 민아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을게 아니라 중간중간 적어도 잘 지내고 있는지는 물어봤어야 했다. 하다 못해 약이라도 다시 하는 건 아닌지 체크했어야 했다.
“휴…..”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준혁이의 치기 어린 귀여운 얼굴이 떠오른다.
그 착한 녀석이 이 어린 나이에 인생 꽃 피워보지도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민다. 왜 어려운 사람에게 계속 힘든 일만 일어날까.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뺑소니를 당했으면 경찰이 잡지 못하면 보상도 제대로 못 받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나마 동생 지켜준다고 아등바등 살던 경희를 이제 어찌하나.. 간신히 일어서게 만들었었는데, 속절없이 다시 무너지게 생긴 이 상황이 너무나 막연하고 가슴이 미어졌다.
담배를 피우고 일어서 다시 들어가려는 찰나, 민아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좀 어떤지 내가 묻기도 전에 민아의 말이 들려왔다.
“안 되겠어. 내가 괜히 널 데려왔나 봐. 지금은 거의 발작 수준이라 진정시킬 수가 없을 것 같아. 널 왜 데려왔냐고 나한테도 꺼지라고 길길이 날뛰어서 저녁에 다시 온다고, 그땐 언니 혼자 오겠다고 말하고 나도 나온 거야. 일단 돌아가자”
얘기를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벤치에 주저앉았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러면서도 지금 바로는 다시 경희 앞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가 되기도 한다. 조금 전의 표정과 외마디 비명소리, 매서운 말들이 귀에 꽂혀 떠나지 않는다.
민아 얼굴을 보고 있기도 힘들다.
일단 병원에서 바로 헤어져 정처 없이 거리를 거닌다. 오후 수업이 있었고, 과제 제출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거리를 걸으며 정신을 조금 추스르고는 근처의 공중전화박스에 가서 민아에게 삐삐 음성을 남겼다.
“저녁, 몇 시에 갈 거니? 일단 네가 가보고 나서 상황 좀 얘기해 주렴. 난 좀 더 늦게 갈게.”
음성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가 이내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계속 아까처럼 내가 가는 걸 거부하면 새벽에 경희 잠깐 눈이라도 붙였을 때나 아니면 입관할 때 언젠지라도 알려줘. 경희 마주치지 않을 때라도 가서 준혁이 가는 길 지켜봐야지..”
얼마나 더 걸었을까.
삐삐를 보니 기은에게서 연락이 몇 번 와 있었다. 하지만 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 보이는 포장마차에 들어섰다. 오뎅 국에 소주 한잔, 한잔이 두 잔이 되고 두병이 세병이 되었다.
민아에게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어차피 문상객도 많지 않고, 경희가 이미 많이 기진맥진해 있어 새벽 3, 4시쯤 자신이 좀 재울 테니 그때 오란다. 경희에게 물어볼 순 없고, 그냥 왔다가 또 마주치면 어찌 될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그래, 그러자. 시계를 보니 다시 걸어가면 대충 시간이 맞을 듯싶었다. 그냥 바로 택시를 타고 갔다가 취기 오른 핑계로 나도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를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 형언할 수 없지만, 취기를 핑계로 펑펑 울음을 보이기도 싫었고, 혹시나 경희한테 동생 제대로 못 챙기고 뭐 했냐고 맘에도 없는 소리를 반항하듯 할까 봐, 그게 겁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잠들어 있는 경희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과거의 추억들이 하나 둘 머릿속을 아로새기며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소원대로 경희의 잠든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문상객은 다 떠나 불도 꺼서 컴컴한 준혁의 위패 앞에서 그렇게..
발인이 있기 한 시간 전에 나왔다. 발인은 민아가 같이 지켜보고 장지까지 다녀오겠노라고 했다.
난 경희 옆에 있을 수도, 준혁이 마지막 길을 배웅해 줄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경희가 잠들기 전, 잠시 민아와 대화를 나눴더랬다. 그리고 다시는, 절대 나를 보게 하지 말라고 했단다. 나에 대한 마음이야 변했겠냐만, 지금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원망이 나에게로 꽂혀 있는 것 같다고.. 원망이 극에 달해서 정까지 떼 진 건지 어떤 건지는 자기도 모르겠지만, 그건 아마 지금 경희 자신도 모를 거라고.. 시간이 좀 지나야 알겠지. 시간이 좀 지나 경희가 나를 찾을지, 아니면 마음 가라앉아있을 때 민아가 물어보기라도 할 테니, 경희와는 그때 얼굴을 보던지 하란 얘기다.
며칠 동안 계속해서 준혁이의 얼굴과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던 경희의 수척한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업보가 있다면 나도 전생에 참 더러운 업보를 지었나 보다.
그리고 이때는 몰랐다.
그날 잠들어 있는 경희의 얼굴을 보고 온 게 경희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민아도 그날의 충격이 작지 않았던 것인지, 그 뒤로 나와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날 찾아오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텀이 길어졌으며, 찾아와도 예전과 달리 돈 버는 일에 대한 얘기만 잔뜩 할 뿐이었다. 내가 알던 민아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져 갔다.
경희에 대해 물어보면 진짜 마음 끊은 것 같다고, 절대 보지 않겠다고 한다는 말만 전했다. 직접 연락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연락을 해서 무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수화기를 들었던 손을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밤이 이어졌다.
잘 살 수 있을까. 잘 살아야만 했다. 준혁이를 위해서라도 오롯이 자기만을 위해 이제 잘 살기를 바랐다. 준혁이의 죽음을 나 때문으로, 내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수 있는 얘기였기에 나 스스로도 부정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