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캠퍼스.
벚꽃 흐드러진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는 새내기인 나에게 젊음의 충만으로 인한 활기와 청춘의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저 이런 환경에 모처럼 가슴이 설렜다. 내가 먹고살 돈을 하루하루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해방감까지 합쳐져 그 설렘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일단 학교를 다니면서 군 입대를 미뤄놓고,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겨울에 다시 대학 입시 시험을 보던지, 여기서 1-2년 다니다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하던지 하려던 생각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의 낭만과 수많은 유혹 앞에 차츰 힘을 잃어갔다.
1993년은 노태우 대통령을 끝으로 군사정부가 물러나고 최초의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 ‘신 한국 창조’를 외치던 때였다. 아울러 대학에 입학했던 3월은 공직자 재산공개 등 부패와의 전쟁과 개혁을 외치며 하나회에 대한 전격적인 숙청을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1987년부터 5년간 학생운동을 선도하던 전대협이 사라지고 그 후신으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한총련이 등장하기 얼마 전이었다.
학생운동의 끝물인 시점에서 사회정의와 시대를 논하고, 이제는 수명이 다해가고 있던 시민민주주의혁명(CDR), 국제사회주의(IS), 민족민주주의혁명(NDR),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 등과 같은 사회구성체 논쟁에 대한 도서를 학습시키면서 NL(민족해방)이니, PD(민중민주)니 하며 선배들끼리도 토론하며 다투고 반목하는 모습은 묘한 기분과 함께 나에게 어떤 사명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엽서 한 장을 받았다.
그 엽서는 2월, OT를 갔을 때 돌아오기 전날 밤, 모두가 한 장씩 썼던 그 엽서였다.
“노래방 가서
'사랑할수록'을 너무나 잘 불렀지
김재기가 열받을 정도로
당구장에선
당구를 얼만큼 예쁘게 칠 수 있는지 보여줬고
토론할 때는
유식함을 마구마구 선보였고
새내기 '새로 들어왔어요' 인사할 땐
감동적인 시를 읊었지
에잇. 모두 반했을 거야
나처럼.”
엽서 뒷면에 쓰여 있는 문구는 혼잣말하듯 치기 어린 귀여운 말투였지만, 감성 충만한 내용이었고 사실상 대놓고 호감을 표시하는 고백 편지 같은 거였다. 그건 그날 낙산 해변에서의 밤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었고, 짧은 내용이었지만 누군지 모를 그녀가 쓴 글을 한 줄씩 읽어 내려가는 내 마음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누구지? 누가 나에게 이런 엽서를 보낸 걸까.
당초 사람들과 마음 터놓고 얘기하거나 같이 많이 어울렸던 게 아니었기에 누가 쓴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모두 반했을 거라니,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나에겐 너무나 과분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싫지 않았다.
이제 서서히 나의 생활을 정리할 시점이 눈앞에 다가왔다. 모든 상황들이 그걸 강요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고, 고부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나의 핵폭탄급 사고로 인해 두 분 모두 예전보다는 자중하고 서로 있는 듯 없는 듯이 지내시는 게 눈에 보였다.
이젠 가족 안에서 내가 성의를 보여야 할 때였다. 군 입대를 미루며 학교를 선택했기에 다시 입시를 준비하든 기왕 들어간 학교를 끝까지 잘 다니든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와 이후의 취직과 사회생활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1년이 조금 넘는 정도의 시간이지만, 짧지만 강렬하게 압축적으로 맺어온 저 관계들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들을 사랑했고, 이들과도 계속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학업을 하면서 그곳에서 기거하며 돈을 버는 예전과 같은 생활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주 찾아가 얼굴 보면서 우리의 관계를, 우리의 우정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철없는 생각이었다. 무척이나 농밀하다고 느꼈던 우리의 사랑과 우정이 약간의 상황 변화에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 것인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희는 언젠가부터 나와 민아의 감정에 대해 알아챈 것이 분명했고, 돌이켜 보면 그런 부분까지 감안이 되어서 결국 내가 먼저 찾아가 이별을 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아 역시 경희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함께, 대학에 들어간 내가 자신을 떠나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엽서를 보낸 미지의 그녀는 1학년이 끝나갈 때 즈음에야 나에게 자신을 드러냈다. 그것은 의도치 않게 술자리에서 대화를 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마 좀 취했으리라. 자리를 2차로 옮기며 같이 있던 동기와 선배들이 화장실에 가고, 계산을 하고, 몇몇은 밖에 나가 기다리고 있으면서 잠시 동안 둘만 남게 되었는데, 순간의 취기를 이기지 못했는지 옆에 앉아있던 그녀는 내가 알아챌 수 있는 단어를 입 밖으로 뱉어 버렸다.
“노래방 가자.”
“.. 응?”
“사랑할수록 불러주라”
“난 너를 더 알고 싶어..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지만 뭐랄까 따뜻하고.. 왠지 뭔가 해주고 싶고.. 궁금해..”
당황한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너였구나!’.
속으로 외치며 당황하다가 아마도 아무 말이나 빨리 쏟아냈지만, 정작 그 순간이 지나고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을 못 했을 것이다. 많이 긴장하거나 당황했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 일행들이 하나둘 자리에 돌아와 앉았고, 2차를 가서도 술만 계속 먹이려는 선배들 덕분에 노래방 얘기를 다시 꺼낼 분위기는 안되었다. 그 밤은 그렇게 취해갔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한 것을 다음날 기억하지 못했고, 아무 일도 없는 듯 보였다.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기억나지 않는 척하는 건지, 진짜 필름이 끊긴 건지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제대로 고백을 한 것은 의외로 술도 먹지 않고 정신이 말짱할 때였고,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일은 정말 의외의 시간과 의외의 장소에서 뜻밖의 상황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애초에 그녀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건 부모님께서 같은 대학교 다니는 정도의 사내를 맘에 들어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반대를 예상하고 이루어지지 못할 거라 생각한 그녀는 나를 짝사랑하며 멀리서 지켜보려만 했던 것이었다.
나중에, 오랜 세월.. 아주 한참을 지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사실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캠퍼스는 다시 새 학기를 맞이했다.
민아는 가끔씩 학교로 찾아와 학교 앞 호프집에서 술 한잔 하며 서로의 얘기를 나눴고,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민아가 난 고마왔다. 민아와는 그렇게 관계의 끈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었고, 여기에는 나에 대한 모니터링의 목적도 함께 깔려 있음을 난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도 학내 커플이 됐다거나 사귀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민아와의 대화에서 여학생들 얘기라던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고 그녀가 묻는 말에 최소한의 대답을 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데 집중했다. 그것이 이렇게 나를 좋아해 주고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민아와는 그렇게 연락을 유지하며 지냈지만, 경희와의 관계는 이제 정말 끝났나 보다 싶었다. 그날 그렇게 경희의 집을 떠나온 뒤로 경희는 나에게 연락을, 심지어 삐삐를 친 적도 한 번도 없었고, 그녀의 소식을 잘 알고 있을 민아 역시 나를 만나러 와서는 경희에 대한 소식은 아무런 얘기도 전하지 않았다.
주변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엽서를 보낸 그녀와는 여전히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듯 그런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학업과 함께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로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그 엽서를 잊을 수도 있는 시간이 될 줄 알았지만, 그렇진 않았다. 같은 과인 그녀의 존재는 지속적으로 내 눈에 밟혔고, 그나마 함께 듣는 강의가 많지 않은 편이었는지라 학교 안에서 수시로 부딪히지는 않을 뿐이었다.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의 이름은 기은이었다. 아직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지만, 그녀의 나에 대한 호감과 그 호감을 표시했던 그날의 엽서와 그 글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선 어색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아직은 나도 모르는 감정의 끈이 조금씩 그녀를 향해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우리 과에 제주도에서 올라온 아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고, 기은이를 봤을 때 난 그녀가 그 제주도에서 올라온 그 학생인 줄 알았다. 살짝 곱슬머리에 수더분해 보이는 귀엽고 순둥순둥한 얼굴은 뭐랄까, 약간 시골스런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기은이의 집은 서울이었고,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친구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조금만 꾸미면 얼마나 아름다운 녀석이었는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기은이는 들고 있던 음료수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리 맡았어?” 난 대답했다. “아니, 아직. 이제 막 들어왔거든” 그녀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같이 공부하자, 내 자리 옆에 아직 아무도 없었거든.” 도서관 내부는 차분했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조용히 각자의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우리는 점점 더 자주 마주치게 되었고,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다양해지고 깊어졌다. 우연히 자주 마주치게 된 것인지, 한번 더 마주치고 싶어서 도서관을 자주 찾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린 서로 시간 약속을 하거나 하진 않았고 그런 일이 한두 번 더 반복되자, 누구의 말도 없이 서로 그렇게 비슷한 시간대에 마주치게 되었다.
아직 누구도 사로 사귄다고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그렇게 좀 더 스스럼 없어진 어느 날, 난 용기를 내어 물었다. “네가 보내준 그 엽서 말이야. 모두 반했을 거라고 한 거..”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쑥스럽게 괜히 물었다 싶었지만, 기왕 꺼낸 말이었기에 난 다시 물었다.
“그렇게 용감하게 그런 내용으로 엽서까지 보내놓고 그 뒤로는 왜 아무런 말이 없었니..?”
말꼬리를 흐리니 이번엔 기은이가 엷은 미소를 지며 대답한다.
“뭐랄까, 나도 잘 모르겠어. 그날 그렇게 말도 별로 안 하고 술만 마시고 있는 네가 특이하다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아마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몇몇 동기들 선배들과 간간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네가 궁금해졌던 것 같아. 뭔가 사연이 많은 친구인 것 같기도 하고..”
“…”
뭐라 대답할지 모르겠는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고, 잠시 동안 침묵이 또 이어졌다. 아무튼 기은이가 그날 술집에서 나에게 ‘사랑할수록’이 듣고 싶다고 노래방에 가자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대화의 화제를 돌려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즈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에잇, 뭐 그냥 그런 너한테 좀 반했던 것 같아. 짜식이 내가 그 정도까지 써서 보낸 걸 알았으면 그 담엔 알아서 다가와 줘야지, 그러진 않고선 뭘 그런 걸 대놓고 물어보니? 매너가 진짜 꽝이구나. 흥”
갑자기 뾰로통하게 돌변한 표정과 어투에 난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말없는 너랑 가까이 지내기가 너무 어려웠어. 뭔가 너에게 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또 우리 집이 엄격한 편이기도 해서.. 술자리에서도 맨날 일찍 일어나 먼저 가고 그러는데 너랑 제대로 사귀기도 힘들 것 같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난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녀에게 호감이 갔지만, 순진하고 순수해 보이는 그녀에게 나 같은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았고, 아직 정리하지 못하고 잊지도 못하고 있는 여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화답하기에는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랑 사귀면 너.. 후회할 거야. 그렇게만 알아둬”
난 일부러 좀 오버하면서 익살스럽게 그렇게 대답해 버렸다.
그녀도 “왜?” 하면서 더 이상 묻는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우리는 그 외의 다른 여러 일상의 이야기나 학업에 대한 이야기, 시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나누며 서로의 감정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주고받는 작은 말들은 우리의 관계를 알게 모르게 조금씩 더 깊게 만들었다.
그 후로 우리는 더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모임이나 행사에서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란히 앉는 경우가 많아졌고,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공강 시간에는 손을 맞잡고 캠퍼스를 걷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민아가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내심 계속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