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숙취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문득 어제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민아는 이제 민아의 인생을 찾아야지.. 내가 뭐라고.. 확실하게 마음을 열고 책임지겠다는 말도 안 한 주제에 계속 나만 생각하고 나한테 매달리길 바랐냐.. 이 쓰레기 새끼야..’
마음속으로 자조 섞인 독백이 이어졌다.
옷도 안 벗고 집에 들어와 그대로 쓰러져 잠든 것인지, 바지도 양말도 그대로 입고 있는 채였다. 습관적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다 보니 얇은 빌지의 감촉이 느껴진다. 꺼내 보았다. ‘스칼렛’ 민아 가게의 상호가 박혀있는 카드 결제 영수증에는 1,000원이 찍혀 있었다.
디스(THIS) 담배 한 갑이 900원이니, 담배 한 갑 가격에 자신의 팁 100원을 붙인 건가.. 축하해 주러 갔는데, 술을 진탕 마시고도 돈도 받지 않은 민아에게 고마움이 밀려왔다. 어제 그 사내 때문에 내가 신경 쓸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도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민아는 나에게 해주기만 했다. 어제 그 일이 없었어도, 그렇게 급히 나오지 않았더라도 아마 민아는 돈을 받지 않았을 것이었다.
문득 어제의 결심이 떠올랐다.
머리 아프다고 술이 깰 때까지 가만히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며 새삼 마음을 다졌다. 준혁이가 그렇게 떠났는데 홀로 남겨진 경희라도 이제는 잘 되길 바랐다. 아니, 잘 돼야만 했다. 그렇다고 내가 경희에게 야속하게 했던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경희가 나를 용서해 줄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야 내 속이라도 조금이나마 편해질 것 같았다. 준혁이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안 좋은 일이 다시 생기기라도 할까 봐, 그럴 때까지 또다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사를 가면서 집 전화도 바뀌었는지 전화를 해도 벨소리만 울릴 뿐 아무도 받지 않았다. 경희 집 앞에 여러 번 가서 몇 번의 초인종을 누른 뒤에야 새로 이사 온 사람을 만날 수 있었지만, 민아가 말했던 것처럼 이전 살던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중간중간 삐삐를 계속 쳐봤지만 한 번도 응답은 없었다.
조바심만 내다 결국엔 오래 연락도 못해서 미안하지만 경희를 처음 만나게 해 준 사람인 사장 누나한테 연락해 경희 소식을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고, 누나는 알겠으니 좀 기다리고 있으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금방 연락을 줄 것만 같던 누나의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휴.. 어떡하냐. 대충 소식은 들었는데 누나도 여기까지다. 어디 있는지는 알 수가 없네..”
무슨 일일까.
경희는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준혁이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 한두 달간 집에만 있더니 갈수록 더 망가져서 하루하루 돈 벌며 잔뜩 술 마시고, 도박까지 하면서 막사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도박을 하면서 진 빚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불어나 갚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고, 결국은 경기도 외곽의 한 집창촌으로 팔려 갔다는 후문만 들렸다고 한다.
이쪽 세계는 누나도 잘 몰라서 더 알아보기가 어렵다면서.. 그래도 알아볼 만큼 알아봤는데 찾을 길이 없으니 나보고 괜히 찾아 나서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마 나까지 덩달아 인생 망가질까 걱정했던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입대 소식을 전하고도 난 기은이와는 연락을 거의 주고받지 못했다. 기은이는 내게 삐삐를 쳐도 한두 번 연락해서 답이 없으면 더 이상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문득문득 준혁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공부를 가르치고 누나가 오기 전에 같이 라면을 끓여 먹으며 정이 많이 들었던 녀석.. 그리고 그런 준혁의 장례식장에서 울다 지쳐 쓰러져 잠들었던 모습을 바라봤던 것이 경희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었다. 난 누나의 얘기를 듣고는 눈이 뒤집혀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겨울방학에 들어선 만큼 이리저리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주변에 수소문해 가면서 경기도의 집창촌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차라리 경찰에 신고를 하든, 공무원인 아버지께 부탁을 드려보든 하는 게 차라리 더 나았을 텐데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던 나는 바보같이 한 곳 한 곳 직접 찾아다닌 것이다. 좌우로 유리 속 그녀들의 시선을 받으며 문 앞에서, 혹은 들어가서 경희의 인상착의와 목소리, 특징들을 하나하나 말하며 애타게 물어보았지만 그녀를 봤다거나 안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어떤 이는 그런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기도 했고, 어떤 이는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왜 떠나보내고 이런 험한데 오게 하고 나서야 뒷북이냐고 모질게 혼내기도 했다. 어떤 이는 들어올 거 아니면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란다. 하긴,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처지가 힘들고, 가슴속에는 저마다 수만 가지의 사연이 담겨 있을 터. 얼굴도 모르는 남의 불행에 공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내 정성이 부족한 걸까. 그녀를 찾으러 아무리 애를 써도 이름도 나이도 다 바꿨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민아에게는 차마 이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실제로 경희를 도와주고 케어해 줬던 사람이 민아인데, 이 얘기를 전해봤자 자신을 탓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후회는 나 하나로도 충분했다.
미칠 것만 같았지만.. 도리가 없었다.
경희를 찾아내는 일조차 나에겐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난 무력감에 빠져 들었다. 경희의 인생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깝고, 세상이 미워졌다. 세상은 그 아이들에게 너무나 차갑기만 했다.
결국 인생은 오롯이 혼자인 것. 홀로 가는 길에 이곳저곳 머물며 그때그때의 시절 인연을 만나게 되는 것뿐이라는 냉소적인 생각을, 그때 즈음부터 하게 된 것 같다.
방학 동안 그렇게 경희를 찾아다니면서 근처 허름한 여인숙에서 지쳐 잠이 들 때면 문득문득 기은이 생각이 났다. 종강할 때 보고 못 본 지도 꽤 되었는데, 그간 온 몇 번의 연락을 내가 대답하지 않았으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었다. 공중전화박스에 달려가서 전화를 해볼까 싶다가도, 경희를 찾아 헤매고 있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하는 마음에 이내 마음을 고쳐 먹을 수밖에 없었다. 왠지 내가 쓰레기 같았고,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여전히 아버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난 얼마 되지도 않는 주변의 네트워크를 뒤지고 뒤져 수소문한 끝에 경찰이 되어 사이버수사대에 근무하고 있다는 고등학교 선배 민석형을 알아냈다. 다른 학년과 별로 교류가 없었기에 내가 직접 아는 선배님은 아니었고, 내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은 것이다.
선배님께 자세한 사정까지 다 밝힐 수는 없었지만 내가 꼭 찾아야만 하는, 내가 빚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 절실함만큼은 최대한 보이려 노력했다. 다행히 선한 인상의 선배님은 소개해준 내 친구와 친분이 깊었던지 자기가 이리저리 잘 알아볼 테니 마음 놓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신다. 고마운 선배다.
그렇게 얘기해 준 선배에게 기대어 난 그동안 사창가 골목골목을 헤매느라 지쳤던 몸과 마음을 좀 추스르고자 여인숙에서 잠시 쉬었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도 없이 잠만 잤다. 미몽에 깨어나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 현실을 돌아보며 안도하고.. 그런 날들이 지나갔다. 3일째 되었을까..
위잉~ 위잉~~ 삐삐의 진동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그 경찰 선배님이셨다. 몹시 반가우면서도 궁금하고 또 그만큼의 불안이 엄습했다.
뭔가 알아내서 연락을 한 것일까, 아님 알아봤는데 현재 행방은 확인할 수가 없다는 소식일까..
난 추레한 차림으로 서둘러 일어나 근처의 공중전화박스로 갔다.
“네, 선배님. 좀 알아보셨어요? 어떻게 됐나요?”
“바쁘실 텐데 부담드려서 죄송합니다..”
…
선배가 뭐라 뭐라 말한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뜨거운 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내가 무엇을 삼킨 건지 식도를 데일 듯이 흘러내려가는 불덩이 같은 느낌이다. 목구멍부터 식도까지만 이어지는 듯한 이 감각. 급박한 변화가 내 몸을 속이며 농락한다. 이 감각, 이 느낌. 대저 생명체의 감각수용의 목적이 개체의 존속을 위한 것이라면, 위험을 느꼈을 땐 그 생존을 위해 과도하게 신경 증폭을 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았다. 김이 펄펄 나는 오뎅을 먹은 것도 아니었고, 잣이 둥둥 떠있는 뜨거운 쌍화차를 급히 들이킨 것도 아니었다.
이유라면 그저 선배님이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 귀가 아니라 목에 박힌 듯했다. 선배님이 조심스레 던진 말, 나는 아무것도 삼키지 않았으나 그 말은 나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목에 무엇인가가 걸린 듯 헛기침을 해보지만, 그건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목은 납덩이를 삼킨 듯 무겁게, 불타듯이 아팠다. 어렸을 적, 과학 시간에 본 납땜기가 400도의 열로 납을 녹여내던 장면이 떠오른다. 뜨거운 납물이 천천히 기판 위를 타고 흐르던 것처럼, 선배의 말이 나의 목을 통과해 내려갔다.
이 고통은 격렬한 감정의 폭풍이 빚어낸 결과였다. 변연계가 폭주하며 정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몸은 감각으로 그 고통을 치환해내고 있었다. 실체가 없는 고통, 그것은 한마디 말이었다. 선배가 던진 그 한 마디가 나를 흔들고 내 몸을 잠식하며 나의 세계를 뒤흔든 건, 그저 몇 글자의 조합에 불과했다.
내 인생에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무섭게 나를 잠식하는 그 말의 그림자 속에 영원히 갇혀버리는 건 아닐까. 아무것도 삼키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 말의 독을 삼켰다. 그 독은 내 몸속 어딘가에 모세혈관과 말초신경 구석구석을 타고 계속해서 번지고 있었다. 나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뜨거운 불꽃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고 있었다.
“재용아, 그 사람.. 죽은 지 이미 좀 됐는데?”
그녀는 이미 한 달 전 양주의 허름한 사글셋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어 무연고자로 화장까지 치러진 뒤였단다.
눈앞의 모든 것이 흐려졌다. 그 짧은 몇 마디가 나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경희가 죽었다고?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고작 몇 초의 침묵이었을까.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멈춘 것 같았고, 세상이 하얗게 비워지는 듯했다.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얼어붙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경희와의 만남, 함께 했던 시간들, 웃고 울었던 추억들, 점점 다툼이 잦아지고, 그러다 통보해 버렸던 이별, 그리고 준혁이의 장례식장. 그래 그때… 점점 멀어져 어느 순간 헤어짐의 날까지 왔지만 좁은 세상의 울타리를 뛰쳐나와 접했던 사회에서 경희의 존재는 내게 있어 늘 당연했었고,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연함이 깨질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 했었나 보다.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말, 그 말이 내 목을 조여오며 나를 질식시켰다. 그 강렬한 충격은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두운 감정이 폭풍처럼 밀려왔지만, 동시에 고요한 듯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어둡고 무겁게 내리누르며, 나는 마치 심연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경희의 부재를 감당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무한의 슬픔 보다, 분노와 혼란이 뒤섞인 감정이 먼저 느껴졌다. 왜 경희는 끝까지 나에겐 아무런 연락 없이 그렇게 가버렸을까? 그토록 나를 저주했었나, 아님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철저히 돌아서는 게 여자인 건가.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쉽게 끝나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합리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경희의 죽음 앞에서 나는 완벽히 무력했고, 그 무력함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내 주변 모든 것이 서서히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무능한 놈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난 무얼 해야 하는지? 이 텅 빈 듯한 시공간 속에 남은 내가 경희를 그렇게 보내버리고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경희의 마지막 순간은 어땠을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혼자였을지, 나를 떠올리며 가슴속에 남겨놓은 한마디는 없었을지, 경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그 고통을 품은 고독 속에서 어떻게 스러져 갔을지 생각하면 사지 마디마디가 잘려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 고통을 알지도 못한 채 먼 곳에서 혼자 잘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내 손엔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여인숙 방구석에서 안주 하나 없이 소주 난장을 까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간 그렇게 폭음과 울음을 반복하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고 잠에서 깨면 또 폭음과 눈물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내 목을 조이던 그 말, "그 사람, 죽은 지 이미 좀 됐는데.." 란 그 말은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버리고 내게 고통을 주었지만, 이 고통 속에서 그래도 뭐라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경희의 부재를 채워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희의 부재가 내게 묻는다.
"넌 이제 무엇을 할 거냐고?"
이 질문은 끝내 내 안에서 메아리치며 앞으로 남은 내 평생을 쫓아다닐 것만 같았다. 난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무너져 내리고.. 그것을 반복하며 살지 않을까. 어쨌든 난 경희의 삶을, 그 무거운 부재를 어떻게든 품어내야만 했다. 어쩌면 그녀의 빈자리를 영원히 채우지 못할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