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덜컹. 아빠와 딸의 네팔 트레킹은 손잡이를 놓을 수 없는 차 안에서 시작한다. 트레킹은 도보로 출발하지 않고 예약된 지프를 타고 나야풀까지 이동한다. 더 높은 힐레까지 차를 탈 수 있지만, 트레킹 일정이 넉넉해서 더 걷기로 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의 굴곡이 엉덩이에 고스란히 느껴지고 산을 빙글빙글 감싸고 올라가자 속이 울렁거린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즐기고 왕복 4시간의 통학으로 차 타는 것 정도는 자신 있었는데, 네팔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
약 한 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달려서 본격적인 출발지에 도착한다. 아직 남은 어지러움으로 살짝 비틀거리며 주변을 살핀다. 도로 한가운데 식당 서너 개가 보인다. 아빠와 딸은 어리둥절해서 질문한다.
“여기서 쉬는 거예요?”
“아니요. 출발하는 거예요.”
가방을 메고 가이드를 따라 도로 사이 작은 길로 걸어간다. 산 사이로 흐르는 큰 계곡은 공사 중이다. 포클레인이 움직이고 철제 구조물이 얽혀 있다. 가지런히 쌓인 돌 위로 시멘트를 부어서 평평하게 만드느라 알싸한 먼지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풍긴다. 곧 마을이 나타난다. 거리 양 측에 트레커를 위한 물품이나 운동복을 파는 상점들과 작은 구멍가게가 늘어서 있다. 닭장을 탈출한 닭이 거리를 누빈다. 아직 트레킹이 낯설기 때문일까? 비수기라 트레커가 없기 때문일까? 조용한 거리가 어수선하고 삭막하다.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아빠는 한국어가 가능한 가이드에게 궁금증을 해소하느라 바쁘다.
“한국어는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일했다고 답하자) 어디서 일했어요? 어느 도시? 몇 년이나?”
“트레킹 코스 여기랑 ABC랑 비교해서 어때요?”
“다른 코스도 뭐 괜찮은 곳 있어요?”
“좋아했던 한국 음식 있어요?”
처음 만난 가이드와 포터가 어색할 법도 한데, 오히려 한국어 대화 상대를 찾아 기쁜 듯 질문한다. 속 시원히 이뤄지는 대화에 딸의 마음이 놓인다.
산으로 깊숙하게 들어갈수록 나무는 무성하고 농사가 끝난 계단식 논이 빽빽하다. 종을 울리는 양치기 소년과 양 떼에게 길을 비켜주며 잠시 멈춘다. 복슬복슬한 양의 관심은 온통 길가에 자란 풀을 향한다. 처음 걷는 아빠와 딸만 놀라서 얼굴의 모든 구멍이 동그랗게 커진다. 도로가 된 모래 길과 높게 자란 숲의 경계에서 가이드의 다급한 네팔어가 들린다. 가장 앞에서 걷던 포터가 걸음을 멈추고 줄줄이 제자리에 선다. 가이드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핸드폰을 두고 온 것 같아요….”
한 시간 전 지나친 식당 앞에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데, 가방과 주머니를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가방을 내려놓은 포터가 왔던 길을 뛰어서 내려가고 초조한 가이드도 뒤이어 따라간다. 나무 그늘 아래 돌멩이에 앉아 그들을 기다린다. 키 크고 날씬한 나무가 자란 절벽에 서면 작은 계곡 물소리가 또르르 굴러간다. 아주 깨끗한 계곡물은 휴양지 바다처럼 에메랄드 색으로 보이니 네팔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편견을 깬다.
“미안합니다. 아까 사진 찍어주다가 옆에 두고 깜박했네요.”
돌아온 그들의 얼굴에 땀이 흥건하다. 계속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가이드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네며 멈춘 트레킹도 다시 시작한다. 늦은 점심을 먹고 계곡 위 두 개의 철제 다리를 건너자 도착지 울레리까지 남은 시간이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한 시간 반이 남은 시점에서 돌계단을 마주한다. 가이드가 말한다.
“여기서부터 울레리까지 쭉 계단이에요.”
계단이라니. 심지어 한 발자국 내딛을 때 몸이 앞으로 쏠릴 만큼 경사가 심하다. 아빠는 한국에서도 계단 많은 산을 힘들어한다. 아니나 다를까 계단을 오르는 아빠의 걸음이 자꾸만 늦어진다. 얼굴빛은 열기로 붉게 물들고 땀을 비 오듯 흘린다. 내쉬는 숨이 가빠져 가슴이 들썩인다. 다행히 가이드가 아빠의 뒤에서 말도 걸어주고 네팔 노래도 틀어준다.
딸은 열심히 계단을 오르다가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돌계단 사이의 간의 벤치에 앉아 아빠를 기다린다. 공기마저 멈춘 듯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다가 초조함에 발을 동동거린다.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아래로 고개를 쑥 빼서 아빠가 보이는지 확인한다. 익숙한 정수리가 계단 사이로 빼꼼 등장하고, 무릎을 잡고 무거운 발걸음을 하나씩 옮기는 아빠가 가까워지면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그래 놓고 아빠가 속상할까 봐 아닌 척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본다.
“쉬었다 가야겠죠오~?”
“응. 당연하지. 쉬어야 돼. 천천히 가.”
“물도 좀 드세여.”
멈추고 기다리고 쉬고 걷기를 반복하며 울레리에 도착했다. 아빠는 웃음기 잃은 창백한 표정으로 숨을 고른 후,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6시를 지나고 뉘엿뉘엿 해가 진다. ‘롯지’라고 부르는 네팔 트레킹 숙소에 들어와 짐을 푼다. 우리가 머물 롯지 2층 끝 방은 트레킹 치고 호사스럽게 안에 화장실이 있다. 킹사이즈 침대와 절반 크기의 일인용 침대만으로 방이 꽉 찬다. 색감이 화려하고 꽃이 잔뜩 그려진 이불을 덮은 채 아빠는 가만히 누워서 고단한 몸에게 휴식을 준다.
1층으로 내려가 따뜻한 난로가에서 몸을 녹이고 배도 채운 뒤 방으로 돌아왔다. 자기 전 아빠와 대화를 나눈다.반 뼘 만한 작은 전구 하나는 방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 어둑한 분위기에서 마주한 아빠의 얼굴이 여느 때와 달리 낯설다. 햇빛에 붉게 그을린 볼과 자극을 받아 얇은 실핏줄이 비치는 피부는 짙은 음영에 더 거칠게 보인다. 눈가와 이마 곳곳에 주름이 생겼고, 볼엔 어느새 검은 기미가 박혔다. 새까맣다고 자랑하던 머리카락은 정수리와 귀 옆이 희끗하다. 힘들었던 하루를 나누며 엄마와 통화했던 내용을 전한다.
“그래도 엄마가 아빠는 산 많이 다녀서 잘하지 않느냐고 하던대요?”
아빠가 덤덤하게 말한다.
“예전엔 산악인이었는데, 더 이상은 아니야.”
딸은 장난처럼 웃으면서 대답했는데, 솔직히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없다. 어색한 첫 트레킹과 하루를 채운 잔잔한 사건은 아빠의 말 한마디를 이기지 못한다. 과거를 말하는 아빠의 마음은 속상할까? 자신에게 화가 날까? 이젠 딸이 걷기 싫어서 업어 달라고 조르는 꼬마가 아닌 것처럼 더는 딸을 업고 성큼 걷던 아빠가 아니었다. 트레킹 첫날, 기약 없는 이별통보를 받았다. 아빠가 딸보다 조금 앞서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야속하게 너무 많은 고개를 혼자 넘어 버렸다. 캄캄한 울레리의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른다. 손 쓸새 없이 시간은 또 흘렀고 아빠는 딸을 두고 다음 고개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