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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May 15. 2020

아빠가 등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에세이] 아빠와 딸의 네팔 여행기 (10)

2일차: 울레리 - 낭게타티 - 고레파니



“선혜야, 저거 좀 봐. 이야, 해 뜬다. 오... 하하하.”


아침 6시, 하루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 건 두 개의 귀다.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고 네팔임을 인식한다. 창문 틈 사이로 우렁차게 닭이 운다. 나무 위에서는 새가 지저귀며 동물의 목에 걸어둔 쇠로 만든 종소리가 댕댕 울려 퍼진다. 온몸을 감싼 침낭이 답답한 듯 몸을 뒤척이며 꿈틀거린다. 트레킹 첫날 걸은 근육이 자는 동안 뭉쳐서 허벅지는 묵직하고 어깨는 뻐근하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눈을 느리게 깜박거리고 창 밖을 바라보면 만년설 쌓인 산이 보인다. 흰 눈이 햇빛에 비춰 알록달록하다. 마지막으로 아빠의 말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트레킹 하는 기분에 취해 네팔에서 처음 만난 일출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창문을 활짝 열고 창틀에 팔을 걸친다. 벅찬 마음으로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맞으며 붉은 산 꼭대기를 바라본다. 방 문을 두드리는 가이드의 아침인사에 분주히 비를 시작한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찬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기 위해 1층 식당으로 내려간다.



롯지 주방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소리가 들리고 굴뚝으로 연기가 빠져나간다. 건물 전체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피로에 팅팅 부은 눈을 반만 뜬 채 추위에 어깨를 웅크린다. 손으로 몸을 녹일 찻잔을 잡는다. 달달하고 고소한 밀크티에 얼었던 몸이 따뜻하게 녹는다. 아빠와 아웅다웅하며 자동차 핸들처럼 생긴 빵에 꿀과 잼을 발라 입으로 쑤셔 넣는다.


식사 후엔 방으로 올라가 짐을 챙긴다. 침낭을 돌돌 말아 접고, 꺼냈던 물건을 가방 안에 차곡차곡 채운다. 아빠는 등산용 스틱까지 야무지게 손에 쥐고 출발한다.


“두 번째 날이랑 세 번째 날은 정말 걷기 싫어요. 첫째 날은 모르니까 그냥 걷는 거지.”

“아빠는 첫 날을 제일 힘들어. 너희 엄마랑 산에 가도 마지막 날엔 아빠가 더 잘 걷는 다니까. 엄마는 마지막 날에 ‘에구구구’ 이러면서 힘들어해.”

“네네~”

"진짜라니까?"


학교에 가기 위해 산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는 아이들을 지나치고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 다른 트레커들과 줄지어 걷는다. 그들이 각자의 짝꿍과 각자의 언어로 말하는 소리가 뭉쳐 웅성거림이 된다. 무릎 높이의 낮은 돌담을 세운 집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다가갈수록 아릿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끙끙 거리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기웃거린다. 방금 새끼를 낳은 어미 염소가 누워있고 아직 핏덩이가 줄줄 흐르는 새끼 염소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목 놓아 운다. 작은 생명의 탄생에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겨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음 계단을 밟는다.


아빠가 찍어준 사진인데 제가 보이시나요?


집이 점점 드물게 나타나고 돌길이 흙 길로 바뀐다. 간 밤에 이슬이라도 맞은 걸까? 무성하게 자란 나무에서 물기 맺힌 풀냄새가 난다. 습하기보다 상쾌한 기운에 마음까지 촉촉하다. 자연 속에 들어가면 잘 걷다가 한 순간에 주의를 빼앗긴다. 나무줄기에 자란 이끼를 손가락으로 건드린다. 손가락에 쨍한 녹색의 색감과 짧고 곱슬곱슬한 촉감은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괴물의 털 같다. 쉬는 시간엔 걸으며 들려오던 물줄기를 따라간다. 졸졸 흐르는 개울 근처에 쪼그려 앉는다. 귀를 쫑긋 세우지만, 물소리보다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아빠 목소리가 더 크다. 집중력이 산에서 사람으로 넘어간다.


트레킹은 걷고 쉬는 일의 반복이다. 사람들은 숲길이 끝나는 낭게타티의 첫 식당에서 차를 마시고 숨을 돌린다. 가이드와 포터들도 오다가다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는지 반갑게 인사한다. 우리와 함께 걷는 포터도 다른 팀 포터와 악수를 한다. 옆에 멀뚱히 서있다가 그와 눈을 마주쳤고 얼떨결에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Hello,”

“Hello.”


다른 팀 포터가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 채 네팔어로 무어라 말한다. 우리 포터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자 한국어에 서툰 포터가 질문 섞인 답을 한다.


“예쁘다. Beautiful. 맞아요?”


어리둥절하고 민망해서 배시시 웃는다.


“Thank you, 아! 던여밧! (네팔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


우연한 인사에 성공했으니 자신감이 붙는다. 두 명이 걸으면 꽉 차는 작은 마을 길 왼쪽에는 식당 야외 자리가 있고 오른쪽엔 돌로 만든 벤치가 있다. 가방을 내려놓고 돌 위에 걸터앉아 체력을 보충할 초콜릿을 먹는데, 멀리서 익숙한 단어가 들린다. 우리가 걷는 반대 방향에서 두 쌍의 한국인 중년 부부가 걸어온다. 이번엔 먼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국인이구나. 혼자 왔어요?”

“아니요. (아빠를 가리키며) 아빠랑 둘이 왔어요.”

“어머머, 아버지가 현지인 같으셔서 몰랐네! 하하하.”


길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즐거운 시간 보내라며 서로 스쳐간다. 아빠는 아까 아주머니에게 들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잠시 후 가이드에게 말한다.


“아까 한국인을 만났는데, 나보고 현지인 같대요.”


딸은 아빠의 반응이 재밌어서 키득키득 웃는다. 두 번째 도착지인 고레파니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온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배에선 점심을 달라고 꼬르륵거리며 아우성이다. 두 발로 걷는 여행은 모든 감각을 깨어나게 한다.


그리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감각은 세상의 모든 존재와 맞닿은 느낌을 준다. 촉촉하고 푹신한 땅의 촉감과 작은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숲의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든다. 사람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작은 순간들은 큰 중독성을 지녔다. 아마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무언가에 홀린 듯 걸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아빠를 본다. 산행 첫날만 힘들다더니 앞으로 뻗는 걸음에서 자신감이 넘친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빠는 무슨 이유로 산을 오르는 걸까?


+) 아빠의 말

자세한 트레킹 모습이 궁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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