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Jul 17. 2020

아빠, 여행을 마치는 기분은 어때요?

[에세이] 아빠와 딸의 네팔 여행기 (19)

“공항 드롭 오프 서비스를 2시쯤 해도 될까요? 그리고 짐도 맡아 주실 수 있나요?”

“OK. No problem.”


여긴 네팔 포카라, 아빠와 딸은 카트만두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호텔 체크아웃 시간과 카트만두행 비행기 사이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걱정이었다. 지배인은 친절한 미소로 흔쾌히 대답하고, 체크아웃을 늦게 하도록 배려해주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포카라 중심지를 산책한다.



페와 호수는 어느덧 세 번째 방문이다. 하늘도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 듯 날씨는 화창하다. 호수는 큰 파동 없이 잔잔하게 흐르고 알록달록하게 칠한 돛단배가 떠다닌다. 토요일을 맞아 유원지는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더 많다. 그들은 작은 좌판을 펼친 노점상에서 간식거리를 사고 벤치에 앉아 먹으며 여유를 즐긴다. 작고 동그란 탱탱볼 모양의 간식거리 ‘랄몬’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것도 더는 할 수 없다. 느린 걸음으로 둘러보는데 곳곳에 추억이 겹쳐진다. 호숫가 옆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앉은 테라스 좌석과 거기서 먹었던 음식이 떠오른다. 길바닥에 드러누워서 미동도 않는 강아지를 보니 그들을 보고 당황했던 첫날이 생각난다.


호수를 지나 골목길을 걷는다. 골목 구석구석이 이미 가본 장소다. 트레킹 전 날 갔던 한식당이 있는 거리엔 오색 깃발이 하늘을 메운다. 여행 기간 내내 사진 못 찍는다는 잔소리를 들은 탓에 아빠는 열정적인 자세로 딸을 찍어준다. 딸은 쪼그려 앉아서 휴대전화에 집중하는 아빠가 재밌어서 반대로 사진을 찍는다. 서로를 카메라에 담고 이전에 겪은 경험을 떠올려 대화하며 포카라를 정리한다.


카트만두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으로 말라야 산맥을 바라본다. 저 산 언저리나 끄트머리 정도는 걸었을 거라고 아빠와 웃으며 회상한다. 멀리서 보는 산은 평온하다. 하지만 거대한 자연 속에서 누군가는 치열하게 걷고, 누군가는 삶을 이어갈 것이다.



깜깜한 밤에 카트만두로 도착한 탓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마지막 밤이 아쉬워서 다음날 비행기 시간 전까지 카트만두 시내를 걷기로 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타멜거리를 벗어난 호텔 밖으로 나서자 거리 풍경이 비슷한 듯 다르다. 새로 짓고 제법 큰 건물을 볼 수 있다. 어떤 건물은 키를 훌쩍 넘게 붉은 벽돌로 쌓은 담벼락이 에워싸고 있다. 길가엔 보도의 절반을 차지하는 오래된 가로수가 서있다. 전통과 현재가 뒤섞인 카트만두의 새로운 얼굴이다.


그래도 처음 느낀 생경한 자극은 많이 줄어들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경적소리에 더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는다. 숨 쉴 때마다 짙게 풍기는 먼지 냄새 정도는 가볍게 넘긴다.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 6차선 도로에서도 신호등 없이 자연스럽게 횡단보도를 건넌다.  바쁜 네팔 사람들 틈에 껴서 유유히 돌아다닌다.



길눈이 밝은 아빠는 예전 기억을 꺼내 타멜거리에서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까지 지도를 보지 않고 한 번에 찾아간다. 걷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광장이 보이는 피자 집에 들어갔다. 아빠의 시선은 피자가 아니라 광장으로 향한다. 다 먹고 나서도 속도가 느린 딸을 기다리며 한참 동안 창 밖을 본다. 관찰한 풍경에서 재밌다고 생각한 부분을 드문드문 딸에게 말한다. 아직도 카트만두의 곳곳이 신기하고 궁금한 눈치다.


“저기 봐. 저기 의자에 원래 개가 있었거든? 근데 아줌마가 오더니 개를 쓱 밀고는 거기에 앉았어. 근데 개가 힘없이 그냥 밀려가지고, 가만히 있네. 이야.”


식당에서 카페로, 카페에서 다시 호텔로, 발길 닿는 대로 시간을 보낸다. 가보지 못한 거리를 걷고 마음에 드는 가게가 있으면 구경한다. 네팔에 도착하고 유독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급격히 빨라진다. 여행에서 겪는 절차나 과정마저 빠르고 간단하게 진행된다. 속전속결로 짐을 보내고 출국 심사를 마쳤다. 환전한 돈을 남김없이 사용하기 위해 면세점에서 기념품을 산다. 비행기 탑승구로 향하는 검색대는 텅텅 비었다. 꼬불꼬불 길게 세워진 울타리를 뛰어 들어간다. 멀리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서로 수군대던 보안요원이 비행기 표를 검사하기 전에 묻는다.


“Korean?”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으며 한국어로 인사하는 보안요원들에게 똑같이 답한다. 익숙해진 네팔이 따뜻한 작별인사를 건넨다. 첫날 도착했던 네팔 공항이 떠오른다. 네팔의 첫인상은 새로운 세계, 쉽게 허락되지 않을 도시였다. 입국 심사는 까다로웠고 사람들은 딱딱했다. 숙소를 향하는 차에서 마주친 강렬한 눈동자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컴컴한 활주로를 따라 비행기는 잘게 흔들리며 이륙한다. 새롭고 낯선 장소가 익숙해졌지만, 딸의 옆 자리에 출발하던 날처럼 아빠가 변함없이 옆 자리에 앉아있다. 익숙함을 남긴 채 우리의 네팔 여행이 끝났다.


+) 아빠의 말

아빠에게 네팔은 히말라야 그자체

아빠와 딸의 여행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랄몬'의 모양이 궁금하면 이 영상을 참고해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