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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Jul 10. 2020

아빠, 여행에서 언어가 중요할까요?

[에세이] 아빠와 딸의 네팔 여행기 (18)


“지금 시간 있어요?”

“네?”

“지금 한가해요?”

“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팔 트레킹 2일 차, 지의 공용 공간에서 쉬다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근처에서 앉아있던 포터에게 물었다. 대답을 듣자마자 뒤로 돌아 2층에 있는 방으로 달려간다. 침대맡에 꺼내 둔 일기장을 챙겨서 황급히 공용 공간으로 향한다. 나무계단을 밟는 소리가 쿵쿵쿵 빈틈없이 들린다. 그새 가빠진 숨을 고르며 포터 옆에 앉는다. 일기장을 펼쳐서, 한국에서 유튜브를 보고 적은 네팔어 인사말을 보여준다.


“이거 제가 적어왔는데, 네팔어 좀 알려주세요.”



친절한 가이드, 포터와 나란히 앉아 네팔어 공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일기장에 적어온 인사말을 하나씩 읽으며 정확한 뜻을 설명한다.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언어의 기본인 알파벳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네팔어 알파벳은 무려 48개나 된다. 한국어로 표기할 때 같은 철자이지만, 정작 네팔 사람들이 발음할 땐 달라서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 ‘자’라고 쓰는 세 개의 알파벳의 발음하는 방식이 달랐다. 아무리 듣고 따라 해도 어려워서 눈만 데구루루 굴린다. 가르치다가 난관에 빠지면, 다른 팀 가이드와 포터들에게 질문을 한다. 사람들이 점점 주위를 에워싸고 한 마디씩 거든다. 마치 처음 말문을 튼 아이를 보듯 신기한 표정으로 구경한다.



아빠는 롯지에서 만난 한국인 모녀와 대화 중이었다. 트레킹을 도전한 이유와 네팔에 도착해서 생긴 일에 대한 경험담이 오고 갔다. 무르익은 대화가 흐르고 흘러 딸에게 닿았다. 네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시끌벅적한 딸을 보며 상대편 어머니가 아빠에게 물었다.


“따님이 사교성이 좋네요.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활달하게 대화를 하는지. 아빠랑 딸이라서 티격태격하지는 않죠?”

“해요. 티격태격.”


공부는 거의 매일 밤 이어졌고 딸의 독특한 취미에 고통스러운 사람은 아빠였다. 4일 차 밤엔 네팔어로 숫자를 외우겠다고 1부터 10까지 중얼거리며 떠들었다. 자려고 누운 아빠가 이해되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으악. 다시 다시. 흠, 왜 이렇게 안 외워지지?”

“적당히 해.”


걸으며 호시탐탐 전날 배운 단어를 말할 기회만 노렸다. 이전에 마주친 적 있는 포터를 다시 만났고, 그가 인사를 건넸다.


“Hi. How are you? (안녕. 오늘 어때?)”

“틱처 (괜찮아라는 뜻의 네팔어)”


주변에 앉아있는 네 명의 포터가 일제히 쳐다본다. 처음 물었던 포터가 다시 묻는다.


“Wow. Do you know 틱처? (너 틱처를 아니?)”

“Yes. I know. (응. 알지.)”


당연히 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네팔어로 말하기에 재미가 붙어서 짧은 단어를 남발한다. ‘Thank you.’ 말고 ‘던녀받 (감사합니다 라는 뜻의 네팔어)’이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왔냐는 가게 주인에게는 네팔어로 ‘저는 한국사람입니다.’라고 답한다.



열심히 배우는 태도에 덩달아 신난 가이드와 포터는 먼저 나서서 네팔어를 알려준다. 한국 사람이 많이 하는 말은 ‘치도치도(빨리빨리 라는 뜻의 네팔어)’라고 한다. 반대말인 ‘천천히’가 궁금해진다. 물어보니 ‘빨리’보다 발음이 어려운 ‘비스따리’였다. 마지막 날, 여행사에 도착해서 대표님께 트레킹 소감을 띄엄띄엄 네팔어로 말한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친절하게 웃어준다.


“일주일만 더 있으면, 완벽하게 하겠는데요?”


여행에서 언어는 책의 별책부록 같다. 번역기가 뛰어나게 발전해서 짧은 여행에서 언어를 몰라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손짓과 발짓이 유용한 순간도 있다. 그래도 부록이 필요한 이유는 본편 이상의 지식을 주기 위함이 아닐까? 네팔 트레킹에서 언어를 배우며 아빠와의 소중한 추억 위에 네팔 사람들의 웃음을 부록처럼 추가했다. 네팔 여행 로망은 대성공이다.


+) 아빠의 말

틈틈이 네팔어 쓰는 모습이 담긴(아주 짧게) 여행 영상



'산티아고 순례길'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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